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꿋꿋하고 씩씩하게

by sommeil



요가 10 클래스가 끝나고 그만둘 줄 알았는데 오기가 생겼다.

요가를 잘 하든 못 하든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외로운 해외살이에서 나를 지탱해 준 힘은 가족

그리고 운동이었다.

아이들이 모두 한국으로 떠나고 덩그러니 혼자 지내는 콘도에서 내 정신줄을 꽉 잡을 수 있는 건

운동뿐이었다.

통역일도 예전만큼 많이 하지는 않고 들어오면 내게

맞는 것 위주로 가려 가면서 하는 중이었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한국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사는 환경, 경제적 수준, 배움 수준 등이 너무나도 달라 현지 교민들과 어울리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도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어보려 노력했지만 내가 원하는 그런 사람들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열심히 다니던 종교 단체의 오래된 신도들만이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가족애가 더 소중하고 남편이나

애들과의 관계가 더 끈끈했다.


이제는 애들도 없어서 남편과 단둘뿐이었고 주중에는 홀로 지냈다.

지금은 한국에 계신 시어머님 말씀이 떠올랐다.

어디 갈 데가 있는 게 좋은 거라고.

내가 한창 일을 많이 하던 때에 통역일에 지치고

아이들 육아로 바빴을 때 어머니는 나를 부러워

하셨다. 일할 수 있고 어딘가에서 나를 찾아주는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늘 말씀하셨다.


그때는 몰랐다. 나도 나이가 드니 어머님 말씀이 문득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운동으로 건강해지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지 않게 요가를 권해준 남편이 고마웠다.

싫든 좋든 열심히 운동해서 건강해지고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정신도 건강해진다는 걸 아니까.






아침 요가가 있는 날이면 집 옆에 쇼핑몰이 아직 오픈하기 전이라서 건물 앞에 있는 경비 아저씨가

어디를 가냐고 검문을 간혹 한 적이 있었다.

태국인들은 그냥 쓱 보고 가는데 나는 외국인이라서

검문을 더 자세히 할 때도 있었다.

이게 해외살이에서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이질감이랄까.

약간 기분은 상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내려 핸드폰으로 운동앱

등록을 마치고 라커룸으로 갔다. 개인 락카에 짐을

풀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요가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저번에 본 태국 아줌마가 있었다. 나보고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영어로 물어봤던 사람이었다.

오늘은 따로 아는 척을 하지 않길래 나도 하지 않았다.


태국인들은 좀 친해지면 상대방의 사생활을 속속들이 물어보는 경향이 있다. 뭐든 물어보는 내용에 일일이

리액션을 해줘야 하고 한번 어울리면 계속 어울려야

하는 문화가 있다. 나는 성격적으로 잘 맞지도 않고

일할 때 빼고는 굳이 태국인들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태국에 사는 교민들도 태국인들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꽤 많았다. 좀 친해지면 사생활까지 관여하며 계속 만나야 하는 묘한 문화가 있었다.

그래서 외국에서 어울리고 함께 다니는 건 가족이 거의 대부분인 경우가 많았다.

어제까지는 친한 친구였다가 오늘은 철천지 원수가 되는 경우도 종종 보였다.







특히 태국인들은 자존심이 유독 강해서 동남아국가 중 유일하게 식민지를 당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프라이드가 매우 강했다. 태국인들과 대화할 때 예의 바르고

조용히 말하고 항상 웃는 모습을 유지하는 게 신상에 좋았다. 한마디로 태국인들은 목소리 크고 튀는 행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항상 스튜디오 맨 뒷자리에 앉아 요가를 하는 편이었다. 사람들이 많을 때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 요가 시작 시간보다 30분 일찍 간

적도 많았다. 아무래도 외국인들이 거의 없는 편이라서 클래스에 들어가면 모두 태국인들이라서 약간

주눅이 들기도 했다. 요가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니

심적으로 위축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더더욱 힘들지만 열심히 요가

자세를 따라 했다.

어떨 때는 방의 온도가 너무 뜨거운데 (보통 섭씨 38-39도를 유지하는 아주 더운 방이었다.)

친절한 요가 강사는 어려운 동작을 할 때면 잠시 휴식 시간도 주고 스튜디오 문도 열어주어서 에어컨 바람이 들어와 릴랙스 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남자 요가 강사들은 어려운 동작을 1분 이상 버티게 하는 경우도 많아서 여자 강사들보다 힘든 경우가

더 많았다. 잘못된 자세를 하면 자세를 직접 교정해

주기보다는 바로 옆에서 시범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적으로 태국인들은 직접적인 행동이나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만약 직접 자세를 잡아주려고 터치를 하면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서 간혹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손끝을 살짝 잡거나 바로 옆에서 시범을 보이는 경우가 더 많았다.


조금 친해져도 연장자 우선, 선생님 우선인 경우가 많아서 요가 클래스에 들어온 나이 많은 아줌마나 할머니인 경우는 요가 강사들이 따로 지적을 하지 않는 편이었고 클래스에 들어와도 요가 강사가 요가를 배우는

어르신께 먼저 인사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반대로 저녁 클래스에는 젊은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이 많았다.

요가 강사들은 대개가 30대 후반에서 40대인 경우가 많아서 젊은 친구들이 자세를 잘 못 잡으면 할 수 있다고 더 종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Candy라는 한 여자 요가 강사는(태국은 태국 본명이 너무 길어서 별명(nickname)을 사용하는 문화가 있다.) 다른 요가 강사에 비해서 영어가 좀 부족한 편이어서 요가할 때 태국어로 주로 지시를 했었다. 물론 지금은 요가 용어를 어느 정도 알지만 처음에는 익숙지 않은 요가 단어들도 있었다. 그래서 옆 사람을 보고 동작을 따라 할 때가 많았다.

나중에는 내가 태국어를 할 줄 아는 건 알았는지 매우 어려운 태국어로 요가 자세를 설명한 적도 있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요가는 단순히 운동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수양도 저절로 이뤄지고 있다는 걸

이때 깨닫게 되었다.






태국인들은 누구만을 특별히 잘해준다거나 누구만을 지적하는 것을 유독 좋아하지 않는다.

한 번은 EVE라는 여자 요가 강사가 들어와서 나의

자세를 교정해 주느라 배를 넣으라고 했고 다리는 더 들어 올리라고 했었다. 아마 다른 태국인들이었으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안 준 것을 기분 나빠하여 한동안 요가하러 오지 않는 경우가 생기는데 나는 좀 창피하기도 했지만 이걸 이겨내고 견뎌내야만 내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더 강인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면서 나는 1주일에 2번 가던 것을 3번, 4번 가게 되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 Harrison이라는

캐나다 출신 남자 요가 강사가 생겨 수업 전에 간단한 스몰토크도 하며 요가하는 시간들이 조금씩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아프던 몸도 이젠 익숙해지고 이젠 더 이상 끙끙거리며 파스를 붙이지 않게 되었다.

드디어 요가가 내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