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에 실명하고 안마를 배우러 들어온 전공과 학생들이 졸업반이 되어 졸업이 코앞으로 다가오면, 학생들의 눈빛은 깊어지고 질문은 현실적으로 변한다. "선생님, 저 안마원으로 가야 할까요, 아니면 헬스키퍼로 일해야 할까요? 안마 말고 다른 길은 없을까요?"
그들의 질문 속에는 앞날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이 사회에서 스스로 설 수 있을지에 대한 간절함이 뒤섞여 있다. 교사로서 내 심정은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단다'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그 미지의 영역을 '모른다'는 불친절한 한마디로 덮어버린다면, 학생과의 대화는 거기서 끝나버린다. 학생은 실망하고, 그 순간 교사에 대한 신뢰는 엷은 유리처럼 금이 간다.
교사로서 나는 그들의 질문에 완벽한 정답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들을 대하는 태도, 특히 내 말투는 조심해야 한다. 학생의 질문에 답을 할 때, 과거 졸업생들이 선택했던 다양한 진로의 사례를 꺼낸다. "누구는 안마원에서 일하며 이런 방식으로 경력을 쌓았고," "또 다른 이는 헬스키퍼로서 이러한 업무 환경에서 만족을 찾았어요," "그리고 안마사업단에 취업해서 안정적으로 일을 시작한 경우도 있었어요."처럼 구체적인 이야기를 건넨다.
물론 학생들은 그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투영해 볼 뿐, 정답을 얻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교사가 최선을 다해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동원하려 했다는 진심은 학생들의 마음속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담아내는 것이 바로 말투다.
내가 가르치는 시각장애 학생들은 유난히 세련된 말을 선호한다. 여기서 '세련됨'이란 화려한 미사여구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부드러움을 의미한다. 부드럽게 말을 건넬 때, 학생들은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낀다.
시각장애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진 학생들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것은 대개 거친 말투다. 무심코 던진 강하고 권위적인 어조, 혹은 조금이라도 무시하는 듯한 뉘앙스는 학생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들에게 세상은 이미 차갑고 단단한 곳인데, 기댈 곳이라 믿었던 학교에서마저 날카로운 언어를 마주한다면, 그들은 쉽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그래서 교사는 말을 고르는 일에 신중해야 한다. 이는 학생들과의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다. 진실만을 딱딱하게 나열하는 대화는 때로 차가운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 때로는 다소 가벼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학생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실수로라도 교사의 권위가 느껴지는 강한 말투, 지시하는 듯한 어조는 학생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대화에 앞서 습관적으로 호흡을 차분하게 가다듬는다. 너무 강한 어조로 말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혹여 지쳐서 목소리가 딱딱해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살핀다.
말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다. 특히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언어는 그들이 세상을 느끼고, 관계를 맺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중요한 감각이다. 부드러운 말투는 그들의 불안한 마음을 감싸 안는 온기가 된다. 교사의 부드러운 언어 속에서 학생들은 비로소 '나도 이 사회에서 가치 있는 사람이다'라는 자존감을 다시 세울 힘을 얻는다.
우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학생의 미래와 자존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달을 때, 우리는 말을 더욱 신중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다듬어야 할 책임감을 느낀다.
보이지 않는 것을 만지는 언어, 이것이 말투의 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