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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Nov 19. 2023

죽전문점 보다 맛난 죽

장국죽

'푹..... 푹.....' 냄비 속에 불규칙적으로 방울이 여기저기 터지며 '죽'이 끓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밥'도 제대로 못 짓던 놈이 이젠 '죽'을 끓이고 있다. 그것도 며칠 전에 한 냄비, 그리고 이번주말에 또 한 냄비다. 지난번 죽은 나를 위한 죽이었고 이번 죽은 나랑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어찌하다 보니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집을 죽집으로 만들었다. 


3일 동안 시름시름 앓다가 회복될 즈음 다시 아내가 코로나에 걸렸다. 모처럼 토요일에 도서관을 가야 할 일이 생겼지만 누워있는 아내를 모른채하고 불쑥 나갈 수가 없어 아침 일찍 일어나 쌀을 박박 씻어서 3번 헹구고 물에 불렸다. 어쩐 일인지 스스로 쌀을 씻고 불리는 과정이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아무래도 두 달 동안 급식실에 나가서 일한게 몸에 밴 느낌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집을 죽집으로 만들었다.



불린 쌀을 건진 후에 양은그릇에 담고 나무밀대를 세워 반쯤 빻았다. 죽이라는 것이 워낙 소화를 쉽게 하기 위해 환자식으로 먹는 데다가 빻아서 끓이면 그만큼 더 소화가 잘 되기 때문이다. 빻은 쌀을 옆에 두고 이번에는 물에 불린 건표고버섯 3개를 다시 끓는 물에 더 불렸다.


충분히 불려진 표고버섯을 칼로 포를 뜬 후 다시 가늘게 채를 썰었다. 원래 장국죽의 묘미는 가늘게 채 썬 표고버섯에 있다는 예전 요리선생님의 말이 떠올라 가능하면 더 얇게 썰려고 했다. 원래 레시피에는 소고기를 다져서 사용하지만 아쉽게도 이번에는 고기를 뺏다.


표고버섯으로도 그 식감을 내기에 충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고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채 썬 표고버섯은 설탕을 뺀 불고기 양념인 '간(설) 파마 후깨참 (간장, 파, 마늘, 후추, 깨, 참기름)'으로 양념하고 참기름을 두른 냄비에 넣고 볶는다. 이때 부수어 놓은  쌀도 함께 넣고 타지 않도록 주걱으로 잘 저어준다. 쌀이 투명해지면 물을 붓고 센 불에 끓이다가 죽이 끓어오르면 중불로 줄여 끓인다.


물을 붓고 센 불에 끓이다가
죽이 끓어오르면 중불로 줄여 끓인다.




장국죽에는 국간장등의 양념을 제외하면 소고기와 표고버섯 외에 들어가는 재료가 없다. 하지만 오늘은 약간의 융통성을 발휘해서 냉장고에서 몇 가지 야채들을 찾아냈다. 애호박, 당근, 오이, 양파 그리고 더덕 한뿌리였다. 느낌상으로는 애호박(황색)과 당근(붉은색)은 어울릴 거 같았으나 오이, 양파, 더덕은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요리학원 다니면서 들은 건 있어서 맛뿐만이니라 색깔도 맞춰야 할 거 같아서 하얀색으로는 양파를, 파란색으로는 오이 껍질을 택했다. 물론 더덕은 색깔보다는 건강식을 생각하는 차원에서 포함시켰다. 예전 같으면 어떻게 썰어야 할지, 어떤 방향으로 썰어야 할지 고민했을 일을 이제는 자연스럽게 칼이 채소를 길이방향으로 자르고 채 썰고 다시 다진다. 두께도 생각만큼 얇게 잘린다.


6개월 전만 하더라도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급식실에서 손이 쥐가 나도록 매일 김치를 썰고 야채를 썰었던 것이 효과를 발휘하는 듯하다.  잘게 썬 재료들을 냄비에 넣고 잘 저으니 역시 색깔이 알록달록 곱다. 나무주걱으로 가끔 저어주고 불을 낮추어 뭉근하게 끓이다가 죽이 잘 퍼지면 국간장으로 색을 내고 간을 한다.  맛을 보니 '죽전문점'보다 맛나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 평가지만 말이다.


맛을 보니 '죽전문점'보다 맛나다.


[사진] 방에 격리되어 3일 동안 먹은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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