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들어주었다.
초등학교 5학년까지만 해도 시험 때 각 과목당 내용을 정리해 주고 시험 전날 다음날 시험을 잘 볼 수 있게
함께 공부하고 체크해 주었다.
세 명 모두 이렇게 일일이 다 챙겨주고
중간중간 들어오는 통역 일도 하고 시어머니랑 살다
보니 식사 준비도 하고 살림도 하고 정말 바쁘게
지냈었다.
너무 몰아치듯이 살다 보니 한계가 느껴져서 아이들
교육이나 공부는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는
손을 놨었다.
너무 하는 일도 많고 따로 과외를 붙인 것도 아니라서
( 그나마 3명 모두 유일하고 꾸준하게
인도 선생님에게서 영어과외를 한 게 전부였다.)
그 외 과목 공부는 시험 때가 되면 내가 정리해 주고
시험준비를 도왔다.
나는 항상 공평함을 기준으로 삼아서 3명 모두에게
공평하게 해 주려고 매번 애썼다.
누구만 따로 특별히 공부시킬 수 없었고 당시에 3명
과외비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기도 했다.
다행히 내가 프리랜서로 일하는 통역비가
아이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첫째 딸은 고등학생 때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학원에 가기를 원했다. 영어 TOEFL반 수업과 수학 과외를
2년 정도 꾸준히 받아왔다.
영어는 1년 정도 지나고 내가 부담스러워서 그만하자고 했었다.
아쉽지만 딸은 잘 따라주었고 나도 내심 미안했지만
상황 설명을 하며 딸을 설득했었다.
그래도 다행히 딸은 원하는 학과에 합격했다.
나는 항상 어떠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무조건적으로
아이들에게 강요한 적은 없었다.
어릴 때부터 언제나 상황 설명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고 이해가 가지 않으면 다시 설명하는
일이 있더라도 자세하게 알려주고 설득하였다.
지금도 그 부분을 아이들이 고마워하고 본인들의
의견을 들어주고 존중해 준 것을 기억한다.
둘째 아들과 막내아들은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 때 축구를 엄청 좋아해서 학교 형들과 축구를 많이
했었다. 하루는 축구를 너무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고 축구 과외를 해주고 싶어서 아이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방학 때 태국 축구 코치에게서 축구를 배운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축구라기보다 풋살에 가까웠다.
나중에 둘째가 실제로 배웠을 때 코치가 너무 기초적인 것만 가르쳐 준다고 아쉬워해서 방학 때만 하고
그만뒀었다.
이처럼 나는 매번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충분히 이해시킨 후에 무언가를
배우거나 하게 했다.
아들들에게 수학과외처럼 싫다는 것은 과감하게 중단하기도 했었다.
(2. 태교의 중요성을 참고하기 바람)
아들들이 서로 다투거나 싸울 때도 한 번도 누구 편을 들어준 적이 없었다.
항상 각자의 의견을 들어보고 서로의 오해를 풀어주고 각자 주장의 타당함을 설명해서 이해시켜 주었다.
아들들은 중학생이 되면서 서로 의견 차이도 많아서
다툼이 잦았었다. 어떨 때는 엄마인 나도 그냥 빠지고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말하고 싶은 적도
있었지만 매번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해하고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지금도 아이들은 기승전결이 확실하게 말을
하는 편이다. 무턱대고 주장한다거나 이유 없이
행동하는 경우가 드물다.
어릴 때부터 길러온 습관이 현재까지 이어진 것 같다.
나는 아이들 학교에서 학년 대표 엄마를 한 적이
있었다. 전임자의 추천으로 일하는 바쁜 와중에도
학교에 필요한 사항은 건의하고 엄마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전달했었다. 당시 담임 선생님들과 교장 선생님과도 대화할 기회가 주어져서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은 평소에도 나와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라서 학교에서 친구들과 문제가 생기거나 본인들 문제가
아니라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내게 설명하여 조언을 구하는 경우도 많았다.
누구보다 엄마를 믿어주고 의지해준 것이 지금도 너무 고맙다.
둘째 아들은 중학생 이후 여자 친구를 사귀고 헤어지기도 하고 공부를 소홀히 한 적도 있고 게임에 빠진 적도
있어서 내가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었다.
그때마다 첫째 딸은 내게 둘째를 따끔하게 혼내라고
말한 적도 있었고 막내도 형이랑 싸웠을 때 형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한 적도 많았었다.
나는 그때마다 일단은 두 아이의 의견을 경청하고 바로 판단하지는 않았다. 시간을 두고 고민했고 딸과 막내의 생각이 맞다고 존중해 주었었다.
충분히 고민한 끝에 둘째를 불러서 이성적으로 설명하고 앞으로의 미래, 진로를 생각해야 한다고 설득했었다.
나는 부모라고 무조건 따르라는 식은 아니었다.
충분히 둘째의 생각도 듣고 엄마 생각은 이러하니 네가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는 식으로 대화를 했다.
한창 말 안 듣는 중2였지만 설득에 설득을 하니 둘째의 마지막 대답은 알겠어요로 끝났고 나는 그의 변화를 기다려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참 힘들기도 했었고 추억 돋고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시절이 있어서 지금도 아이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고 아이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엄마는 누구보다 자신들을 이해해 주고 생각해 주고
배려해주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성인이 되어서 어릴 적 자신들이 그때 왜
그랬었는지 미안해하기도 하고 고민이 있으면
서슴없이 말해주기도 한다.
요새는 이성문제나 진로문제, 학과 공부, 직장 고민 등을 얘기해 주기도 한다.
이제는 나보다 더 똑똑하고 현명하게 상황에
대처하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각자 잘 설계해 나가고 있다.
가끔씩 내가 생각하지 못한 생각을 해서 나를 놀라게 하기도 하고 다른 측면에서의 해결책도 제안하는 걸
보면 이제는 아이들이 나보다 낫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뿌듯하고 고맙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사랑의 결정체다.
다이아몬드를 만들려면 열심히 깎고 다듬어야 더 빛이 나고 훌륭한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이다.
많이 관심 가져주고 대화도 많이 하고 아이들의 생각을 경청해 주면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됐을 때 부모의 사랑을 이해하고 아는 것 같다.
훌쩍 커준 아이들이 보고 싶어지는 밤이다.
사랑한다. 얘들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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