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실명으로 갑작스럽게 시력을 잃은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눈앞에 펼쳐져 있던 세상이 한순간에 닫혀버렸을 때, 그 학생들이 느끼는 절망감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평범했던 일상이 단절되고, 자신이 속한 세상과 단절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감당하기 힘든 고통일 것이다. 하지만 그 절망 속에서도 살아보겠다는 의지로, 또 자립을 향한 작은 희망을 안고 장애인학교에 찾아온다. 학생들은 입학해서 직업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나는 늘 생각한다. 과연 직업교육만으로 학생들이 ‘자립’할 수 있을까? 직업 하나를 얻는다고 해서 사람이 곧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자립은 혼자 살아가는 기술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힘에서 나온다. 결국 학생들이 세상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책무였다. 사회성은 교실 안에서 교과서를 통해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와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될 때, 학생들의 권리와 인권도 함께 존중받는다.
그러나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교육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한계를 마주한다. 좁은 교실과 교정 안에서는 학생들이 진짜 세상을 경험할 수 없다. 갈등이 생기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깨달았다. 교육은 학교 안에서만 이루어지면 안 된다. 교실을 넘어, 학교 밖 지역사회로 나가야 했다. 마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학생들의 삶이 펼쳐지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구청이 주관한 ‘동구 행복이음 교육지구 마을결합시범학교’ 사업은 우리 학교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학생들이 마을을 두려움의 공간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터전으로 느낄 수 있도록, 촉각으로 만지는 3D 프린팅 지도를 제작했다. 지역의 5개 구를 양각과 음각으로 표현하고, 3개의 하천과 5개의 산을 촉각자료로 제작했다. 학생들은 손끝으로 우리 마을을 읽으며,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우리 마을 톺아보기’라는 마을을 이해하는 책을 만들었다. 학생들의 장애 특성을 고려하여 점자, 음성자료, 확대 글자로 제작해 모든 학생이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책 속에는 마을의 역사와 전통, 향토 음식, 오래된 명소가 담겨 있었다. 학생들은 이 책을 통해 눈으로 보지 못해도 손끝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책만으로는 부족했다. 계절마다 변하는 마을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우리 마을 탐방하기’ 현장학습을 시작했다. 수업시간에 배운 흰지팡이 보행법을 실제 길 위에서 사용하며, 학생들은 마을 곳곳을 함께 걸었다. 낯선 길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두려움은 설렘으로 바뀌었다. 학생들은 함께 걷는 과정에서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인정하며 연대하기 시작했다.
마을 탐방이 끝나면 우리는 마을의 향토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칼국수, 순두부, 올갱이국 같은 음식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소통의 장이었다. 밥을 함께 먹으며 학생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음식은 마음의 벽을 허물고, 관계를 회복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마을에서 쌓인 긍정적인 경험은 학생들을 성장시켰고, 행복한 추억으로 남겼다.
학생들의 긍정 에너지는 자연스럽게 지역사회로 확장되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안마 기술과 바리스타 기술을 융합해 ‘힐링건강카페’를 운영했다. 지역 주민들에게 안마를 해주고, 따뜻한 커피를 대접하며 학생들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자존감이 올라갔다. 봉사를 통해 학생들은 ‘나는 할 수 있다’라는 경험을 얻었고, 주민들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기 시작했다. 학교와 마을이 함께 변해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교육의 성과였다.
또한, 학생들의 꿈을 확장시키기 위해 ‘멘토교실’을 열었다. 교육, 상담, 의료, 음식, 명상, 여행, 사회복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했다. 학생들은 직접 만난 멘토들과의 대화를 통해 세상에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 만남은 학생들의 진로 감수성을 자극했고,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출발점이 되었다.
진정한 교육은 교실에 머무르지 않는다. 마을과 손잡고 학생들이 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배움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삶이 변한다. 학생들은 단순히 직업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 자라난다. 그것이 내가 꿈꾸는 교육이고, 우리 마을이 함께 만들어가는 교육공동체의 모습이다.
우리의 노력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학교와 마을이 협력하며 만들어낸 배움의 경험이 학생들에게 자립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 함께 나누고 소통하는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