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이 되던 2020년, 동계훈련을 하던 중 코로나가 터졌다. 훈련 및 합숙을 중단하고 우리 모두는 각자 집으로 가야 했다. 나에게는 기회였다. 이때까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냥 무작정 수능 최저를 맞추기 위한 공부를 했다. 체력도 많이 올라왔겠다, 이때까지 못 한 공부를 하는 데에 그 체력을 다 썼다. 그렇게 몇 주를 수능 공부만 했다. 그렇게 공부하고 자체적으로 모의고사를 쳐보았는데, 국어가 2등급까지나 오른 것이다. 원래 국어가 문학/비문학/언어와 매체 이런 종류가 있는 줄도 몰랐던 나인데, 이렇게나 높은 점수가 나오다니 나조차도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이때 느낀 건, 이때 세상 살면서 내가 못 할 건 없다는 것이었다. 공부와는 늘 거리가 멀었던 나인데, 이렇게 열심히 하니 성적 많이 오른 게 느껴져서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기왕 하는 거 더 높은 인서울 체대를 목표로 잡고 공부해 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목표를 상향시켜 계속 공부하다가 한 질문을 던졌다. '내가 정말 체대에 가고 싶었던 걸까?' 난 망설였다. 스스로도 내가 체대를 정말 가고 싶어서 체고에 진학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럼 내가 뭘 하고 싶을까, 많이 고민하고 많이 서칭 해보았다. 대학도 많이 검색해 보았는데, 딱히 끌리는 대학이 없었다. 정치와 법 공부를 하며 법 공부가 재밌어서 법학과를 가고 싶었으나 법학과도 거의 다 없어지고 로스쿨로 개편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할 흥미 있는 학과를 찾지 못했던 중, 어떤 학교를 보고 딱 꽂혔다. 바로 경찰대였다. 이거구나 싶었다. 체고에 가고 싶었을 때 느끼던 감정과 같았다. 평소에도 권선징악의 주제를 가진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내 안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했고, 더구나 프로파일링에 관심이 있어 범죄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자주 보며 결말을 보기 전까지 혼자 추리를 하는 취미도 작게나마 있었기에 꽂혔던 것 같다. 그래서 경찰대라는 목표를 갖고 더욱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달가량을 집에서 생활하고, 이제 다시 학교로 들어가야 할 때가 왔다. 학교에 가면 공부를 할 수 있을 만한 환경이 되지 않았고, 정말 노력해서 잠도 줄여가며 겨우 확보하는 공부 시간은 3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경찰대는 7월에 1차 자체시험이 있기 때문에 고3 7월까지 1년 2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준비해야 했다. 국어 영어를 제외한 다른 과목들은 전부 노베이스에 가까웠기에(특히 수학은 인수분해도 잘 못했다.) 학교를 다니며 입시 준비를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내 인생 첫 자퇴를 결심했다. 내가 몇 달 동안 집에서 공부만 한 모습을 보신 부모님께서는 허락해 주셨다. 그뿐만이 아니라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허락해 주셨던 것 같기도 하다. 체고로 진학할 때와 마찬가지로, 조부모님께서는 반대하셨지만 결국 나를 응원해 주시게 되었다. 그렇게 고2 때의 나는, 경찰대를 가기 위해 정말 열심히, 부족한 만큼 더 노력했다. 매일 6시 이전에 일어나서 새벽같이 독서실에 가고, 거의 매일 10시간 넘게 공부만 했다. 처음에 수학의 기본기를 잡기 위해 약 4~5개월간 수학학원에 다녔다. 말고는 다른 과목들은 자기 주도적 학습을 통해 혼자 커리큘럼을 세우고, 인강을 들으며 공부했다.
혼자 공부하는 것이 안 불안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다른 친구들은 유명한 학원을 다니며 그 학원에서의 커리큘럼을 따라갔고, 전문가가 케어해 준다는 사실이 내가 바른 길로 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끔 품게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길을 알고 있는 사람을 따라 지름길로 가는 것보다, 내가 스스로 지도를 보며 이 길이 맞을까 생각을 하고,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내 능력을 더욱 길러주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당시에도 내게 맞는 공부법은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고, 학원은 내 개인의 커리큘럼보다는 획일화된 커리큘럼이었기에, 내가 정라원이라는 학생의 입시맞춤 전문가가 되어 공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입시를 준비하며 매일 들어간 입시 커뮤니티가 있다. 바로 경찰대와 사관학교 입시 카페였던 ‘제복인’이었다. 그 카페에서 여러 사관학교들을 접하고, 점점 경찰대만큼 육사가 멋있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군인이라는, 사관학교라는 분야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국내의 치안을 지키는 직업이라면, 군인은 국제적으로 우리나라의 치안을 유지하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더 크고 웅장하게 다가왔다. 사실 부모님께서는 경찰대보다는 사관학교에 진학하길 바라셨고, 나는 수학이 약했던 터라 더 난도가 높았던 경찰대 1차 시험보다 사관학교 시험을 보는 것이 나을 거라 판단했다. 그리하여 비슷한 계열이었던 육사를 목표로 고3을 맞이했다.
