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와 함께 '힙지로'라 불리는 을지로 야장과 감성
카페를 다녀왔다.
을지로의 어두컴컴한 상가 건물을 지나 인적이 드문
골목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좁은 골목에서 옛날의
포장마차와 비슷한 느낌의 노포가 있었다. 그곳에서
삼삼오오 젊은 MZ들이 주로 삼겹살에 소주, 된장찌개나 냉면을 먹고 있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방콕에서 릴스나 쇼츠를 통해 야장이란 걸 본 적이 있다.
사람이 한 두 명 다니기도 힘든 좁은 골목에서 고기나 술을 파는 식당을 '야장'이라 불렀다.
마침 날도 선선해서 막내가 먼저 야장을 가자고 권했다. 막상 핸드폰에서만 보던 야장을 직접 가보려니
굉장히 궁금해졌다.
우리는 집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을지로로 향했다.
큰 건물과 공업사 같은 가게들이 즐비했다. 시간이
저녁 8시를 지나서인지 굉장히 어둡고 주변에는
불빛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막내에게 얼마나 더 걸어가야 하냐고 물었다.
전혀 식당이란 것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조용하고 어두운 건물 사이로 계속 걸어 들어갔다. 잠시 뒤 젊은 남녀 한 쌍이 우리 쪽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순간 다 왔구나 하는 감이 들었다. 사람들의 웅성이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오른쪽에 작은 골목이 나오고 골목 양쪽으로 작은 테이블들과 빨간색 플라스틱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대부분 20-30대로 보이는 젊은 남녀들이 삼겹살과
소주를 먹고 있었다. 정말 희한했다.
깨끗하지도 않고 넓지도 않은 좁은 골목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 장면이 재밌어 보였다.
우리는 겨우 하나 남은 테이블에 앉았다. 아주머니가 오시더니 저녁 9시까지만 영업을 한다고 하셨다.
주문도 제대로 받지도 않고 굉장히 정신없어 보였다. 막내는 삼겹살 2인분에 소주, 된장찌개와 밥을 주문했다. 주문한 지 꽤 됐는데 한 아주머니가 부르스타에
가스를 켜고 종이가 깔린 불판을 말없이 갖다주고
가셨다.
잠시 뒤 우리 옆에도 4명의 젊은 남자들이 고기를 주문하고 앉았는데 갖다 줄 생각을 안 하니 그중 한 남자가
직접 식당 안으로 가서 고기와 각종 쌈, 김치, 파절이 등을 갖고 왔다.
막내도 눈치껏 가서 반찬과 쌈, 마늘 등을 갖고 왔다.
잠시 뒤 한 아주머니가 전혀 미안한 기색 없이 삼겹살 2인분과 소주를 갖다 주었다.
나와 막내는 어이가 없었지만 여기 야장은 그런 분위기가 익숙한 듯 보였다. 다른 테이블 역시 알아서 갖다
먹는 분위기였고 필요하면 젊은 친구들이 술이든 반찬이든 직접 갖고 와서 먹고 있었다.
오랜만에 막내와 반주 한잔 할 겸 나와서 괜히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가볍게 소주 1병에 된장
찌개까지 밥과 함께 먹었다. 고기도 부드럽고 고소해서 맛있었다. 찌개도 뭐가 많이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맛이 괜찮았다. 막내가 계속 왔다 갔다 하느라 제대로 먹질 못한 거 같아서 삼겹살 1인분을 추가로 시켜주고 내가 고기를 구워 주었다. 친절하지도 않고 영업시간도 9시까지라서 어떻게 먹었는지 모를 정도였다.
우리는 일어나 계산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냥 야장이 궁금해서 가본 자리였다.
아주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이런 게 '야장'이구나 하는 정도였다.
자리를 옮겨 을지로 다른 상가가 모여있는 다른 골목
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인쇄소가 있는 건물 사이사이 술집들이 보이고 좁은 골목 작은 건물 4층에 있는 감성카페에 갔다.
'호텔 수선화'라는 감성 카페였다. 굉장히 어둡고 테이블과 의자도 빈티지한 느낌의 카페였다.
우리는 패션 후르츠 에이드, 유주 피치 녹차 에이드와 체리 치즈 케이크를 시켰다.
오랜만에 막내랑 데이트를 하니 기분이 좋았다.
사실 막내가 시험 때이기도 한데 시간을 내줘서 고마웠다. 나는 여러 번 괜찮냐고 물었고 막내는 엄마가 오랜만에 서울에 왔으니 맛난 것도 같이 먹고 엄마가 가고 싶어 하는 곳에 같이 가자고 먼저 말해주었다.
막내는 요즘 MZ세대들의 생각도 잘 설명해 주었고
본인의 학교 생활, 친구 관계, 최근 헤어진 여자친구
얘기도 해주었다. 나는 막내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이제는 스스로 알아서 잘해나가고 있는 것이 대견스러웠다.
23살이나 된 막내는 한국에서 자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 막내는 태국 방콕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생각이 개방적이긴 하지만 가족애가 강하고 예의가 바른 편이다.
우리 가족은 평소에 격의 없이 서로 이야기하며 지내와서 서로가 아주 친하다.
남편이나 나도 권위적이지 않고 합리적인 편이라서
아이들도 자신들의 의견을 어릴 때부터 스스럼없이
이야기함으로써 어른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고 자연스러워하였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살아와서 다른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서 예의가 바르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나는 여자친구와 같이 와야 하는데 엄마랑 와서 괜찮냐고 물으니 막내는 엄마는 항상 옆에 있지 않으니까
엄마가 왔을 때 엄마가 가고 싶어 하는 곳, 엄마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먹으러 가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런 게 추억이고 추억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거라고.
말도 이쁘게 하는 우리 막내는 웬만한 딸보다 더 섬세하고 배려 깊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막내는 이어폰 한쪽을 내게 건네며 함께 음악을
들었다. 원래 한국에 와서 애들과 시간을 보내면 그런가 보다 했었다. 이렇게까지 애틋하고 소중하게 느껴지진 않았었다. 만나면 반갑고 그저 좋았다.
이번은 작년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나이를 먹어서인지 아이들이 어른스러워져서인지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애들 집에 있은지 10일이 되었다. 이젠 아무렇지 않게 엄마 배고파 밥 줘 소리를 한다.
나도 자연스럽게 애들이 좋아하는 반찬에 음식을 만들고 빨래를 하고 주변을 정리한다.
아이들과 있을 1달 남짓한 시간 동안 더 많은 추억 만들고 즐겁게 지내야겠다.
행복하다.
하루하루가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