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거울이 되어주는 말

by 이만희

복도에서 한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인 채 걷고 있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고개 들고 걸어"라고 지적했을 것이다. 짧고, 명확하고, 효율적인 지시. 교사로서 오래 훈련된 말투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한마디가 아이에게는 또 하나의 '틀림'으로 기록된다는 것을. 나는 제대로 걷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작은 낙인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물었다.

"고개를 들고 걸으면 목 건강에도 좋지 않을까?"

학생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가 올라갔다. 명령이 아닌 질문은 사람을 방어가 아닌 성찰로 이끈다. 질문하는 사람은 '나를 고치려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해 생각해 주는 사람'으로 기억된다.

교실에서 B학생이 혼자 앉아 눈을 자꾸 만지고 있었다.

"눈 누르지 말라고 했잖아."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꾹 삼켰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B야, 눈을 자꾸 손으로 만지면 세균에 감염되지 않을까?"

B학생은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손을 내렸다. 그 순간 나는 또 한 번 배웠다. 아이들은 내 말의 '내용'은 쉽게 잊어버려도, 그 말이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게 했는지는 절대 잊지 않는다는 것을.

거울을 볼 수 없는 아이들은 스스로의 표정을 교정할 기회가 없다.

자신이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어떤 자세로 서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의 자아상은 타인의 말로 만들어진다. 내가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그들의 거울이 되고, 그 거울 앞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거울이었을까.

어느 날 녹음기를 켜고 내 수업을 들어봤다. 놀랍게도 나는 같은 표현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지?", "알겠지?", "이해되지?" 무의식적으로 쏟아내는 습관적 어미들이 말의 맛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나는 그날부터 학생들과 나눈 대화를 스마트폰에 메모하기 시작했다. 어떤 말을 했고, 학생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같은 학생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말을, 새로운 관심을 건네기 위해 기록했다.

말끝을 내리는 다정한 말투는 장애로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하지 않을까?", "~하면 좋지 않을까?"

끝을 열어두는 질문은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고,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그 여백 속에서 아이들은 자라난다.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를 위축시킨다. 더듬거리고, 목소리가 작아지고, 자신감을 잃는다. 하지만 내가 밝은 목소리로 "오늘 잘했어", "네 목소리 참 좋다"라고 말하면, 아이들의 표정이 환해진다. 목소리만으로도 미소는 되찾아진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를 만나러 온 날, H 학생이 내게 말했다.

"선생님 목소리 들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게 제일 좋았어요."

그날 나는 알았다. 내가 가르친 지식은 흐릿해져도, 내 목소리가 건넨 온기는 아이들의 마음에 오래 남는다는 것을. 졸업 후에도 미소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다짐한다.

오늘도 따뜻한 목소리로, 끝을 내리는 다정한 말투로, 아이들의 거울이 되어주리라고 결심한다.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거울일까. 그 질문을 품고, 오늘도 교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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