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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Nov 12. 2024

특별한 첫 산행

시각장애인 등산 안내하기(관악산)

어느 산을 올라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담당선생님과 통화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출발지점으로부터 가까운 지하철 역에서 이동이 편리한 곳이면서 힘들지 않은 코스가 좋을 듯했다. 내가 어린 시절 뛰놀던 '남산'도 있고 집 근처 뒷산인 '우면산'도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관악산'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대중교통은 이수역에서 사당역까지 한 정거장이면 되고, 관악산 관음사 코스는 초보자들도 쉽게 능선까지 오를 수 있다. 주말마다 아침이건 야간이건 자주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짧은 시간에 능선까지 오르고 어느 정도 땀도 뺄 수 있는 최애코스다. 산을 자주 다니지 않는 초보자들이자 친구들에게도 제일 먼저 추천하던 곳이라서 더 마음에 끌렸다. 하지만 그 결정은 나에게 치명적인 결정 오류를 불러왔다.


어느 산을 올라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명동밥집 봉사활동을 시작한 이후에 정부에서 관리하는 '1365 자원봉사 포털'에 자주 접속한다. 서칭 하던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등산'이라는 단어에 시선이 멈추었다. '시각장애인 등산 안내하기 자원봉사' 내용을 훑어보고 바로 신청하기를 클릭했다. 한 번도 시각장애인과 대화를 해본 적도 없고, 동행을 해본 적도 없지만 왠지 등산을 함께하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앞섰다.


당일 아침에 설레는 마음으로 후다닥 배낭을 싸고 서초구에 위치한 '새빛 바울의 집'으로 찾아갔다. 담당선생님을 만나서 시각장애인과의 동행을 위한 여러 가지 사전설명을 들었다. 걸을 때의 위치, 에스컬레이터와 지하철 타는 방법, 밥 먹을 때 주의사항, 화장실 이용 요령등 생소한 정보들을 귀 기울여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아갔다.  


귀 기울여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아갔다.  




조심스럽게 길을 간다. 왼손은 나의 오른팔 팔꿈치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케인(지팡이)을 두들기면서 간다. 이수역까지 걸어서 이동하는 동안 두 사람이 걸어가기에 인도가 생각보다 좁다는 생각이 든다. 중간중간에 복병이 나타난다. 인도에 웬 말뚝들(차량진입을 막는 봉)이 그렇게 많이 박혀있는지, 인도임에도 불구하고 불법주차해 놓은 차 때문에 짜증이 난다. '에이 , X 자슥!'하고 속으로 욕을 해본다. 


관악산 들머리에 들어서서 산행을 시작한다. 혼자 산행을 할 때는 못 느꼈던 돌계단과 나무뿌리들이 계속해서 산행을 방해한다. 돌계단들은 일정한 패턴이 없다. 작은 돌, 큰 돌, 오른쪽으로 향한 돌, 왼쪽으로 향한 삐죽 빼죽한 돌계단은 온몸을 긴장시키고 근육을 경직시킨다. 내가 이렇게 힘이 들 정도면 옆에 있는 친구는 더 힘들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산 중에 살랑살랑 불어오는 가을바람과 바스락바스락 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가 우리를 깔깔 웃게 만든다. 가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고, 산등성이 나무들은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 있어 우리를 그 안에 포근하게 품어 준다. 특별한 첫 산행을 하고 나서야 조금 알 거 같다. 내가 살아가야 할 방향과 다음번 산행코스 방향을 말이다.


내가 살아가야 할 방향과
다음번 산행코스 방향을 말이다.


[사진] 만남의 장소
[사진] 하산후 뒷풀이 (좌) 부대찌게  (우) 바닐라 라테와 아이슈페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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