자퇴하고 혼자 공부만 하며 육사까지의 목표에는 다른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그 목표와 나만이 내 시야에 있었다. 1년 더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미친 듯이 공부했다. 5월에 검정고시 전 과목 100점을 받고, 2달 뒤인 7월에 1차 시험을 치러 갔다. 나는 혼자서 독서실에서 모의고사는 풀어봤어도, 실제 시험장에 가는 경험이 거의 처음이었다. 고1 때 모의고사 한 번 응시하러 다른 학교에 갔던 경험은 까마득하고, 검정고시는 워낙 부담감 없이 쳤던 터라 1차 시험을 치러 가서는 많이 떨었고 긴장했다. 1차 시험은 한 과목이라도 40점 이하로 떨어지면 탈락이었다. 나는 수학에 약했기에 수학에서 점수 얻을 생각보다, 자신 있었던 국어 영어에서 점수를 따는 전략으로 하기로 했다.
그러나, 너무 긴장을 한 탓인지 1교시였던 국어에서 평소에는 술술 읽히던 주제의 지문마저 난독증 걸린 마냥 한 문장을 10번씩 읽고 있었다. 완전 고장 나버린 것이다. 그렇게 국어에서 말리고, 수학은 원래 못 볼 걸 알고 있었기에 영어는 정말 집중해서 열심히 풀었다. 그렇게 시험을 다 보고 집으로 오는 길에 떨어졌을 것 같아 재수를 생각하며 다운되어 있었다. 그래도 이 시험을 통해 내가 실전 경험이 부족한 약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만 슬퍼하고 그 약점을 보완해 수능은 정말 후회 없이 내 실력 다 보여주고 와보자는 마인드로 결과발표까지도 다시 열심히 달렸다. 그렇게 결과 발표날, 국어 67점 수학 72점 영어 100점, 총점 239점으로, 거의 합격 문 닫고 1차 시험을 합격했다. 정말 그 순간에 소리를 질렀고, 너무 행복했다. 1차 시험이라는 큰 문을 통과했다는 게 너무 기뻤다.
이 기쁨도 잠시, 2차 시험이었던 체력평가와 면접, 그리고 수능까지 준비하는데 나는 다시 한번 몰두했다. 1차 합격 발표가 나고 50일 정도 남았던 2차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 하루의 끝은 달리기로 마무리지었다. 올바른 국가관과 나의 가치관을 정립하며 면접을 준비했고, 하나도 못했던 푸시업도 연습해서 체력 만점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이틀에 걸쳐 진행되는 2차 시험에서 나는 1.2km 달리기 4분 38초, 푸시업 38개, 싯업 89개로 만점을 받았다. 면접도 나름 다 대답 잘했던 것 같다. 이렇게 2차 시험을 보고 뭔가 붙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수능 보기 1주일 전에 우선선발 합격자 발표가 나는데, 내가 검정고시 출신인 점이 마이너스 요소로 여겨져 우선선발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에 수능까지도 열심히 준비했다.
우선선발자 결과 발표날, 독서실에 가지 않고 근처 카페에서 친한 친구들과 함께 합격자 조회를 했다. 너무 긴장됐던 순간이었다. 빨리 발표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 반, 확인하기 두려운 마음 반이었다. 만약 우선선발에서 떨어지면 수능으로 들어가면 됐지만, 수능까지 1주일 동안 마음을 잡고 공부할 자신이 없었기에 확인하기 두려운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10시가 되었고, 발표가 났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너무 행복하고 기쁘고 믿기지 않아서 눈물이 주룩주룩 쏟아졌다. 친구들도 자기 일 마냥 함께 기뻐해주고 축하해 줬다. 지금도 그때를 기록한 영상을 보면 울컥하곤 한다. 내가 이때까지 노력한 것을 보답받고, 그 노력이 있기까지의 내 크고 작은 결정들이, 그리고 그 상황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눈물이 났던 것 같다. 그날 그렇게 합격 통보를 받고, 독서실에서 짐을 바로 다 빼왔다. 이때까지 공부한 책들도 다 버렸다.
이렇게 합격한 이후 그래도 수능은 인생에서 한 번쯤은 쳐봐야 된다는 생각으로 부담감 없이 수능날을 맞았다. 이때까지 열심히 해온 것이 있으니 어느 정도 잘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모의고사 때보다도 부담감 없이 쳐서 그런지 수학 빼고 다 1등급이 나왔다. 심지어 국어는 백분위가 98이었다. 11월에 수능을 이렇게 보고, 다음 해 1월 21일에 가입교가 예정되어 있어 그때까지 하고 싶은 것들 다 해보고 살았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이때까지 공부하느라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그렇게 1월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