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독일회사

만트럭 버스 코리아(2017)

by 소채

금요일 오후에 외근이 있어서 운전 중에 인사부서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스마트폰 너머 영혼없이 평소처럼 물어왔다. "요즘 별일 없으세요?" 그의 질문에 나는 대답했다. "갑자기 별일이 생겼네요."라고 말이다. 전날 독일인 부사장의 환송회에서 별일이 생긴 것이다. 3년 동안 한국 지사에서 근무를 마치고 독일로 돌아가지 전에 그가 진행했던 프로젝트인 평택 리콜센터에서 퇴근 무렵에 패어웰(Farewell) 바비큐 파티가 열렸다. 특별히 부사장의 초대로 나도 함께 저녁식사 겸 맥주를 얼큰하게 마시던 중에 그가 갑자기 나에게 '퇴직 패키지'에 대해서 제안을 했다. 나는 농담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약간 취해있었지만 진지했다. 갑자기 기분 좋게 마신 술이 한꺼번에 깨면서 머리가 띵한 느낌이 들었다. 귀가 길에 머리는 계속 멍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그다음 날 인사부서장은 확인사살을 하러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대세는 기울어졌습니다. 이제 그만 나오셔도 됩니다."라고 그가 다시 얘기했다. 아니 무슨 선거도 아닌데 대세라니. 항상 모든 일에 그럴싸하게 임시변통에 능한 인사부서장의 현란한 말장난이 갑자기 짜증이 났다. 그래도 직감적으로 퇴직을 하게 되면 어차피 인사부서장과 마무리를 잘 지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시 한번 가라앉혔다. 이미 회사는 나의 퇴직을 결정했고 나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급하게 진행된 것으로 상황 정리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책임지고 있는 트럭 정비공장의 서비스 어드바이저를 해고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기인데 이번에는 내가 타깃이 되었다. 코리아 본사에서 딜러들에게 갑질을 일삼는 '싸가지' 들의 농간이 화근이 되었다.


회사의 정년은 취업규칙에 60세로 되어있다. 내 나이는 올해로 55세이다. 햇수로 따지면 5년은 남았다. 정년이 되기 전까지 퇴직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년 새해에 퇴직 관련 책, 100권을 읽기로 결심하고 얼마 전에 겨우 달성을 했다. 당초 계획은 독서 후에 퇴직 관련 책을 쓰고 퇴직 전문 강사가로 제2의 인생을 살아 보고 싶었다. 100권의 책을 읽고 느낀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존버 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서 제2인생을 준비하고 나오라'이다. 그 책들 중에 대부분의 퇴직자들은 퇴직 후의 공허함과 두려움 그리고 외로움에 대해서 기술했다. 독자의 입장에서 그러한 문장들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니 글로 읽은 것들은 실제로 체험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퇴직 관련 책을 읽으면서 '건강'에 대한 이슈는 나를 1년 전부터 '채식의 길'로 인도를 해주었고 '경제력'에 대한 이슈는 3층 연금(국민연금, 개인연금, 퇴직연금)과 부동산을 재정비하게 했다. '고독'이라는 이슈는 등산동호회와 독서동호회에 참여하여 함께 노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다행히도 몇 년 전부터 퇴직에 관심을 갖고 준비했던 것이 나를 그다지 퇴직의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덜 느끼게 해주고 있다. 물론 본의 아니게 며칠 뒤면 나도 백수의 반열에 오르게 되고 다시 재취업의 어려움에 부딪치겠지만 당당히 맞서려고 마음을 굳게 먹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리고 직장인은 언젠가 퇴직한다. 단순한 진리이면서 늘 잊고 산다. "이제 그만 나오셔도 됩니다."라는 말이 악몽이 아니라 달콤한 멜로디로 들리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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