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지나고 여름철 무더위는 야외천막 안 온도를 37도까지 끌어올렸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 느껴지지만 웬일인지 불쾌하지 않고 마음이 가볍다. 전날 자격증 실기시험으로 몸이 지칠 대로 지쳐있지만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집을 나섰다. 몇 년 전부터 벼르고 벼르던 명동밥집 봉사 참가 첫날이다. 약간은 들뜨고 흥분된 기분으로 명동성당에 도착했다.
장마가 지나고 여름철 무더위는 야외천막 안 온도를 37도까지 끌어올렸다.
워낙 어린 시절 뛰어놀던 동네이다 보니 명동거리 골목골목이 익숙하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도 바로 지척에 있어 더욱 명동이 살갑다. 특히 명동성당은 아직까지 모친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다 보니 가끔은 성당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거나 성당 지하 카페에서 차를 마시기도 한다. 이래저래 '명동성당'은 인연이 있지만 정작 '명동밥집'과 연을 맺은 건 처음이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찾아서 봉사신청을 했다. '매주 금요일 오전(9시~13시), 격주로 봉사'라는 칸에 클릭을 하고 비고란에 '주방'에서 일하고 싶다고 기재했다. 원래 전공이 음식조리는 아니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초등학교 급식실과 식당에서 일했던 알바 경험을 되살려 가능하면 음식을 직접 조리하고 싶었다.
며칠뒤 담당자로부터 전화도 오고 카카오 단톡방에도 초대되었다. 단톡방 이름은 '금오전홀수'로 매월 1,3주 금요일 오전에 봉사를 신청한 사람들(약 100여 명)이 초대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매주 참석여부를 자율적으로 신청한다. 며칠 전에 8월 1일 자 봉사참여 여부를 묻는 투표가 올라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망설임 없이 '참석'을 꾹 눌려버렸다. 마음속으로 희망했던 버킷리스트가 실제로 실행되는 순간이다.
명동성당 내부에 있는 건물 중에 한 곳에 봉사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혹시 몰라서 주방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갔지만 첫날이다 보니 실제로 맡게 된 업무는 '식판'이었다. '명동밥집'이라는 인쇄가 된 앞치마와 머리 두건을 지급받고 잠시 공지사항을 듣고 널따란 성당 뒷마당으로 나갔다.
봉사자들은 자연스럽게 천막설치하는 곳으로 몰려들어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순식간에 대형 천막 식당도 설치했다. 삼십여 명의 봉사자들은 여러 담당업무로 나뉘었고 내게 주어진 '식판 배달조'는 초벌 설거지된 식판과 식기를 언덕 내리막 끝에 있는 식당건물 안으로 배달하는 일이다. 워낙 경사도가 있고 무게감도 있기 때문에 주로 남자봉사자에게 배당되는 업무이다.
신부님이 직접 국에 간을 맞추고 식판에 밥을 받아 서빙을 한다. 보통은 방문자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서 배식을 받아서 테이블에 앉지만 이곳은 다르다. 일반 식당처럼 방문자가 테이블에 앉자마자 봉사자들이 식판에 밥, 국, 반찬을 받아서 서빙을 해준다. 봉사자들 틈에 신부님도 줄을 서고 식판을 방문들에게 배달한다. 뭔가 낯설어 보이기는 해도 기분 좋은 낯설음이다.
묵직한 플라스틱 통에 식판, 국그릇, 수저통을 가득 담고 십여 차례를 경사길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이마에 땀이 맺히고 장딴지 근육이 서서히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육체적으로는 힘이 들지만 마음은 뿌듯한 하루였다. 날씨는 덥지만 마음은 따뜻한 명동밥집에서 가능하면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