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대구 수성구 범어동 소재의 사립 중학교였고, 수성구 범어동이 당시에는 강남 대치동과 함께 손가락에 꼽히는 교육열이 강한 동네였다. 나는 그 중학교를 피겨스케이팅 특기자로 입학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때 모두 다, 나는 반에서 한 명쯤 있는 그 ‘운동 잘하는 애’를 맡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체육대회에서 계주나, 피구 대회나 각종 스포츠 경기에 대표로 나가야 한다면 내가 나가게 되었다. 피겨를 그만두고, 학교 친구들과 친하게 어울려 놀기 바빴던 시기에, 나는 핸드볼이라는 스포츠를 권유받아 접하게 되었다. 핸드볼의 ‘ㅎ’자도 몰랐는데 친한 친구들이 많이 가입되어 있는 스포츠클럽이어서 따라서하기로 했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 때 핸드볼에 미쳤었다. 친한 친구들이 많아서 더 그랬던 것 같다. 학교 점심시간에도, 방과 후에도 해 질 때까지, 주말에도 친구들을 모아 학교에 나가서 핸드볼을 했다. 정말 더운 날에도 쉬지 않고 핸드볼만 해서 일사병에 걸리기도 했다.
보통 주말에는 엘리트 고등부 팀의 코치님들께 배웠었다. 내 열정을 알아보신 대구체고 코치님께서 체고로 진학해서 핸드볼 제대로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 주셨다. 솔직히, 잘 나가는 명문 사립 중학교에서 체고로 진학하는 것이 일반적인 루트는 아니었다. 중학교 때 공부를 잘하진 않았지만, 인문계로 진학하는 데에 문제는 전혀 없는 딱 중위권 학생이었고, 고등학교 입시를 어느 학교로 갈지,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는 그런 상태였다. 그런 나에게 체고로의 진학 제안은 두렵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솔깃하고 마음이 끌렸다. 부모님과 먼저 상의했는데, 처음에는 당연히 반대하셨지만 체고를 가서 체대에 입학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나니 허락하셨다. 문제는 오랫동안 교육계에서 일하시고 대한민국 교육에 있어 높은 직위까지 올라가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손녀가 일반적인, 안정적인, 남들과 같은 루트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당연히 이해하지만, 내 결정을 막으실 수는 없었다. 당시에 내가 설정한 목표는 체고에 진학해서 핸드볼을 열심히 배우고, 체고에서 성적도 따서 지방에 있는 국립대 체대를 가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대학 목표까지는 진짜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목표는 아니었고, 체고에 진학하는 것까지가 내 진심의 목표였다. 그때 당시 체고생이 된 나를 생각하면 가슴이 뛰었으니까.
이렇게 가족들을 설득해 체고에 진학했다. 이게 첫 번째 나의 일반적이지 않은 선택이었다. 체고의 생활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었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던 나에게 기숙사 생활로 주말만 외박할 수 있는 것은 첫 한 달간은 정말 혹독했다. (여담으로, 어머니께서는 사실 내가 놀기를 좋아하기에 일반 고등학교에 보내는 것을 걱정하고 계셨다고 한다. 그래서 체고에 보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고 하셨다.) 체고생의 겨울방학은 평소보다 더 힘들게 운동하는 동계훈련이고, 시합이 다가오면 주말에도 외박을 하지 못한다. 하루의 훈련은 시간별로 분류해 부르는데, 새벽/오전/오후/야간 훈련이 있다. 보통 시합시즌이거나 동계훈련 기간일 때에만 오전훈련이 있고, 평소에는 새벽/오후/야간 훈련만 한다. 고등학생 정라원의 하루를 소개하자면, 우선 새벽 훈련으로 하루를 연다. 5시 40분까지 체육관에 가서 1시간 30분가량 기초 체력 훈련을 한다. 시합이 다가올 때에는 이때 인터벌을 했는데 정말 아침에 눈을 뜨기가 싫었다. 그냥 정말 아파서 못 일어나고 싶었다. 기절한 척할까 고민만 수천 번 하다가 일어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새벽훈련을 하고, 08시부터 12시까지 학교 수업을 듣는다. 오후에는 14시 30분부터 18시 30분까지 약 4시간 동안 메인훈련을 한다. 어떻게 시작하지 싶다가도 막상 시작하면 힘들어서 시간이 잘만 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저녁 먹고, 야간훈련으로 보통 20시부터 21시까지 개인 기량 향상을 위한 개인 훈련을 한다. 웨이트를 할 때도 있고, 슈팅 연습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운동하고 방에 와서 씻으면 22시, 공부하고 보통 12시가 다 되어서야 잠에 들었다.
오전에 듣는 수업은 일반 고등학생들과 같은 커리큘럼이지만, 다들 새벽훈련하고 몸이 피곤하다 보니, 그리고 대학 진학 자체가 목적이 아닌 친구들이다 보니 이 시간에 수업을 듣고 깨어있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나는 정말 열심히 수업 들었고, 모르거나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선생님들께 따로 찾아뵈어 여쭤보는 등 체고에서는 볼 수 없는 학구열이었다. 그렇게 체고에서 첫 학기의 성적은 전 과목이 1등이었다. 그렇게 나는 자신감에 차서 모의고사를 보기로 했다. 체고에서는 모의고사를 지원하지 않기에 주변 학교에 신청해서, 그 학교에 가서 풀어야 했다. 그렇게 자신감에 차서, 지원까지 해서 친 모의고사는 정말 처참했다. 국어 5등급, 수학 6등급, 영어 2등급이었다. 운동하는 시간 빼고 개인 시간이 생기면 대부분 공부하는 데에 썼지만, 그 양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이 성적을 받고, 나는 내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사실을 느꼈다. 그래도 수능은 최저만 맞추고 이렇게 우물 안 개구리 생활을 해서 생활기록부를 잘 챙기면 원래 목표했던 대학교 정도는 갈 수 있겠다고 생각으로 체고생활을 이어나갔다.
체고에서의 삶은, 나에게 있어 부모님으로부터 첫 독립이었다. 살림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초적인 생활력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위 말하는 ‘갓생’을 사는 방법을 배웠다. 고등학생 중에 체고생만큼 피곤하고 열심히 사는 고등학생은 거의 드물 것이다. 우리 핸드볼부는 일지 검사도 해서, 매일 일지도 써야 했다. 나는 이 사이에서 시간을 짬 내서 공부도 했으니 더욱 갓생을 체화했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해서 운동을 소홀히 한 것도 아니었다. 다른 팀원들보다 늦게 핸드볼이라는 스포츠를 접한 만큼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훈련시간보다 30분 일찍 나와서 슈팅 연습도 하고, 영상 보고 핸드볼 공부도 자주 하는 등 내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렇게 운동이든 공부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더니 주위에서 알아주기 시작했다. 핸드볼 능력이 부족해도 어릴 때부터 피겨를 했기에 기초 체력 자체는 웬만한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좋았다. 공부는 체고에서 두 말할 것 없이 우등생에 속했었고,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코치님, 감독님과도 좋은 관계를 맺었다. 그래서 2학년이 되며 장학금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