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 지진이 났다

by sommeil


"쿵쿵 쿵쿵"



지난 28일 금요일 낮 1시 30분경 큰 해머로 건물을

두들기는 듯한 소리가 났다.

갑자기 건물이 흔들리면서 에어컨 아래에 세로로 금이 갔고 틈이 벌어졌다 좁혀졌다를 반복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콘도에서 지붕 공사를 하는 줄로만 알았다.




왜냐하면 3월 초부터 콘도 전체 페인트를 새로 칠하느라 공용 수영장과 공용 정원등을 폐쇄시키고

있어서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공사를

하려거든 페인트 칠을 다하고 하던지 하지라고

생각하고. 1층 콘도 사무실로 문의를 하려고 9층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엘리베이터가 너무 늦게 오지를

않았다.

그래도 차분하게 기다리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 타고 있었고 복장도 대충 입고 내려온 듯이 보였다.

마치 출근 시간의 한국 지옥철처럼 내 몸 하나를 겨우 타고 가까스로 문이 닫혔다.

그때까지도 지진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쏟아지듯이 사람들이 내렸다.

나가보니 1층 외부 공동 정원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무실 직원과 콘도 기술자들이 정신없이 왔다 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울리는 진동소리에 핸드폰을 열어봤다.


단톡방에서 방콕에 4.9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문자가 떴다.



너무나 놀라서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톡을 보냈다.

방콕에 지진이 나서 콘도 사람들 다 건물 밖으로 나와 있다고.

남편은 놀라서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급하게 나오느라 슬리퍼, 핸드폰만 챙겨 왔다고 말했다.

지갑을 들고 나오지 않아서 어떡하냐고.

남편은 (당시 지방에 있는 회사에 근무 중이었고)

일단은 진정하라고 했고 혹시 밖에서 있을 상황이면

일단 모바일 뱅킹으로 결제하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현기증이 나서 그 순간 뭘 먼저 어떡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30분쯤 지났을까? 콘도 엔지니어 대장이 사람들이

많은 잔디밭쪽으로 가더니 아직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여진이 올 수도 있다고 일단

대기하라고 했고 사람들은 차분하게 조용히 각자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듯 보였다. 겉으로는 다들 차분히 대기하고 있었다.


갑자기 한쪽 구석에서 어느 할아버지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콘도 직원이 부축을 해주고

다른 한쪽에서는 1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기가 엄마한테 안겨 정신없이 울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신발도 못 신고 맨발로 나온 사람도

있었고 위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온몸이 타투로

도배된 중국 아저씨도 있었다. 다들 얼떨결에 나오느라 옷차림새가 제각각이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각자의 핸드폰을 보며 콘도 직원들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가족단톡방에 콘도 거주인들 사진을 찍어 올렸고 조금 후에 아이들이 하나둘씩 톡을 보냈다.


엄마 괜찮아? 강도가 셌어? 야외 카페라도 가 있어. 실내 카페 말고.

"무슨 일이래 갑자기. 괜찮아? 엄마 어디 다친 곳은

없지?"
"어. 없어"

라고 나는 말했다.


1시간 정도 지나고 나니 어떤 중국인들은 캐리어를

갖고 아예 콘도를 빠져나갔고 나머지 사람들은 계속

핸드폰만 보고 이 상황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뒤에 콘도 엔지니어 대장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도 좋다고 말하며 혹시 방문이나 문이 안 열리면 사무실에 알려달라고 했다.


몇몇 사람들은 들어가도 좋다고 말했는데도 계속 더운 야외에서 핸드폰만 보며 앉아 있었다.

사무실 직원들도 하나 둘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직원 한 명한테 들어가도 괜찮냐고 재차 물었다.

직원은 괜찮다고 하면서 집으로 들어가라고 했고 나는 밖에 들어가지 않고 나와 있는 사람들은 뭐냐고 물었더니 지진난 게 너무 무서워서 아직 못 들어가는 거라고 말했다.




사실 나 역시 무서웠지만 집에 얼른 들어가 가방과

지갑을 챙기고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1층 공용

정원으로 나왔다. 콘도 안에 있는 세븐 일레븐에 가서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 시원한 음료와 간단히 먹을 저녁거리를 샀다.

나는 불안해서 주위 사람들과 함께 행동하려고 더운데도 계속 밖에 앉아 있었다.




30분 정도 지나니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거나 다시

콘도 안으로 들어가길래 나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 집으로 올라왔다.

마음을 추스르고 아까 깨진 벽 금을 확인하고 사진을 찍어서 부동산 업자에게 (집 계약 당시 소개해준)

라인으로 상황을 알려줬다.

가족톡방에도 벽에 금이 가고 깨진 사진을 공유하니

남편이나 아이들도 적잖이 놀라워했다.


사실 지금은 좀 진정이 되었지만 아직도 틈만 나면

베란다에 나가 다른 집들이 불이 켜져 있는지 확인하고 1층 공용 정원에 사람들이 나와있나 계속 확인하게

되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서 마음을 진정하기 힘들었다.



유튜브로 현지 태국뉴스와 카톡으로 알려오는 교민

단톡방, 한인회 톡방등을 예의 주시하며 틈틈이 보고 있었다.

멀리 한국에 있는 가족들, 친구들이 괜찮냐고 안부를 물어오고 그제야 늦은 답장을 했다.


내가 만약 당시 지진이란 사실을 알고 1층으로 갔더라면 더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 같았다.

공사라고 착각해서 그나마 정신을 붙들 수 있었고 덜 당황할 수 있었다.


오늘 아침에는 한국에 사는 친한 친구 한 명이 따로

개인 톡을 보내왔다.

뉴스를 보니 너무 불안해서 진짜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난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오늘 아침 10시쯤 콘도 기술자가 집에 방문해서 벽에 금 간 사진을 찍어갔다.

모든 집들의 피해상황을 추합 하여 내진 설계 안전팀에 보고하고 조만간 방문할 거라고 알려줬다.

콘도 공용 앱에서도 안전 점검 중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공고가 떴다.

다행히 콘도 기둥에는 균열이 간 곳이 없어서 기술자는 크게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뉴스에서는 고층 신축 고급 콘도나 호텔의 피해가 심각하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 콘도는 고층이긴 해도 지은 지 몇 년 된

오래된 콘도라서 오히려 피해가 적었다.

나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큰 배낭가방에 지갑, 가방, 옷 등을 침대 옆에 챙겨 놓았다.

잠자다가도 바로 나갈 수 있게 짐을 싸 놓고 혹시

올지도 모를 여진에 대비해서 바로 나갈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해놨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50대의 나이에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아직도 놀란 가슴

쓸어 담고 차분히 마음을 추스른다.


다행히 4월 9일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어 놓았다.

남편과 태국 휴일인 쏭끄란 때 한국에 간다.

모든 상황이 잘 마무리되고 별일 없을 거라 굳게

믿는다.

이만하길 다행이다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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