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로 돌아와서 다시 원래대로 생도생활에 몰두했다. 남은 학기 후회 없이 보내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았다. 대회준비 하느라 공부도 거의 하지 않아 모자란 공부를 몰아서 밤새워가며 했다. 그 결과 1학년 때에는 30등 정도 했는데, 2학년 1학기가 되어 종합 11등이라는 높은 등수를 받았다. 물론 성적이 다는 아니었지만 내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행복했다. 그렇게 나에게는 큰 일들이 많이 있었던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유격훈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2학년 하계군사훈련 때에는 몸 상태가 온전하지 않았기에 아무 직책도 지원하지 않았다. 대신, 동기들과 친해지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렇게 유격훈련을 받았다. 유격훈련은 샌드허스트 훈련의 일부 같았다. 솔직히 샌드허스트 훈련으로 역치가 높아져있어서 그런가, 별로 힘들지 않았다. 유격훈련을 받아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도피탈출'은 유격 훈련의 꽃이다. 유격훈련 과정의 가장 마지막에 최종 관문으로 있는 것이다. 이는 13~4명의 생도가 한 팀이 되어 완전 군장을 멘 채 독도법을 하여 고지를 점령하고 시간 안에 목적지까지 도착해야 하는 훈련으로, 1박 3일간 진행되었다. 나는 군장에 최적화된 상태라 나의 이런 노하우들을 동기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었고, 팀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커 적극적으로 전략을 짰었다. 나는 의지와 열정이 정말 충만했다. 그리고 모두가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모두의 체력과 의지는 달랐다. 그리고 이 훈련이 부담스럽고 하기 싫은 동기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목표가 있으니 주위를 고려하지 않고, 어떻게든 가야 된다고 말했다. 더 쉬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텐데, 그런 생각들을 다 받아주면 우리의 목표까지 가는 데에는 문제가 생길 거라고 판단해 목표까지 꼭 제시간 안에 가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 팀을 이끌어나갔다.
여기서 나는 또 한 번 배웠다. 모두가 나와 같은 열정을 갖고 있을 수 없고, 각자의 상황과 마음을 고려해 주는 게 좋은 리더라는 것을. 그 순간 동기들은 내가 정말 미웠을 것이다. 나였어도 그랬을 것이고. 다음부터는 목표보다 사람이 먼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나에게 있어서 1학년 때와 2학년 때, 두 번의 하계군사훈련 모두 체력과 군사력 그 이상의 것들을 배우게 해주는 좋은 경험이었다.
2학년 2학기 생활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지내다가 11월에 3군 사관학교 합동 순항훈련이 있었다. 군함을 타고 제주도를 지나 괌까지 가는 훈련이었다. 사실 말이 훈련이지 3군 사관생도들을 만나 친목 다지는 목적과 타군에 대한 이해가 주된 목적이었다. 그 경험은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나는 멀미가 심한 편이라 배를 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 처음엔 많이 걱정됐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배가 흔들리는 것에 적응하기까지는 힘들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배를 타고 이틀 정도가 지나서였을까, 태평양 바다의 가운데에 도착했다.
