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인 삶에 대한 갈망 / 도전과 경험의 가치
2003년 8월 27일 새벽 3시, 예정일보다 2주나 빨리 태어났다. 세상을 빨리 보고 싶어서였을까?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의 나는 골목대장이었다. 동네 친구들을 다 불러 모아 술래잡기, 경찰과 도둑과 같은 놀이들을 주도했고 매일 뛰어놀았다. 넘어지기도 많이 넘어져 무릎, 손바닥에 상처가 가득했다. 매일같이 그렇게 넘어지고 다쳐도, 다음날이면 상처가 다 아문 듯이 또 친구들을 불러 전날과 같이 뛰어놀았다. 대구 동구의 그 동네는 나의 첫 놀이터였다.
2013년, 내가 9살 때 대구 수성구로 이사를 갔다. 당시 동네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너무 슬펐고 아쉬웠지만, 이사 가서도 바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 또 행복한, 에너제틱한 삶을 살았다. 당시 김연아 선수를 보고 피겨를 배우고 싶어 했는데, 마침 그 동네에 아이스링크가 있어 피겨를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9살 때부터 몇 년간 피겨에 푹 빠졌다. 강습이 없던 주말에도 혼자 링크장 가서 6~7시간씩 타고 오고, 쉬는 시간에도 피겨 영상만 봤다. 내 세상은 온통 피겨였고 머릿속은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당시 우리 선생님 반에는 잘 타는 선수 언니들 클래스가 있었고, 내가 속한 취미반도 있었다. 지상 훈련은 이 두 반이 같은 선생님께 받되 따로 그룹 지어 훈련받았다. 지상 훈련받을 때 수성못(둘레 약 2km)을 뛰는데, 나도 그 선수 언니들처럼 스케이트를 잘 타고 싶었던 욕심이 커서였을까, 한참 먼저 출발한 앞의 선수들을 따라잡아 같이 들어왔다. 어릴 때부터 술래잡기를 그렇게 많이 했기에, 피겨를 잘 타고 싶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초등학교 2학년에게 2km를 9분 만에 뛰라고 했을 때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긴 하다. 그 열정과 근성, 악바리는 지금 생각해도 과거의 내가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열심히, 꾸준히 스케이트를 탔다. 그 결과 협회에 선수 등록도 하여 초등학생 때 지역대회에서도 수 차례 입상하고, 싱크로나이즈드(단체 종목)로 전국대회 우승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나보다 잘 타지 못했던 친구들이 나를 제치기 시작하니 점점 의욕도 떨어지고, 열심히 하기가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점점 사춘기가 오며 스케이트 타는 시간에 친구들과 놀고 싶어졌다. '이렇게 후퇴하는 느낌이 드는데 이렇게 비싼 돈을 주고 이렇게 스트레스받으며 내가 배워야 할까'라는 생각으로 6년간의 피겨 선수 생활을 끝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