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수업 중 내가 던진 질문에 다른 답을 말한 S학생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마치 정해진 규칙이라도 되는 듯, 아이의 목소리에는 머뭇거림조차 없었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 무언가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아이는 무엇이 죄송했을까.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이, 남들과 다른 답을 내놓은 것이 왜 사과의 이유가 되어야 했을까.
나는 B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B야, 죄송한 일이 아니야. 아주 훌륭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해준 거야. 선생님은 네 생각이 참 궁금하고 소중해."
내 말에 아이의 동그란 눈이 조금 더 커졌다. 그 작은 흔들림 속에서 나는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말들이 아이들의 세상에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기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장애인학교, 이곳 기숙사에서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학교는 매일같이 정답을 요구하고, 정해진 속도를 따라오라 재촉한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끊임없이 평가받고, 자신의 고유한 색을 잃어버리곤 한다.
나의 말 한마디가 아이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바탕이 되고,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용기를 주는 씨앗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들의 말과 침묵, 그 모든 순간을 소중히 기다린다.
우리 아이들에게 젓가락질은 단순히 식사 도구를 사용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에게 두 개의 가느다란 막대기로 음식을 집어 올리는 일은 섬세한 감각과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많은 아이들이 이내 젓가락을 내려놓고 익숙한 숟가락과 포크를 든다. 자연히 숟가락과 포크로 먹기 쉬운 반찬에만 손이 가게 되고, 식판 위에는 늘 비슷한 음식들만 남는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맛과 향이 존재하지만, 아이들의 미각은 한정된 세상에 갇히고 만다.
편식은 단순히 음식의 호불호를 넘어, 새로운 경험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현장체험학습을 떠나는 날, 아이들은 식당 메뉴판 앞에서 한참을 망설인다. 익숙한 메뉴가 없으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불안해한다. 주변에서는 "빨리 골라!"라는 재촉의 말이 날아들고, 아이들의 어깨는 더욱 움츠러든다.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의 잘못이 아니다. 충분히 경험하고, 스스로 결정할 기회가 부족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보다 먼저 급식실로 향한다. 아이들이 젓가락으로 조금이라도 쉽게 집을 수 있도록 반찬을 잘게 썬다. 깍두기 하나라도 먹기 좋은 크기로, 엉겨 붙은 나물은 가닥가닥 풀어놓는다. 내가 쏟는 잠깐의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세상을 향한 문을 여는 손잡이가 될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나의 작은 수고를 아는지 모르는지, 서툰 젓가락질로 음식을 집어 올리며 고군분투한다. 밥알 하나를 집어 올리고 환하게 웃는 아이,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마침내 시금치를 입으로 가져가는 아이의 진지한 얼굴. 그 모습 하나하나가 내게는 세상 가장 아름다운 시가 된다. 나는 그저 묵묵히 곁을 지키며 "괜찮아, 천천히. 포기만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젓가락 두 개로 세상을 다 들어 올릴 날이 올 거야"라는 긍정의 말을 한다.
기다림은 내게 가장 중요한 교육의 언어다. 메뉴판 앞에서 망설이는 아이에게 "왜 선택하지 못하니?"라고 묻는 대신, "어떤 맛을 먹어보고 싶어? 매운 것은 어때? 아니면 부드러운 맛이 좋을까?" 하고 질문의 방향을 아이의 내면으로 돌린다. 이는 단순히 메뉴를 골라주는 것을 넘어, 아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원하는 것을 발견하도록 돕는 과정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빨리'라는 말을 강요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 그 속도는 결코 틀리거나 뒤처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조금 더 깊이, 그리고 찬찬히 느끼고 받아들이는 그들만의 방식일 뿐이다. 아이가 하나의 메뉴를 고르기 위해 들이는 시간은, 수많은 생각의 가지를 뻗어 올리고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소중한 사유의 과정이다.
나는 그 충분한 시간을 기꺼이 함께 기다린다. 아이의 침묵이 답답함이 아닌, 깊어짐의 과정임을 믿기 때문이다. 마침내 "저는 이게 먹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에는, 스스로 선택했다는 자부심과 기대감이 담겨 있다. 이 작은 성공의 경험들이 쌓여 아이들은 삶의 중요한 순간에도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기 주도성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세상은 우리 아이들을 '느리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감히 말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은 느린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속도로 충분히 깊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뿌리를 깊게 내리는 나무가 더 굳건히 서 있듯, 아이들은 자신만의 시간 속에서 단단한 내면을 키워가고 있다.
오늘도 나는 아이들의 서툰 젓가락질을, 망설임 가득한 침묵을, 조금은 다른 대답을 사랑으로 기다린다. 그리고 내 기다림의 언어가 아이들의 삶에 따뜻한 햇살이 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