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을 먹게 되었어요
07. 전처리_국(초등학교 급식실에서)
"미역국 더 주세요!" 초등학교 3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가 급식실 입구에 와서 이야기한다. 덧붙여서 "저는 원래 미역국을 안 좋아해서 집에서는 안 먹는데, 오늘 미역국은 너무 맛이 있어서 앞으론 미역국 계속 먹으려고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또박또박 말도 잘한다. 요즘 얘들이 자기 의사 표현은 분명히 하는 게 맞기는 한가 보다.
"미역국 더 주세요!"
월요일은 점심당번이라서 점심을 빠르게 먹고 오후 세척 준비도 하고 반찬이 더 먹고 싶은 아이들이 오면 추가 배식도 한다. 아이들에게는 늘 고기반찬이 인기가 높다. 국을 더 먹겠다고 오는 아이들은 극소수다. 그 똘똘하게 생긴 아이의 한마디가 내 가슴을 뿌듯하게 했다. 아이의 이야기를 함께 들은 점심당번 짝꿍 선배가 나에게 미소를 발사한다. 오늘 국담당은 '나'였다.
이번주 담당은 원래 야채손질을 하는 '전처리'였지만 갑자기 '국' 담당으로 바뀌었다. 국담당이던 조리원이 갑자기 출근을 못하게 되는 바람에 그 자리를 땜빵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내가 제일 만만해서 그 자리로 바뀐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는 했지만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관례처럼 '전처리'를 담당하는 사람이 '국' 담당으로 가고 '전처리' 자리는 새롭게 아르바이트생을 구해서 운영을 하는 방식이었다.
야채를 씻는 일은 조리실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오더라도 쉽고 빠르게 일을 처리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던 국담당을 한번 더 하게 되었고 첫날부터 '쇠고기 미역국' 덕분에 기분이 '업(up)' 되어 '된장찌개', '콩나물국', '들깨 수제비국', 마지막으로 난이도가 높은 '호박죽'까지 무난하게 한주를 보냈다.
이번주 오후 세척담당은 '애벌기'이다. 정확하게는 '식판용 애벌세척기' 담당을 말하는 것으로 식판을 세척기에 넣기 전에 미리 초벌세척을 하는 것이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나면 급식실로 식판이 회수된다. 회수된 식판은 그대로 세척통에 담가져서 지저분한 잔반이 불려지면 바로 '식판용 애벌세척기' 입구에 올리면 자동으로 하나씩 기계 내부로 밀려 들어간다.
이번주 오후 세척담당은 '애벌기'이다.
기계 내부에서는 고압노즐을 통해 세척액이 뜨거운 물과 섞여 분출하고 식판은 회전 브러시 사이로 미끄러지듯이 통과한다. 초벌 세척된 식판은 기계 출구에 쌓이고, 쌓인 식판을 다시 깨끗한 물이 담긴 세척통에 담가두었다가 세척기에 식판을 넣을 수 있도록 소형테이블에 올려주면 된다.
그동안의 오후 세척작업을 보면 3주(식기세척기, 식판, 애벌기) 동안 식판에만 매달린 모양이 되었다. 매일 1,500개의 식판을 들어 올리고, 흔들고, 쌓고, 집어올리고, 다시 쌓고, 다시 흔들고, 다시 집어올리고를 반복했다. 결국 손목에 무리가 되고 마지막주는 양손에 손목보호대를 칭칭 싸매고 나서야 겨우겨우 일을 마쳤다.
일을 하다 보면 당연히 요령이 생기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인 나도 식판세척이 힘에 부치는데 이런 일들을 20년 이상 해온 여성 조리원 선배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어찌 되었던 이제 식판업무는 끝났고 다음 주에는 식판보다는 덜 힘든 '덤웨이 더'가 나를 기다린다.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