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학교 기숙사는 참 특별한 공간이다. 부모의 품을 떠나 청소년기를 혼자 건너야 하는 아이들이 모여 사는 곳. 주말에도 집에 가지 못한 채 텅 빈 복도를 배회하는 아이들의 발소리가 내 가슴을 울린다. 열다섯, 열여섯의 나이에 그들은 가족의 사랑 대신 선배의 심부름을, 따뜻한 저녁 식탁 대신 차가운 식당 트레이를 마주한다.
A는 일반학교에서 견디다 못해 우리 학교로 왔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했던 따돌림과 폭력.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이 아이는 또 다른 외로움과 마주해야 했다. 어머니가 없는 밤, 어둠보다 더 깊은 고독 속에서 아이가 찾은 것은 스마트폰이었다. 게임 속 세계만이 유일하게 자신을 환영해 주는 곳이었을까.
어느 날 아침, 또다시 A의 방문을 두드렸다. 수업 시간은 이미 시작되었고, 다른 아이들은 교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자 이불속에서 겨우 눈을 뜨는 A와 마주쳤다. 그 순간, 내 입 끝에서 맴돌던 말들이 있었다.
"아직까지 자고 있으면 어떻게 하니? 너 때문에 수업도 못하고 다들 기다리잖아."
그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오려고 했다. 교사로서의 답답함, 책임감, 때로는 무력감까지. 하지만 나는 그 말들을 삼켰다. 한 박자 숨을 고르고 물었다.
"요즘 신경 쓰이는 일이 있니?"
목소리 끝을 올리지 않고 천천히 내렸다. 질문이 아니라 안부처럼, 걱정이 아니라 관심처럼. A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이불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선생님, 저… 밤에 잠이 안 와요."
그제야 알았다. 이 아이는 게임에 빠진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피하고 있었다는 것을. 불을 끄고 누워 있으면 일반학교에서의 기억들이,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이,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온다는 것을.
교사의 말은 칼이 될 수도, 담요가 될 수도 있다. "도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는 거야"라는 말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아이의 자존감을 베어낸다. 이미 낮아질 대로 낮아진, 바닥을 기는 자존감을 더욱 짓이긴다. 반면 "수업을 늦게 들어오면 진도를 따라가기 힘들 수 있어. 선생님은 네가 뒤처지는 게 걱정돼"라는 말은 아이를 감싸는 담요가 된다.
그 차이는 단순히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를 질책하느냐, 미래를 함께 바라보느냐의 차이다. 학생을 평가하느냐, 학생을 이해하려 하느냐의 차이다. 교사인 내가 어떤 위치에서 말하느냐에 따라 같은 상황도 전혀 다른 의미로 아이에게 전달된다.
A와의 대화 이후, 나는 더 많은 것들을 보게 되었다.
"민서야 선생님은 매일 우리 교실을 환기시키는 네가 있어서 정말 고마워. 너 없었으면 선생님 큰일 날 뻔했다."
창문을 여는 단순한 행동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존재 자체에 가치를 발견해 주었다. 학생의 얼굴에 번진 미소는 그 어떤 교육적 성과보다 높았다. 무기력의 늪에서 한 발짝 나올 수 있는 작은 계단이 되었다.
졸업생들이 찾아와 "선생님, 기억나세요?"라고 물을 때가 있다. 그들이 기억하는 선생님의 모습은 대부분 비슷하다. 뛰어난 수업 기술도, 엄격했던 생활지도도 아니었다. 그저 "친절한 말투로 좋은 말을 해주셨던 선생님"이다.
친절함이란 무엇일까. 나는 오랫동안 그것을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웃는 얼굴, 부드러운 제스처, 공손한 언사.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진짜 친절함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노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지금 이 아이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A는 이제 아침에 스스로 일어난다. 완벽하지는 않다. 가끔 늦잠을 자기도 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수업 시간 내내 기숙사에 누워 있지는 않는다. 달라진 것은 A의 의지력일까? 아니면 생활 습관일까? 나는 그보다 A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문제 학생이 아니라 외로운 아이로, 게으른 학생이 아니라 아픔을 견디는 청소년으로.
나는 생각한다. 내일 아침 내가 건넬 말들의 온도를. 그 말들이 차갑게 얼어붙은 아이의 마음을 녹일 수 있을지. 아니면 더 깊이 얼려버릴지. 교단에 선 지 여러 해가 흘렀지만, 여전히 말은 어렵다. 특히 상처받기 쉬운 아이들 앞에서는 더욱 힘들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내 말이 따뜻함을 잃지 않는 한, 아이들은 조금씩 변한다는 것. 씨앗이 얼어붙은 땅속에서도 봄을 기다리듯, 아이들도 따뜻한 말 한마디를 기다리며 견딘다는 것.
오늘도 나는 교실로 향한다. 손에는 교과서를 들고 있지만, 내 마음속에는 따뜻한 말들을 담아간다. 때로는 서툴고, 때로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진심을 담은 말들을. 그것이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에게 빛이 되어줄 수 있기를, 귀로 세상을 보는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풍경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