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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명동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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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Sep 09. 2024

꽁치 아메리카노

명동밥집 봉사(꽁치 김치찜)

"역시 유명한 요리사는 남자가 많은 이유가 있네요." 함께 조리실에서 봉사하는 왕언니의 말이다. 조리실에서 힘 좀 써야 하는 것은 대부분 남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그런 노고를 듣기 좋은 소리로 지혜롭게 돌려 말한 것이다. 두 번째 조리실 배치를 받다 보니, 첫날보다는 훨씬 편해졌다. 도착하자마자 복장으로 갖추고 신부님의 기도와 함께 조리공간으로 들어갔다.


"역시 유명한 요리사는
남자가 많은 이유가 있네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식당용 대형 꽁치 통조림. 작년에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통조림 따개용 전동기계가 고장 나서 수동 따개와 부엌칼로 따느라고 애를 먹었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오늘은 잘 따봐야지!' 하고 속으로 다짐을 하고 통조림 따개 기계를 찾았다. 하지만 실장님 답변은 명료했다. "여기선 기계대신 수동으로 땁니다.", '에구머니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낑낑대며 열심히 꽁치 통조림을 따고 있는데,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또 다른 봉사자 언니는 아이스커피 한잔 마시고 하라고 한다. 마침 가지고 간 텀블러가 있어서 커피믹스를 타고, 뜨거운 물을 붓고, 얼음을 넣고, 뚜껑을 닫고 신나게 흔들어 본다. 역시 땀 흘리면서 일하는 도중에 마시는 아이스커피는 피로를 잊게 해 준다.


뚜껑을 열고 시원한 액체를 목구멍으로 꿀꺽꿀꺽 넘긴는 동안에 평소에 느껴보지 못한 향이 코끝에 전달된다. 그 향의 주인공은 바로 '꽁치 냄새'다. 아까 통조림 따던 손끝의 향이 텀블러 뚜껑에 옮겨지고 다시 그 향이 아이스커피에 묻어났다. 난생처음 마셔보는 '꽁치 아메리카노' 여서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못 마실 정도로 역하거나 비린내가 심하지는 않았다. 그나마 텀블러가 소형사이즈여서 다행이었다.


그나마 텀블러가
소형사이즈여서 다행이었다.



스무여 개의 꽁치 통조림은 모두 오픈되어 그 안에 있던 물을 모두 빼고 테이블  한쪽에 차곡차곡 쌓였다. 꽁치 김치찜에 필요한 김치, 매실액, 참기름을 챙겨서 같은 테이블에 올려 준비한다. 김치를 개봉해서 맛을 보니 정신이 번쩍 나는 잘 숙성된 '신김치'이다. 커다란 바트(용기)에 한통 반을 바닥에 깔고 신김치 5kg를 덮고 매실액과 참기름을 적당히 뿌린다. 준비된 바트(용기)를 오븐에 넣고 '30분' 타이머를 작동시킨다.  


한쪽에서는 '양념 온두부' 조리를 위해 대용량 국솥에 물을 끓여 포장된 두부를 따뜻하게 덥힌다. 포장된 두부는 공장에서부터 미리 절단된 상태라서 두부를 잘라야 하는 수고는 덜었지만 저걸 어떻게 바트(용기)에 담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노련한 봉사자 언니는 두부 포장 용기의 물을 쪽 빼고 한쪽면을 가위로 자르고  미끄러뜨려서 순식간에 바트(용기)에 담는다. '대단한 노하우다, 존경스럽다!'  


따뜻한 '온두부'는 미리준비된 양념간장이 뿌려져서 잘 익은 '김치 꽁치찜'과 함께 식당으로 배달된다. 오전봉사를 끝내고 간이 천막 식당이 있는 운동장으로 올라와 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식사를 하러 온 손님들이 평소와는 다르게 비를 피해 삼삼오오 나무밑이나 건물 처마 밑에서 순번을 기다리고 있다.  무더운 여름날씨가 아직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비가 내려 잠시 차가운 기운이 맴돈다. 따뜻한 꽁치김치찜과 온두부가 우리 모두에게 온기를 불어넣어 주면 좋겠다.


따뜻한 꽁치김치찜과 온두부가
우리 모두에게 온기를 불어넣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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