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친구는 오래될 수록(EGGS)
'유붕 자원방래 불역락호'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논어 학이편)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30여 년 하다 보니 내 스마트폰 연락처에는 많은 사람들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마음터 놓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나마 회사를 이직하거나 퇴직하게 되면 그 많던 인간관계가 모두 끊어지고 마는 것이다. 중년의 나이가 되니 언제부터인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둘러보게 되고 과연 퇴직 후에 내 주위에서 어떤 사람들이 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남은 인생 후반을 같이 할 나의 벗들은 과연 누구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1986년 온 세상이 파릇파릇 피오나는 봄날 캠퍼스에서의 첫 학기. 나의 신입생 시절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매일매일 흥분되던 시간이었다. 그 당시 국내에는 컴퓨터 열풍이 막 불기 시작하여서 학교 내 '컴퓨터 연구회'라는 동호회에 가입하였다. 그 동아리 동기 중에 4명이 의기투합하여 '영어 스터디' 소그룹 스터디를 만들었다. 아침마다 서로 돌아가며 영어 공부를 준비하고 서로 프리토킹하며 모인 시간의 반은 놀면서 반은 공부하면서 지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꽤나 건전하게 대학 생활을 보냈다.
그 소모임의 이름은 'EGGS (이지지에스, English Gathering Groups, 또는 이 세상에 그렇고 그런 사람들, 달걀들)'로 명명했다. '컴퓨터 동호회' 안에서 다른 동기생들이나 선배들에게 경계의 대상이기는 했지만 사브작 사브작 영어 공부를 원하는 후배들도 영입해서 4기까지 모집했었다. 대학 생활을 통틀어 보면 영어 공부보다는 노는 쪽이 더 많았던 거 같다. 봄, 가을에는 MT도 가고, 미팅도 서로 시켜주고, 군대 가면 면회도 가고, 이성 간에 썸씽도 생겼다. 젊은 시절 아름다운 시절을 웃고, 떠들고, 같이 고민하며 보냈었던 거 같다.
더 뜻깊었던 건, 그 모임을 통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소중한 배우자를 만났다. 같은 동기의 여동생과 결혼한 친구도 있고, 후배의 사촌동생과 결혼함으로써 친구에서 친척으로 조금은 더 가깝게 엮이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각각 현대, 삼성, LG라는 국내 최고의 기업에 취업해서 각자의 삶을 살아갔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도 머나먼 나라, 미국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한 명은 현지 파견 직원으로 또 한 명은 해외출장으로, 나머지 한 명은 회사를 그만두고 해외 연수로 말이다. 어찌 되었던 우린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피치의 레스토랑에서 해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함께 뜻깊은 추억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렇게 가까운 만남과 때로는 소홀감을 거쳐 30여 년이 지났다. 최근에는 모두 중년의 나이를 맞이하게 되었고 좀 더 많은 만남의 시간이 필요함을 공감하게 되었다. 이제 어느덧 2021년 마지막달이다. 어려운 코로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송년의 시간을 가지려고 어렵게 시간을 맞춰 강남의 식당을 예약까지 했다. 며칠 있으면 그 소중한 친구들과 밥 한 끼 먹으면서 각자 올해의 목표 와 내년의 목표에 대해서 각자 결의도 다지고 크리스마스 선물도 서로 나누기로 했다. 세월은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 오늘을 지나 내일로 흐른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이 모두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고 남은 인생, 같이 좀 더 놀다 가면 좋겠다. " EGGS, 파이팅 ~"
-2021년 12월 어느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