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채 Nov 02. 2023

꽁치통조림 그게 뭐라고

꽁치김치조림(초등학교 급식실에서)

급식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른쪽 테이블에 쌓여있는 통조림이 갑자기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든다. 층층이 쌓여있는 꽁치통조림은 자그마치 모두 마흔두 개다. 흔히 마트에서 김치찌개 끓일 때 넣는 가정용 꽁치통조림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건 업소용 통조림이다. 사이즈가 가정용 6개 정도를 합친 크기이다. 통조림을 보고 놀란 이유는 이틀 전 옥수수 통조림을 따기 위해 '전동 통조림 뚜껑 따른 기계'를 사용할 때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통조림 깡통의 가장 외곽에 툭 튀어나온 부분을 전동기계 톱니날 사이에 끼워서 버튼만 누르면 쇠로 된 통조림의 윗면이 자동으로 절단돼야 한다. 이론상 그렇고, 실제로 지난주 파인애플 통조림을 딸 때도 그렇게 사용했다. 하지만 이틀전 옥수수 통조림을 딸 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톱니날 사이에 통조림 끝부분이 고정되지 않았다. 뭔가 고정시키는 부분이 깨지거나 분실된 것이다.


이틀 전 비상사태 때에는 한참을 기계로 낑낑대다가 결국 뛰어나가 동네 슈퍼에서 긴급하게 '수동 캔 따게'를 사 왔다. 전동 기계에 비하면 힘이 들었지만 첫번째 통조림을 따른데 성공은 했지만 그냥 거기까지였다.  두 번째 통조림부터는 캔 따개 날이 통조림 윗면에서 구멍을 뚫지 못하고 계속 미끄러졌다. '이런 젠장 !!!' 수동캔 따게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결국 캔에 구멍을 내고 부엌칼로 윗면을 찢는 원시적인 방법을 택할수 밖에 없었다.

 '이런 젠장!!!'
수동 캔따게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거대한 옥수수 통조림 스무 통을 그런 방식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손에 쥐가 나기까지 했다. 그런 이틀 전의 난리법석을 떨고서 곧바로 장비 수선을 의뢰했으나 아직 수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오늘 다시 '꽁치 통조림' 42개를 보니 짜증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왜냐하면 이번주에 통조림 뚜껑 따는 담당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최근에 네플릭스에서 개봉한 <무인도 디바, 박은빈 주연>라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15년 동안 무인도에서 살다가 구조 된 후에 라이터를 딸깍 딸깍 누르면서 한마디 한다. "불을 켜는데 1초밖에 안 걸리는 것을 나는 무인도에서 반나절 동안 불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소모했다." 물질문명의 이기인 라이터를 사용하면 금방인 것을 알았지만 없을 때의 불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동 캔따게' 없이 부엌칼로 무식하게 마흔두 개의 꽁치통조림을 따는 동안 계속 드라마 속의 여주인공의 대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도 힘이 들고 짜증은 났지만 어찌어찌하다 보니 캔을 모두 오픈하고 꽁치들을 모두 꺼내 채반에 옮기고 치국물도 한 곳에 모았다. 통조림을 따던 공간과 작업하던 조리원들은 온몸에  꽁치 파편들이 튀어 비릿한 냄새가 진동을 했지만 그래도 나름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꽁치통조림을 따는데 시간은 걸렸지만 곧바로 '꽁치김치조림' 조리가 시작됐다. 잘 숙성된 김치와 어느 바다를 헤엄치다가 잡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통조림 안에서 익혀진 채로 보관되었던 꽁치는 커다란 조림솥에서 만나 초등학교 학생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점심식사의 '밥도둑'이 되었다. 꽁치 통조림 그게 뭐라고, 이렇게 맛있는 건지!!

꽁치 통조림 그게 뭐라고,
이렇게 맛있는 건지!!


* 꽁치 김치조림 재료 (참조: 만개의 레시피)

 - 꽁치통조림 1캔, 무 1토막, 홍고추 1개, 양파 1/4개, 편마늘 1큰술, 대파 2/3뿌리

 - 다진생강 1작은술, 고추가루 1큰술, 진간장 2큰술, 청주 1큰술, 매실액 1큰술, 참기름 조금


[사진] 강황밥, 조랭이미역국, 꽁치김치조림, 스크램블에그, 무생채, 김구이, 황금향


매거진의 이전글 삼일 연속 고구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