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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Oct 19. 2023

삼일 연속 고구마

고구마 맛탕(초등학교 급식실에서)

흰 눈이 펄펄 내리는 날이면 생각나는 것들이 다양하다. 어린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에게 받을 선물을 기대하고 연인들은 첫사랑의 두근거림을 느낀다. 또 어떤 이에게는 출근길 교통대란을 걱정하게 할 수도 있고 눈만 내리면 연병장을 쓸어야 하는 군인들에게는 한숨을 자아 내기도 한다.


나는 가끔 눈 내리는 밤거리를 지날때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군고구마를 떠올린다. 지금이야 거의 보이지 않는 추억의 장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동네 골목 끝자락에 리어카에 올려진 드럼통을 개조해서 만들어진 군고무통. 리어카 안에는 군고구마통 외에도 장작들이 하나 가득 실려있었다.


눈 오는 퇴근길에 마주한 군고구마 장수는 차마 외면하기 힘든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껍질을 벗겨 한입 베어 물기라도 하면 달달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하루종일 쌓인 피로를 녹여준다.  귀갓길에 군고구마 한 봉지는 마음까지 푸근하게 해 준다. 현관문을 열면 아이들이 종이봉지 속에 든 것을 궁금해한다.




초등학교 급식실에서는 조리원마다 담당 업무를 로테이션해서 맡는다. 이번주는 '채소 전처리와 설거지' 담당이다. 새벽에 배송된 채소들을 조리하기 전에 씻고 자르는 것이다. 대파, 양파, 당근, 무, 마늘 은 거의 매일 마주하고 다른 채소들은 그날그날 식단메뉴에 따라서 입고된다.


이번주 아침 출근길에 원카(캐리어, 둥근모양이라서 원카라 부름) 위에 놓인 고구마가 보인다. 껍질은 공급업체에서 벗겨지고  열개 정도씩 진공포장되어 있다. 업무가 시작되자 진공포장된 고구마는 모두 대형 사각통으로 옯겨지고 비닐을 벗긴후에 겉면에 붙어있는 전분기를 두 번 정도 흐르는 물에 박박 씻어낸다.


씻겨진 고구마는 동그란 빵빵이 대야(물기가 빠지라고 구멍이 있는 큰 용기) 몇 개에 소분되어  조리테이블로 옮겨진다. 다른 야채들을 씻고 난후에 본격적으로 고구마를 자른다. 고구마를 자르는데 시간이 걸리다보니 조리원 여러명이 함께 한다. 자르는 방법은 요리 메뉴에 따라 달라 조리장 시범을 보고 따라 한다.




첫째 날 메뉴인 '고구마 비엔나조림'에 들어가는 고구마는 비엔나 소시지 크기만 하게 잘라야 한다. 주재료인 소시지보다 크면 안 된다. 도마 위에 올려진 고구마는 크기에 따라 삼등분 내지는 사등분을 한다. 등분된 고무마 토막은 세워서 다시 삼등분 또는 사등분을 하고 직각으로 돌려 마지막으로 삼등분 정도로 자른다. 잘린 고구마는 사각기둥 모양이 된다.


옆에 있던 선배가 노란 속살을 드러낸 고구마 조각을 맛보라고 권유한다. 물론 조리 중에 음식을 먹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만 간을 보거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맛보기'라고 생각하고 입속에 넣고 오물모물 씹어본다. '오도독오도독' 씹히면서 단물이 흘러나온다. 생고구마가 이렇게 맛있을 줄은 몰랐다.


둘째 날 메뉴인 '치즈불밝'에 들어가는 고구마는 첫날과 같은 요령으로 자르되 조금 더 작게 자르고 셋째 날 메뉴인 '고구마 맛탕'에 들어가는 고구마는 큼지막하게 자른다.   어찌하다 보니 3일연속 고구마를 썰었다. 생각보다 딱딱한 생고구마는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생감자와는 다르다. 그래도 조리 후에 부드러워진 고구마에 자꾸 손이 간다.  올겨울에도 눈 내리는 밤이면  군고구마가 생각나지 않을까 싶다.

올겨울에도 눈 내리는 밤이면  
군고구마가 생각나지 않을까 싶다.

[사진] (왼쪽부터)고구마 비엔나조림, 치즈불닭, 고구마 맛탕

*사진출처: 인터넷(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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