그날 밤, 동기들과 갑판에 나갔는데 내가 본 하늘이 그림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이렇게 하늘에 별이 많을 줄이야. 정말 하늘에 수놓은 별들이 빼곡하게 빛나고 있었다. 경이로움을 금치 못했다. 그 하늘은 내가 본 하늘 중 제일 멋있었다. 그렇게 넋 놓고 별을 보다가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도 보았다. 별똥별도 태어나서 처음 봤기에 신기했지만, 감탄할 시간도 없이 최대한 빨리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예쁜 경관을 많이 보며 좋은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게 해 주세요.'라고. 그렇게 도착한 괌에서 군사 기지를 둘러보고, 자유시간을 가졌는데 너무 행복했다. 동기들과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고, 괌 바다에서 노을을 보며 바다 수영도 했다. 정말 낭만 그 자체였다. 2학년 합동 순항훈련의 기억은 앞으로도 살아가며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그렇게 2학년을 끝내고 나니 상급생도인 3학년이 되었다. 확실히 상급생도가 되고 나니 육사 생활에 완전히 적응했기도 하고,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마음의 여유도 확실히 생겼다. 3학년 때 내 목표는 많은 도전과,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하는 것이었다. 쉴 틈 없이, 다른 생각 할 틈 없이, 군생활에서의 내 앞길만 생각하려고 애썼다. 그런 계획을 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사실 2학년 3월부터 주기적으로 달에 한 번씩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육사가 내가 생각했던 그런 조직이 아니라는 것은 1학년 때 진작 느꼈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육사는, 근엄하고 멋있기만 한 조직인 줄 알았다. 그러나 1학년 때 본 육사의 모습은 물론 내가 상상했던 모습도 있지만, 웃기고 재밌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생도생활이 더 즐거웠던 것 같다. 그 속에서 즐기며, 그리고 치열하게 1년 동안 생도생활을 하고 2학년이 되니 생각이 많아졌던 것이다. 너무 수동적으로, 도전의식 없고 안일하게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삶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갑자기 확 체감되어 모든 것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런 생각이 주기적으로 드는 것이 날 너무 힘들게 했기에 나 자신과 타협해야 했다. '3학년만 되어도 내 개인 시간이 훨씬 많아지면, 지금 같은 기분을 안 느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고, 주위에서도 지금 그런 거 때문에 힘든 거면 1년만 더 버텨보라고 했었다. 그렇게, 힘들 때마다 스스로를 더욱 채찍질하며 다른 생각 할 일 없게 몰아붙였다. 그게 3학년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3학년 올라갈 때 내가 세운 목표 리스트를 보면 누군가에게 쫓기듯, 어떤 압박감에 시달리듯 숨 막히게 적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 리스트 중에 첫 번째는 체력검정 등급 '골드'를 따는 것이었다. 3km 달리기 / 푸시업 / 윗몸일으키기 세 종목 각각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이 되어야 골드가 되는데, 이전까지는 윗몸일으키기가 약해 실버에 그쳤었다. 매 학기 골드에 도전했었지만, 이번만큼 간절한 적은 없었다. 꼭 이루어야 하니까, 그렇게 해야 내가 덜 혼란스럽고 마음이 덜 힘드니까. 나름 노력해서 12:09 / 55 / 99로 골드 등급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이루었다.
다른 목표는 바디프로필을 찍는 거였다. 원래도 운동하길 좋아하지만 먹는 걸 더 좋아하는 나이기에 잘 관리된 몸이라기보다는 튼튼한 몸에 가까웠다. 그런 나에게 바프 준비 식단은 너무 가혹했다. 사실 D-50까지도 식단을 그렇게 열심히 하지도 않았지만 심각성을 깨닫고 정말 해야 될 때가 온 것 같아 50일 남았을 때부터 식단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을 때가 많았지만, 이거라도 열정을 쏟아서 해야 다른 데로 눈 돌리지 않을 것 같아 포기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지금을 버틸 목표를 만들어야 했으니까. 그렇게 50일이 지나고 바디프로필을 찍겠다는 나름 나만의 큰 목표도 달성했다.
이렇듯 나는 마음이 힘들수록 이걸 잊기 위해서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나는 이렇게 살며 가치관이 혼란스러운 게 없어졌다고 착각했다. 사실은 폭발하려고 하는 화산을 막기 위해 물을 붓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연히 물은 소용이 없었다. 바디프로필이 끝나고, 수고한 나에게 쉬는 시간을 줬다. 원래 저녁 먹고 운동만 하다가 자는 일상을 반복했지만, 앞으로 며칠 동안 운동을 가지 않고 그 시간에 이때까지 덜 한 공부나 생각정리를 했다. 끊임없이 붓고 있던 물이 잠시 끊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