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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와 소설

마사꼬 정아(2)

한여름밤의 꿈

by 소채

새벽이 돼서야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하며 잠에서 깨었다. 옆에는 지난밤에 함께 했던 낯선 여자가 속옷 차림으로 누워있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클럽을 나온 후에 이자카야에서 2차를 마신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 이후에 필름이 끊겨서 기억이 나질 않았다. 평소에도 아내와 부부관계 시에 여간해서는 잠자리 성공확률이 낮은 김 차장이었다. 더군다나 술을 마시면 더욱 발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어제의 상황으로 미루어 짐작컨데 굶주린 수컷의 본능으로 그녀를 원했겠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을 것이다. 의학의 힘을 빌리기에는 너무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새벽에 자고 있는 낯선 여인을 깨워서 못다 한 일을 하기에는 창문 너머 햇살이 너무 밝게 비치고 있었다. 아쉽지만 아직 잠에 골아떨어진 그녀를 홀로 두고 모텔방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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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의 전남편은 5살 연하의 직장동료였다.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했고 남들처럼 서로에게 익숙해지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는 책임감이 강한 편이었지만 그녀의 남편은 자유분방한 행동의 소유자였다. 결혼 후에는 연애 때와는 느끼지 못했던 서로 간의 이질감으로 서로를 힘들게 했다. 어느 날인가 남편의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이 있던 날 새벽 3시경에 술이 떡이 되어 귀가한 남편과의 싸움이 발단이 되어 결국 갈라서게 되었다. 남편의 스마트폰에 남아있던 누군가와 나눈 사랑의 카톡 문자와 본인보다 10년은 어려 보이는 여자와 찍은 사진들을 본 그녀는 더 이상 남편을 신뢰 할 수가 없었다. 술에 너무 취해서 집에 도착하기 전에 삭제 하는 것을 깜박했던 것이다. 이혼후에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은 일본에 살고 있는 막내 이모의 소개로 만난 재일교포였다. 나이는 그녀보다 10살이 많았지만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한 가지 흠이라면 건강이 좋지 않아서 부부관계가 원만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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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차장은 얼마 전 책에서 '보노보(Bonobo)'라는 침팬지와 비슷하게 생긴 동물에 대한 내용을 읽었다. '보노보'는 인간을 포함한 생물 중에 가장 '성생활'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균 90분에 한 번씩 성교를 하며 심지어 다툼이나 분쟁이 일어났을 때 해결하는 방법으로 무력 대신 성행위를 활용한다. 특히 새로운 이성에 대한 호기심은 보노보를 극도로 흥분시킨다. 책을 읽고 나서 김 차장은 갑자기 기존의 '성'에 대한 인식의 틀이 흘들리는 것을 느꼈다. 밤마다 성인나이트클럽에 모여드는 외로운 남녀들과 도심의 곳곳에 즐비한 모텔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을 보면 사람의 원초적인 본능은 '1부 1처' 보다는 '난혼'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결혼 20년 차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고 아내와 각방을 쓰고 대면 대면하다 보니 그런 생각들은 더욱 그를 유혹의 늪으로 빠지게 했다.

* * *


한 달 즈음 지나서 김 차장의 스마트폰에 낯선 전화번호로 벨이 울렸다. 국제전화번호였다. 혹시 보이싱 피싱인가 하고 의심을 하면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저는 한 달 전 호박나이트에서 만났던 정아라고 해요."

얼굴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았지만 목소리를 들으니 나이에 걸맞지 않게 깜찍하다고 느꼈던 그녀의 이미지가 스쳐 지나갔다.

" 다음 주에 서울 갈 일이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시간 되시면 저녁식사 같이 했으면 해요."

다소 직설적인 제안에 당황했지만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생각해보니 그때 클럽에서 그녀의 핸드폰에 김 차장의 전화번호를 입력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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