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과 결혼한 지 29년 차이다.
꽤 오랜 시간이다.
남편은 신혼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똑같다.
항상 그대로이다.
농담처럼 나는 남편을 애인으로는 50점, 남편으로는
100점이라 말한다.
남편은 1남 1녀 중 장남이며 첫째이고 여동생이 1명
있다.
시누이도 말한 적이 있지만 남편이 굉장히 오빠로서의 책임감이나 동생을 보호해야 한다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여자 남자를 떠나서 항상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편이라서 그것은 지위고하 남녀노소 상관없이
적용된다.
게다가 감정적이지 않고 이성적이라서
섣불리 화를 내거나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조용히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
내가 남편을 고맙다고 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아들로서 오빠로서 지켜야 할
자리와 의무를 다한다는 점이다.
특히 내가 남편에게 최근 고마웠던 일은 지난 4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친정부모님 산소를
다녀갔었는데 봉분이 무너져 있는 걸 보고 관리사무소에 들러 바로 5년 치 관리비를 결제해 주었다.
나에게 친정 오빠가 2명이나 있는데도 큰 형님,
작은 형님이 관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일언반구도
없이 조용히 결제를 해주었다.
막내딸로서 자식 된 도리로 누가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중에 친정 가족방에 상황을 알려 오빠들이 미처
신경 쓰지 못한 일을 잘 처리해 주었고 공평하게 다른 형제들도 5년치씩 관리비를 결제하여 산소 관리일은 잘 마무리가 되었다.
나는 가끔씩 통역 일을 나간다.
예전에 일이 많을 때는 1달에 20일 이상을 나간 적도 있었다.
지금은 그 정도로 바쁘게 일을 하진 않고 태국어를
잊지 않을 정도만 가끔씩 하고 있다.
일을 나가보면 굉장히 힘들게 일하는 동생들이나 언니들이 있다. 집안에서 가장 노릇을 하는 사람도 있고
결혼을 했지만 남편이 자영업자이거나 수입이 일정치 않아서 끊임없이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
혼자인데도 열심히 일해서 부모에게 송금해 주는
친구도 있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말 그대로 아르바이트이다.
남편은 예전에 아버님과 사업할 때부터 현재 회사에
근무하기까지 한 번도 쉰 적이 없고 적든 많든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생활비를 주었다.
물론 아이들 어렸을 때 과외비, 운동비, 한국 여행비 등 소소하게 나도 가정에 보탬이 되었지만 나는 항상
메인이 아닌 서브, 말 그대로 보조로서 도움을 줬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통역사들은 나보다는
더 절박해 보였고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도 함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프리랜서라서 실력도 중요하지만
평판이 안 좋은 경우는 섭외에서 제외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남편은 내게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나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상황이었고
하면 집안 생활이 더 윤택해지는 정도.
딱 그 정도였다.
나는 내 수입이 생겨도 나를 위해서는 별로 사용하지 않고 거의 아이들 교육비, 가정 살림살이를
구입하거나 여행 경비 등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그 부분을 더 고마워하고 지금은
엄마 자신을 위해서 쓰라고 매번 말해준다.
남편은 가장으로서 항상 그 자리를 굳건히 잘 지켜주어서 내가 일도 편안히 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아이들 교육에도 전념할 수 있게 도와준 장본인이다.
막내가 말한 대로 내가 엄마 역할을 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 사람이 남편이다.
내가 일도 하고 어른들과 함께 사는 동안 다른 부분에서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날들이 왔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일이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기전인 것으로 기억된다.)
3명의 아이들 생일이 되면 남편은 항상 생일 당사자인
아이 외에 2명의 아이들에게도 선물을 사주었다.
물론 크기나 가격은 당사자인 아이보다 작거나 가벼웠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3개를 나란히 선물해주곤
했다. 나는 당시 살림살이도 빠듯했고 굳이 왜 그렇게
해야하냐고 남편에게 물어봤었다.
남편은 어릴 때는 다른 형제들이 누군가 주목받으면
소외감과 질투, 시기심을 느끼게 되기때문에 청소년기가 되기전까지는 작은 것이더라도 공평하게 선물해주고 나머지 두 아이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래서인지 현재 아이들은 서로를 위해주고 배려하며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다.
이 점은 남편의 현명한 판단으로 현재 아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결혼 생활 중 25년은 쉼 없이 달려왔다.
외국에 살았지만 서울 생활 못지않게 바쁘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왔다.
내가 힘들어하고 지칠 때 남편은 항상 내 곁에 있어
주었고 지금은 아이들까지 내 편이 되어주고 있다.
비록 한 집에서 함께 사는 게 아닌 주말부부이지만
정신적으로 서로 의지하고 아주 든든한
나의 지원군이다.
이제는 친정 부모님도 계시지 않아서 나는 남편을
부모처럼 때로는 오빠처럼 생각할 때도 많다.
내가 엄마로서 잘 해낼 수 있는 역할의 50%는
남편 덕이다.
이제는 서로 건강 챙기면서 행복하게 지낼 일만 남았다.
오늘도 보통의 하루인 아보하를 있게 해 준 남편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당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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