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양양 서프살롱
세 여자와 함께 오랜만의 가족여행이다. 올 초 부친 장례식을 마치고 조만간에 모친과 함께 여행을 가려고 했던 것이 벌써 6개월이 지나서야 날짜를 잡았다. 올해 입사한 아들이 다니는 회사의 리조트 숙박권을 통해 예약을 했다. 하지만 주말 예약은 마감이 되어 하는 수없이 일요일, 월요일로 정했다. 나와 딸내미는 각자 회사에 연차를 신청하고 모친과 아내와 함게 일요일 아침 일찍 강원도 속초로 향했다. 나는 1박2일 동안 그냥 쉬었다 오려는 생각을 했지만 20대 중반의 딸내미는 이번 기회에 양양의 핫플레이스에서 서핑을 체험하고 싶어 했다.
서울에서 속초까지 고속도로 정체를 예상했지만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큰 막힘없이 양양 IC를 점심 즈음에 통과했다. 딸내미가 서칭해 놓은 '수요미식회에 나온 남경 막국수' 맛집 주차장에 도착했다. 열 팀 정도의 웨이팅을 기다리고 나서야 주문을 했다. 제일 잘나간다는 들막(들께 막국수), 더 잘 나간다는 곤막(곤드레 막국수), 비막(비빔 막국수) 와 함게 수육과 감자 전도 함께 주문했다. 안 먹었더라면 후회했을 듯한 맛이다. 들깨의 향은 들깨의 향대로, 곤드레의 향은 곤드레 향대로 오감을 자극하고, 살아있는 동해바다의 건강한 느낌이 그대로 느껴지는 맛이었다.
7월 초이지만 한낮의 온도는 이미 30도를 넘어선 뜨거운 여름의 태양 아래 도시의 모든 것이 이글거리고 있다. 하지만 설악산 울산바위가 눈앞에 펼쳐지는 숙소에 가까워질수록 속초 시내와는 다른 바깥 온도와 산공기가 느껴졌다. 체크인 후에 바로 속옷을 수영복으로 갈아있고 물치항에 있는 '서프 살롱'이라는 서핑 숍 (Surfing Shop)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숍에서 제공해 준 몸에 꽉 끼는 서핑용 슈트에 겨우겨우 몸을 욱여넣고 뜨거운 바닷가 모래사장에서의 실습교육에 참가했다. 땡볕 아래에서 온몸에는 땀이 물 흐르듯이 흐르고 익숙하지 않은 동작들은 근육에 부담을 주었다.
전날은 60여 명 정도의 강습생이 한꺼번에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나마 일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약 10여 명의 강습생이 참가했고 가끔은 모녀지간에 수업을 받기는 하지만 부녀지간에 참가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교육이 끝나고 바닷물 속으로 서핑보드를 들고 바닷물에 들어가니 온몸의 열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는 듯했다. 서핑보드 위에 엎드리고 누워서 좌우 중심을 잡는 거 자체가 쉽지 않았다. '푸시(push), 업(up)에 따라 앉았다가 일어서야 하는데 생각처럼 되지가 않고 자꾸 물속으로 처박혔다. 30대 초반에 윈드서핑과 워터 스키를 탔던 나보다 딸내미가 더 빨리 서핑보드에 적응했다.
120분의 강습 시간이 마무리될 무렵 나는 거의 녹초가 되다시피 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않아 구경하던 모친과 아내에게 미국 드라마 '베이워치'의 남자 주인공 느낌을 주려 했지만 엉성한 보디라인과 물속에 처박히는 초보 서퍼의 비애는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하지만 딸내미와의 멋진 경험이었음에는 틀림없다. 서핑 숍에 대여한 슈트를 반납하고 저녁식사를 위해 인근에 있는 동명항에 있는 '영금정 회관'이라는 전망 좋은 횟집으로 이동했다. 광어, 방어, 우럭 3종 세트가 머리채로 나와서 깜짝 놀랐다. 역시 눈앞에 바다를 두고 바닷바람을 느끼며 먹는 생선회의 맛은 시내에서 먹는 맛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석양이 지는 동해 바닷가 등대 전망대에 올라 시원한 밤 바닷바람을 맞으며 세 여자와의 여행 첫날을 마무리한다. 숙소로 돌아와 웰컴 팩(welcom package)으로 받은 수제 맥주와 과일로 저 멀리 어둠 속에 비추는 설악산을 보며 한 잔 들이켜며 운전 때문에 아까 횟집에서 사이다로 대신한 아쉬움을 달랜다. 아직 몸에 남아있는 바닷물의 짠 내를 다시 한번 씻어내고 내일 일정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내일은 설악산 국립공원 소공원과 신흥사를 구경하고 남양양 바닷가에 있는 휴휴암에 들를 예정이다. 자기 전에 근육 이완제를 먹고 입에는 '코숨 테이프'를 붙이고 눈에는 따뜻한 '아이 마스크(Eye mask)'를 착용하고 침대속으로 미끄러지듯이 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