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요가할 때 일어나는 일들 2

by sommeil


오늘도 요가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서고 비틀고 앉고 하다 보면 머리가 걸리적 거린다.

나는 항상 스튜디오에 준비된 검은 고무줄로

앞머리를 틀어 올리고 헤어밴드를 한다.

요가를 하는 동안 흘러내리는 머리와 땀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다.


락커룸에 내 가방을 넣고 요가복으로 갈아입은 뒤

거울을 보고 머리를 묶으려 하는데 검은 고무줄이

하나도 없다.


오늘은 웬일이지?

난 아무렇지 않게 카운터로 가서 고무줄이 없다고 말하고 3-4개를 받아와서 앞머리를 질끈 묶고 요가

수업을 들었다.

다음 날 가니 고무줄이 또 없다. 이번에는 샤워할 때

쓰는 큰 타월과 작은 타월 중 작은 타월이 없다.


또 시작이군. 청소하는 직원들의 소심한 복수가

시작된 것인가.

샤워장 배수구에 머리카락이 그대로 놓인 경우도 있고 샤워커튼의 고리가 일부 빠져서 커튼이 잘 닫히지

않는 부스도 있고 여러 가지다.


한국인들이라면 자기 본분에 충실할 텐데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냥 그들과 부딪히지 말고 있자.

잠시 뒤에 직원 한 명이 들어오더니 난데없이 바닥의 머리카락을 쓸고 있다. 아주 거칠게 비질을 하는 게

느껴진다. 나는 요가를 마치고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는데 잠시 길을 내어주었고 내 옆 사람도 살짝

피해 주는 눈치다.


내가 유난히 소심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별 거 아닌 걸 뭐 그렇게까지 신경 쓰냐고.

그런데 별 거다.


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소리에 민감하고 내향적인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태국어를 할 때도 부정적인

표현을 매우 완화해서 사용한다.

그것이 그들의 문화다.


아래 계층의 국민들은 뛰어넘을 수 없는 부유한 계층의 부러움, 시기, 질투를 그런 식으로 표현한다.

이것은 한국인들은 잠깐 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태국의 분위기며 문화이다.

오래 살아온 일부 교민들 중에도 아직 이런 문화를

모르는 사람도 꽤 많다.

태국어를 잘 못하니 의사소통이 안되고 그러다 보니

그들의 깊은 속내를 모르는 것이다.

한국식으로 생각해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냥 받아들이는 게 속 편하다.






시간이 흘러 다시 고무줄이 통 안에 가득 찼다.

이젠 좀 괜찮아졌나 보다.

샤워장에 물도 다시 잘 나오고 피팅룸 커튼도 고리가 잘 껴져 있어서 잘 닫힌다.

회원들도 그려려니 생각하는 것 같다.

그 누구도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드라이어가 전기가 안 들어와서 작동을 안 해도

그날 회원들은 머리를 말리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간다.

그런 날도 있고 이런 날도 있다.


태국은 한국처럼 열심히 해서 계층을 뛰어넘기에는

어려운 사회구조를 갖고 있다.

상속세가 거의 없어서 부가 세습되고 잘 사는 사람만 계속 잘 산다. 그러니 열심히 안 하는 것 같다.

어차피 변하는 건 없으니까.

그나마 일반인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건

공무원이다.

공무원 시험은 어려운 편이다.

그래서 그들의 권력은 어마어마하다.

내가 주로 대하는 공무원은 이민국 직원들(비자 발급 업무 담당)이나 경찰(도난이나 사건 사고 담당)이다.

외국인이니 이들과 좋게 지내는 것이 좋다.

그래야 사는 데 별 탈이 안 생긴다.






요가 이야기를 하면서 너무 멀리까지 왔다.

나는 살아가는 일들 중에서 작은 에피소드를 말했을 뿐이다.

비단 태국에 사는 나만 겪는 건 아닐 것이다.

해외에서 나와 같은 교민들이 겪는 것은 문화적 갈등이 가장 크다.

아무리 태국어를 잘해도,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아무리 그 나라 언어를 잘해도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모른다면 사는 데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고 그저 소심하게 그들과 벽을 쌓을 필요는

없다. 그러면 점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들고

아무 행동도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배우고 적응하면 다 살아갈 수 있다.

태국인과 똑같이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세운 규정과 규칙, 환경에 적응하고

수용하면 많은 경험을 함께 누릴 수 있다.


" 마이 뻰라이 "


태국어로 " 괜찮아요 " 란 뜻이다.

오늘도 나는 괜찮다.

내일도 요가하러 와야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