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살기 프로젝트 A to Z

Ep. 5 서울 1달 살기

by sommeil


"한국 가면 우리가 뭐 하고 살지 알아봐. 언제까지 여기서 지내겠어?

나이 70 넘으면 적응도 못해. 1달 지내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알아봐."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선언.

작년 4월 한국에 갔을 때 일이다. 아마도 당시 남편은 말은 안 했지만 회사에서 퇴직에 대한 느낌을 받지 않았나 생각된다. 다행히 남편은 회사에 계속 다니고 있지만 그만큼 우리의 한국 살기 계획은 늦춰졌다.

너무 빠른 것도 원하지 않고, 그렇다고 남편 말처럼 너무 늦게 가기도 싫다.

지금의 시간을 적응과 준비의 시간으로 알고...




한국인들은 외국에서 1달 살기를 하지만, 나는 "서울 1달 살기"를 한다.

병원 가기, 아이들, 친구들, 다양한 한국살이 준비기간.

정해진 시간 안에 모든 걸 체험해야 하고 만약 한국에 와 산다면 이런 점이 좋겠다고 생각해 보는....


한국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곳도 많고 계절도 4월이면 너무 청명하고 다니기 딱 좋다.

(더운 방콕에 있다가 외부 활동을 하면 그냥 거리를 걸어 다니기만 해도 너무 좋다.)

이젠 나이도 있어서 건강관리를 하려고 병원에 다닌다. 한국 의료제도는 국민건강보험도 있고 실비보험이 있다 보니 방콕에서 치료받는 것보다 비용면에서 더 저렴하고 보험 혜택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병원 치료는 서울에서 받는다. 병원 예약 업무도 태국보다 빠르고 한국말로 진료를 받으니 편리하고 기록이 남으니 진행과정도 볼 수 있다.




그 밖에 내가 한국에 산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알아보다 '워크넷'이란 어플도 찾아보고(현재는 '고용 24'라는 어플로 통합되었다.) 여성 새로 일하기 센터도 직접 찾아가서 상담도 받아 보았다. 생각보다 50대 여성이 할만한 일들은 많지 않았다. 그쪽에서 권하기로는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정도이며 내가 통역했던 경험을 얘기하니 면세점에서 태국사람들을 상대로 판매하는 일을 권했다. 생각보다 다양한 직업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여성가족부에서 진행하는 직업교육훈련 교육생 과정도 AI 개발자, 반려동물 관리사, 한식/양식 조리사, 주거환경 관리 전문가 등이 있어도 취업으로 연결되기까지는 쉽지는 않다고 했다. 아마도 나이에서 제한되는 것 같았다. 고용노동부에서 지원하는 '국민 내일 배움 카드 훈련 과정'도 바리스타, 음식조리사, 정리수납컨설턴트, 사회복지업무 등의 훈련과정이 있지만 훈련비에 자부담이 30-40% 이상 되다 보니 부담도 되고 선정이 되기는 더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걸 상담을 통해 알게 되었다.


sticker sticker


한국에서 애들 집에 머무르는 동안 시간이 날 때면 집 근처 북한산을 가끔 올랐다.

운동 겸 맑은 공기도 마시고 생각도 정리할 겸 둘레길을 오르곤 했다.

등산하는 중에 어느 날 방콕에서 카톡으로 통역 의뢰를 받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한참을 고심했다. 그동안 운 좋게 50 넘게 일할 수 있었다.


이제는 서서히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차에 그동안 끄적여온 메모들을 정리하고 글을 써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한국 와서 취업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글을 써볼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

막내아들의 아는 형이 책 표지의 디자인을 한다는 말을 듣고, 엄마가 책을 내면 표지 디자인해 달라고 농담처럼 말하다 한번 글을 진짜 써볼까 한 것이 지금의 브런치를 만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생각만 하다 멈추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일단 시도해 보고 아니면 또다시 도전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서울에서 친구들과 은퇴 후 생활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막상 친구들 중에 나만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들은 이미 서울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상황도 환경도 나보다는 나은 상태라 크게 걱정하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친구들은 어느 정도는 준비가 된 건 아닐까 하는 나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현실적인 고민, 준비... 지금이라도 생각해서 다행이긴 하지만....




한국에서의 시간 중 가장 소중한 건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다.

직장을 다니는 첫째와 둘째, 학교에 다니는 막내. 그냥 같은 공간에서 직접 얼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다. 나는 애들 밥을 챙겨주고 그동안 밀린 일상들로 애들과 즐거움을 나눈다.

아이들도 각자의 스케줄이 있고 바쁘게 일상을 보낸다.

그래도 매일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좋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서울 1달 살기'는 끝이 난다.



고맙다. 감사하다.

그래도 한국에 가서 아이들을 볼 수 있으니..

조만간 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