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겨울바다

제주올레 3코스(온평포구~표선올레)

by 소채

"형님, 제주도에 눈예보가 있다는데요." 서울에 사는 후배의 안부문자가 날아왔다. 1주일 동안 제주도 올레길을 걷겠다는 소식을 알고 걱정이 돼서 보내온 듯했다. "눈 오면, 한라산 올라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는 후배의 말에 '빵' 터졌다. '그래, 그렇지! 우린 눈이 내리면 눈 밟으러 산에 다니는 산꾼들이었지.' 그런데 요즘은 등산도 소홀해지고 걷는 것도 게을러진 것이 사실이다.


"형님, 제주도에
눈예보가 있다는데요."


제주도에 오고 나서 오랜만에 이틀연속 3만 보 이상을 걷다 보니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온다. 하지만 주위 풍광이 육체의 피로를 잊게 만든다. 거기다가 겨울바다 위로 내리는 '눈'은 또 다른 새로움을 준다. 얼굴에 차가운 눈이 닿아 스르르 녹아내리기를 반복하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다. 여긴 제주도 올레길 이기 때문인 듯하다.




중간 스탬프 찍는 '성산봄죽칼국수집'을 지나 해변을 끼고 조금 걸으니 '카페 보리'가 눈에 들어왔다. 조식을 해결하기 위해 '제주패스'를 통해 찜해 두었던 곳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좋은 위치에 위치해 있고, 내부 인테리어 분위기와 음식도 훌륭하다. 어제 방문했던 카페(서귀피안)가 대규모 베이커리 카페라면, 여긴 아기자기한 소형 카페 느낌이다.


창가에 마련된 바다를 바라보는 2인석에 앉아서 주문한 빵과 커피를 기다리면서 눈이 내리는 바다를 바라본다. 해변가의 모든 풍광이 평화로움을 가져다준다. 덩달아 마음도 편안해진다. 직원이 가져다준 빵과 커피사이에 소스 종지가 눈에 들어온다. 빨간색 당근 패이스트를 찍어 발그스름한 당근 치아바타에 발라 먹어본다. 올레길 중에 지난 당근밭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당근이 드디어 내 입으로 들어왔다. '행복이 뭐, 별 건가? 이게 바로 행복이다.'


'행복이 뭐, 별 건가?
이게 바로 행복이다.'




올레 3코스는 A코스(20.9km, 오름+해안도로)와 B코스(14.6km, 해안도로)로 나누어진다. 4년 전에 올레길을 걸을 때는 장마시기에 비를 맞으며 걷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안전을 위해 B코스를 걸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A코스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번에도 나를 제외한 '만장일치'로 다시한번 B코스를 걷기로 했다.


온평포구에서 시작해서 용머리 동산(0.9km), 신산 환해장성(2.9km), 성산 봄죽 칼국수(5.7km), 주어동 포구(6.7km), 신풍신천 바다목장(8.2km), 배고픈 다리(11.9)를 지나 표선해수욕장이 있는 제주민속촌 주차장 입구(14.6km)까지가 전체 코스다. 목적지에 다달아 표선해수욕장의 드넓은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걸어본다. 발이 조금씩 푹푹 빠지는 느낌에 약간은 겁은 났지만 그대로 통과해 본다. 뒤로난 발자국이 내가 걸어온 인생처럼 선명하게 나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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