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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Nov 08. 2023

스파게티 좀 만들어본 남자

스파게티(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오전에 그 진한 향 육수에 삶은 거 뭐예요? 향기롭던뎅"  퇴근후 급식실 조리원으로부터 카톡이 날아왔다. 왜냐하면 오전 내내 일하는 공간에서 평소와는 다른 향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커다란 튀김솥에 물을 끓이고 그 안에 월계수잎, 셀러리잎 그리고 바질을 듬뿍 넣는다. 계속해서 끓는 중에 잘 씻은 토마토 오십 개 정도를 밑동을 자르고 위쪽에 십자로 칼집을 넣고 튀김솥에 던져 넣는다.


"오전에 그 진한 향 육수에 삶은 거 뭐예요?
향기롭던뎅"

토마토의 향이 더해져 공간에 차 있던 향은 밀도를 더해간다. 끓는 육수에서 토마토 껍질이 훌러덩 벗겨질 즈음에 뜰채를 이용해서 토마토를 건져내고 껍데기를 벗겨낸다. 안에 면장갑을 끼고 그 위에 고무장갑을 꼈지만 그래도 뜨겁다. 껍데기가 모두 벗겨진 토마토는 그대로 분쇄기로 들어가 작은 조각으로 갈린다. 잘게 갈린 토마토는 나중에 스파게티 소스를 만들 때 다시 합쳐진다.




스파게티를 1,500번 만들어본 요리사와 스파게티를 1,500인분을 만들어본 요리사 중에 누구의 요리실력이 더 좋을까? 물론 당연히 여러 번 만들어본 요리사의 경륜과 짠밥이 더 맛난 스파게티를 만들 것이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한꺼번에 천오백인분을 만들어본 경험있는 요리사는 극소수일 것이다. 오늘 내가 바로 천오백 인분의 스파게티를 만들어본 남자가 됐다. 이 정도면 스파게티 좀 만들어본 남자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정도면 스파게티 좀 만들어본 남자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솔직하게 모든 레시피의 화룡정점은 선배조리원들이 마무리를 하긴 했지만 말이다. 지난달까지 양식 조리기능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스파게티를 여러 번 만들었다. 까르보나라 스파게티, 토마토소스 해산물 스파게티 그리고 미트소스까지 2번 낙방에 3번째 합격할 때까지 짧은 기간이지만 집중해서 만들었다. 오래된 경력은 없지만 그래도 오늘 한 끼로 인해 나의 스파게티 경력이 조금 쌓인 거 같이서 기분이 좋다.




남은 육수는 건더기를 모두 건져내고 맑은 육수를 커다란 대야에 담아 옆에 있는 국솥에 붓는다. 이미 국솥에는 소고기가 잘 볶아져 있다. 여기에 토마토 간 것과 토마토케첩,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어 걸쭉하게 끓여준다. 추가적으로 미리 썰어둔 당근, 마늘, 양파, 양송이버섯, 피망을 넣고 마지막으로 하이스가루를 물에 개어 넣어준다. 소스를 끓이는 동안 국솥이 눌어붙지 않도록 계속해서 조리용 삽으로 국솥 바닥을 긁으면서 저어준다.


한참을 젓으면서 걸쭉하면서 시뻘건 소스를 보며 멍 때리다 보니 갑자기 어린 시절 보던 만화영화 '개구쟁이 스머프'에 나오는 '파파스머프'가 마법을 부리기 위해 이상야릇한 수프를 만드는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내가 '파파스머프'이 되고 초등학교 학생들이 '스머프'로 변신이라도 한 느낌이다. 점심식사 배식 때 보니 학교 복도에는 파란색 스머프들이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고 있다.


파란색 스머프들이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 인터넷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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