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소리는 교실 속 난로

by 이만희

내 목소리는 교실 속 난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빛을 잃은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때로 스스로를 가두는 보이지 않는 벽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타인의 미소나 따스한 눈 맞춤, 다정한 몸짓 같은 선명한 신체 언어를 읽을 수 없기에, 아이들은 세상의 모든 감정을 소리에, 특히 목소리에 의지해 해석한다.

아이들에게 내 목소리는 교실의 온도를 조절하는 난로이며, 때로는 세상을 향해 열리는 유일한 창문이 된다. 아이들은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만으로도 내 감정의 결을 정확히 읽어낸다. 목소리의 크기, 속도, 굵기라는 세 가지 실로 상대방의 성격과 감정 상태라는 옷을 짓는 데 능숙하다.

가령, 내가 아내와 작은 말다툼이라도 한 날이면 어김없이 아이들은 내 마음의 그림자를 먼저 알아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수업을 시작해도, 평소보다 한 톤 가라앉은 목소리, 미세하게 느려진 말의 속도를 아이들은 귀신같이 잡아낸다. 그러면 교실에는 금세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는다. 내 감정의 먹구름이 어느새 아이들의 마음으로 옮겨가 교실 전체를 뒤덮는 것이다.

반대로 기분 좋은 일이 있어 한껏 들뜬 목소리로 교실 문을 열면, 아이들의 얼굴엔 보이지 않는 미소가 환하게 피어난다. 내 목소리에 실린 경쾌한 에너지가 아이들의 마음속에 그대로 스며들어 작은 축제를 여는 것이다. 그럴 때면 교실은 햇살 가득한 들판처럼 따스하고 생기가 넘친다. 아이들은 내 목소리를 거울삼아 자신의 감정을 비추고, 내 목소리를 따라 함께 웃고 함께 차분해진다.

교사의 목소리는 이토록 커다란 힘을 가진다. 아이들을 미소 짓게 하는 힘, 그 미소가 아이들의 남은 날들을 채워갈 것이라는 믿음. 이것이 내가 매일 아침 목소리를 가다듬는 이유다.

목소리는 한 사람의 영혼이 담긴 그릇과 같다. 그 사람의 성정과 가치관, 살아온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맑고 밝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그 성격 또한 그러하여,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환하게 만든다. 차분한 목소리는 평온한 내면의 깊이를, 힘찬 목소리는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열정을 보여준다.

반면, 자신도 모르게 내쉬는 말끝의 한숨은 스스로를 향한 열등감의 다른 표현일 수 있고, 개미처럼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는 자신감 부족과 관계의 어려움을 암시하기도 한다. 거짓을 말하려는 사람은 말이 빨라지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은 말이 느려지는 것처럼, 목소리는 그 어떤 표정보다 정직하게 우리 자신을 드러낸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교실이라는 작은 세상을 열기 전, 나만의 의식을 치른다. 출근하는 차 안에서는 차분한 클래식을 들으며 밤새 쌓였을지 모를 마음의 먼지를 털어낸다. 내 안에 고요와 평온이 먼저 깃들어야 아이들에게도 온전한 평화를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리면 운동장을 천천히 돌며 오늘 만나게 될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린다. 그리고 활짝 미소 짓는 연습을 한다. 눈으로 미소를 전할 수 없기에, 내 미소가 목소리에 온전히 녹아들기를 바라면서. 따뜻한 원두커피 한 잔으로 목의 긴장을 부드럽게 풀고 나서야 비로소 교실로 향한다.

온 마음을 다해 건넨 밝고 활기찬 인사 한마디가 아이들의 하루를 여는 열쇠가 된다. 내 목소리로 인해 아이들이 교실에서만큼은 어떤 감정의 동요 없이, 오롯이 배움에 집중하고 안정감을 느끼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모두 말하는 존재이기에, 매일 목소리로 다른 이의 마음에 그림을 그린다. 우리의 목소리 하나가, 특히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세상의 전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조금 더 신중하고 따뜻하게 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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