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해가 뜨고 별이 지면 02

단편소설

by 이만희

갑자기 현관문을 크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종옥은 가족들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가 급하게 슬리퍼를 신고 현관 밖으로 나갔다. 집 안으로 빚을 받으러 온 아주머니의 큰 목소리와 사정하며 작게 말하는 종옥이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들리지 않았지만 종옥이 쥐 잡듯이 잡히는 분위기였다. 윤택은 모른 채 누워서 계속 라디오만 듣고 있었다. 잠에서 깬 지은이는 이런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빚쟁이가 찾아오고 가장이라는 사람은 방에 누워서 라디오나 듣고 있고, 엄마는 늦게까지 식당에서 일하고 들어와 피곤한 몸으로 빚쟁이를 상대하는 모습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지은아, 일어났니?”


종옥이 집안으로 들어오면서 화장실 가는 지은이의 뒷모습에 대고 말을 걸었다. 지은이는 대답하지 않고 화장실 문을 세게 닫았다. 오줌을 누고 세수를 한 지은이는 세면대 위에 있는 거울을 보며 희뿌연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은 지은이는 거울에 물때가 있어 그런가 싶어 손으로 거울을 닦았다. 거울을 닦아도 지은이는 자기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은이는 거울을 한참 바라보다가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종옥은 김치와 햄을 볶아서 지은이의 도시락을 챙겨 주었다. 지은이는 누워있는 윤택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 밥상에 밥을 먹지 않고 등교했다.


지은이는 현관문에서 나와 계단으로 올라갔다.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다른 학생들과 같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은이가 타야 하는 버스는 504번이었다. 이미 지은이는 일주일 전부터 버스 번호가 잘 보이지 않았다. 정류장에 버스가 도착하면 다른 학생들이 버스 앞문쪽으로 몰려갔다. 그 틈새를 이용해 지은이는 버스 중간에 있는 번호판까지 달려갔다. 고개를 숙여서 버스 번호를 확인했지만 이미 버스는 출발해서 탈 수 없었다.


학교에 도착해서도 지은이는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없었다. 같은 교복을 입고 머리 모양까지 비슷한 친구들을 누구인지 먼저 알 수 없어 말을 걸 수도 없었다. 지은이는 특성화 고등학교에서 미용을 배우고 있다.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미용 관련 자격증을 따서 빨리 취업하고 싶었다. 하지만,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시력이 발목을 잡았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커트 실습 시간에 참여하기가 어려웠다. 지은이는 담임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했다.


“언제부터 눈이 안 좋아진 거니?”


담임선생님이 걱정하며 물어보았다. 지은이는 잘못한 게 없는데도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부모님은 알고 계시니?”


“아니요, 아직 말씀드리지 못했어요.”


아버지는 매일 폐휴지를 줍고 어머니는 식당에서 설거지 일을 하셔서 차마 자기 시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지은이는 오직 빨리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고 싶었다. 침묵이 흐르고 있다가 다른 선생님과 인터폰을 하고 담임선생님이 말을 했다.


“지은아, 우선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서 선생님도 좀 알아보고 다시 말해줄게. 그리고, 부모님께 빨리 말씀드려서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지은이는 크게 해답을 바라고 담임선생님에게 상담을 요청한 것은 아니었지만 괜히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오는 데 담임교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박 선생, 이따가 배구하고 지난번 그 고깃집으로 하자고. 몰라 갑자기 눈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병원 가보라고 했어”


어깨가 축 쳐진 지은이는 교실로 들어갔다. 교실 책상에 자리를 찾기 위해 뒤에서부터 책상을 더듬거리며 찾았다. 자기 자리인 줄 알았는데 누가 앉아서 친구들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은이는 다시 교실 뒤부터 책상을 더듬거리면서 자기 자리를 찾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다른 학생들은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은이는 세 번째 자리를 더듬거리며 찾았다. 지은이는 더듬거리면서 자리를 찾는데 비켜주지 않은 학생들에게 책상을 들어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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