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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릇의 크기는

by sommeil



문득 돌아가신 시아버님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은 국어와 수학을 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주제를 파악하고 분수를 알아야 한다고.”


그 말씀에 나는 동의한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어언 22년이 흘렀다.

결혼하고 시집살이를 하면서 7년이란 시간 동안 나는 가까이서 아버님을 모시면서 많은 배움과 깨달음을 얻었다. 아버님은 외며느리인 나를 항상 존중해 주셨고

몸소 실천으로써 어른이 해야 할 행동들을 그대로 보여주셨다. 때로는 따라 할 수 없을 정도로 헌신적이시며 봉사를 많이 하시는 분이셨다.






이제 50대 중반이 된 나이에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

자신의 그릇의 크기를 가늠해 본다.

나는 과연 얼마만큼의 그릇인지…

부끄럽지만 그다지 크지는 않은 것 같다.

돌아가신 아버님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간장 종지는

될까? 아니 큰 대접은 못돼도 밥그릇 정도는 되는 것도 같다. 거기에 비하면 남편은 큰 대접은 되는 걸로 보인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고 남편은 스마트하면서 현명하다. 그는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해외생활한 지 29년 차이다.

주위에서 다양한 교민들을 보아왔다. 한국에 있는 친구나 지인과는 또 다른 커뮤니티를 접해보았다.

여기서는 싫든 좋든 적당히 어울려야 하는 분위기가 있다. 특히 2019년 코로나가 왔을 때나, 올해 3월 자연재해인 방콕에 지진이 났을 때 등등 큰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커뮤니티에 속해야만 실시간 빠른 정보를 접하고 얻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역시 커뮤니티에서 참여하고 봉사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내가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막상 어떤 커뮤니티에

속하지도 않으면서 한인회나 그 밖의 종교단체들에서

하는 행사들을 나쁘게 말하는 일부 교민들이 있다.

내용의 취지도 제대로 이해 못 한 채 각종 나쁜 말과

근거 없는 헛소문들로 행사의 취지를 저해하는 경우가 있다.


개개인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본인은 그런 생각조차 못하면서 남들을 헐뜯고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상대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초창기에 태국에 왔을 때는 가족 외에는 친구도 없어서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믿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진실이 아닌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그런 얘기를 들어도 반응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각자 마음의 크기가 있다.

마음의 크기는 크지만 깊지 않은 사람도 있고

반대로 마음의 크기는 깊은데 크지 않은 사람도 있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상대방의 생각을 전혀 듣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내 마음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가

내 마음 그릇의 크기는 과연 얼마나 될까






얼마 전에 스님이 법회 중에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천석꾼은 천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고

만석꾼은 만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한 가정의 가장,

한 기업의 사장,

한 나라의 대통령.

그들은 그릇부터가 일반 사람과는 다를 것이다.

모든 것을 감내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마음 그릇의 크기가 있다.


나는 과연 얼마나 큰 마음의 그릇을 갖고 있는가


오늘도 저절로 고개 숙여지고 겸손해진다

내 마음 그릇의 크기부터 알고 노력해야겠다.

나 자신부터 다스릴 줄 아는 내가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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