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만원의 따뜻한 손길

by 이만희

겨울은 늘 가난의 그림자를 호되게 드리운 계절이다. 눈이 흩날릴 때마다, 차가운 바람은 목을 움츠리게 하고, 얼굴의 살갗을 스칠 때마다 어김없이 내 마음속의 허전함이 더 선명해진다. 나는 이 차가운 계절 앞에서 언제나 마음속 작은 희망의 불씨를 품고 살아가기를 꿈꾸지만, 현실은 언제나 냉혹했다. 스무 살, 대학교 새내기 시절의 어느 겨울. 나는 그때,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면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추위와 허기를 맞이해야 했다.

내 자취방은 말 그대로 한낱 작은 공간이었다. 벽은 때 묻고, 낡은 목재에는 금이 가서 금방이라도 무너지겠다는 듯했고, 창문은 틈새로 바람이 새어 나왔다. 그 틈새로 스며드는 바람은 내 피부를 찌르고, 손끝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뜨거운 차 한 잔도 잠시 후면 식어버릴 만큼 냉기가 치고 들어왔다. 침대 위에 놓인 낡은 이불은 피로 물들었고, 그 안에 들어가 몸을 웅크려도 차가운 공기를 막지 못했다. 내 방 안은 조용히, 그러나 끔찍하게 차가웠다. 그리고 생계는 더할 나위 없이 절망적이었다.

통장에 남은 돈은 고작 삼만 원. 그것으로 내일의 끼니를 해결하거나, 한 번의 기름 충전을 감당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가슴이 먹먹해졌다. 무거운 현실이 내 머리 위에서 무너질 듯했고, 허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 것밖에 달리 할 수 없었다. 가난은 냉기보다도 더 차갑게 내 앞을 가로막았고, 나는 그 절망에 무력감과 함께 몸을 떠는 듯한 외로움을 느꼈다.

그날 저녁, 주인집의 보일러는 쉼 없이 돌아갔다. 따뜻한 기운이 흘러나오던 그 집에서 나는 곧 낯선 냄새를 맡았다. 삼겹살이 구워지는 냄새, 그윽한 고기 냄새가 벽을 타고 내 방으로 흘러들어왔다. 그 냄새는 배고픔을 더욱 자극했고, 온통 내 내면을 허기와 외로움이 채우기 시작했다. 나는 허기와 외로움이 어쩔 수 없이 부모를 원망하게 만들었다. ‘왜 이렇게 못살게 태어났을까’, ‘이렇게 된 것이 내 탓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마스 날조차, 내게는 따뜻한 온기와 축복이 아닌, 차디찬 공기와 허기만이 가득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마지막 희망의 끈을 잡고 전화를 걸었다. “삼만 원어치 기름 넣어 주세요.” 목소리가 떨리면서도 간절했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뚝뚝했다. “반 통도 오만 원이지만, 10만 원 치는 넣어야 배달이 가능하다”는 말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용기를 내어 다시 말했다.

"제가 시각장애가 있어서 직접 통을 가지고 갈 수 없어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사장님은 우선 알겠다고 하고 급하게 전화를 끊으셨다. 그러나 몇 분 후, 기름이 담긴 용달차가 도착했다. 기사님은 내 자취방 기름통에 반 통의 기름을 넣어주시고 사장님이 3만 원만 받아오라고 하셨다며 떠나셨다. 귓가에 들려오는 작은 종소리 같은 울림을 느꼈다. 그 종소리는, 성탄절의 화려한 축제와는 전혀 다른, 인간의 따뜻한 자비와 온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날 밤, 내 방 안은 차가운 공기와 함께 희망의 온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기름통에 채워진 반 통의 기름, 그것이 내게 준 것은 단순한 연료 그 이상이었다. 그것이 말해주는 것은, 따뜻한 손길과 한마음의 온기였다. 바로, 이름 없는 누군가의 자비와 배려였다. 그 작은 섬광이 내 마음속 깊이 스며들 때,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희망은 크고 화려한 약속이 아니라, 이렇게 사소하고 조그마한 온기임을.

그 이후로, 겨울이 찾아올 때마다 난 그날의 종소리를 떠올렸다. 희망이란 결국, 누군가의 작은 사랑과 배려를 통해서 피어나고, 또 무한히 이어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가난이 내 삶을 짓누를 때, 허기와 외로움이 내 영혼을 흔들 때, 나는 그날 만난 따뜻한 손길이 나에게 준 희망의 씨앗을 기억할 것이다.

이제 나는, 일상의 작은 순간에서도 누군가를 위한 따뜻한 마음을 놓지 않으려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반드시 피어난다는 것을, 그리고 그 희망은 결코 크거나 대단할 필요 없음을 전하고 싶다. 단지, 시린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작은 손길이 모여서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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