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어머니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는 깊은 죄책감이 가라앉아 있었다. 아이가 빛을 잃은 것이 모두 자신 때문이라고, 그렇게 믿고 있었다.
"선생님, 우리 아이는 세상에 자기 같은 아이만 있는 줄 알아요."
아이는 어머니가 만든 세계에서 모든 또래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배웠다. 그것이 당연한 세상의 모습이라 믿으며. 어머니는 아이가 학교에 가서 다른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앞이 보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아이가 느낄 상실감과 부모에 대한 원망을 어머니는 감당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 죄책감은 어머니를 병들게 했다. 우울증이 왔고, 여러 번 죽음을 생각했고, 결국 술에 기댔다. 어머니와 상담을 하는 동안 교사로서의 무게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시각장애학생들에게 교사는 세상을 만나는 첫 번째 창이다. 경험이 제한되어 있고, 만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아이들은 스스로 세상을 판단하기 어렵다. 교사의 눈이 세상을 보는 안경이 되고, 교사의 입이 세상을 설명하는 교과서가 된다.
내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아이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 뿌리를 내린다. 그 말은 아이가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된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 아무 말도 쉽게 할 수 없다.
나의 시선 하나, 말투 하나가 아이의 세계를 만든다.
시각장애학생들은 말로 세상과 연결된다.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모두 말을 통해 느낀다. 시각 정보가 제한된 아이들에게 언어는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유일한 도구다.
그래서 무엇을 말하는가만큼, 어떻게 말하는가가 중요하다.
따뜻한 격려도 차가운 말투에 담기면 칼이 된다.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도 다정한 말투를 만나면 위로가 된다. 얼굴 표정이나 몸짓을 온전히 느낄 수 없는 아이들은, 소리의 결을 읽는다. 어조의 높낮이로 마음을 읽는다. 말의 속도로 진심을 가늠한다.
요즘 아이들은 이모티콘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느낌표 하나, 하트 하나로 감정을 전한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그럴 수 없다. 오직 목소리의 섬세한 떨림으로, 말투의 미묘한 변화로 상대의 마음을 읽고 자신의 마음을 전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자주 돌아본다.
내 말은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가
피곤한 날,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을까. 나도 모르게 날카로워진 말투가, 귀찮음이 묻어난 어조가 아이들의 여린 마음에 생채기를 내지는 않았을까.
우리가 아이에게 던진 말 한마디가 그 아이의 자존감을 만든다. 내가 동료교사에게 건넨 말투가 오늘 하루의 색깔을 결정한다. 우리가 무심코 한 친절한 말이 학생이나 선생님들의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다.
말은 공기처럼 가볍게 흩어지는 것 같지만, 듣는 사람의 내면에서는 단단히 굳어진다. 격려의 말은 날개가 되고, 무심한 말은 무게가 된다.
그러니 말하기 전에 잠시 멈추어 보자.
내 안은 고요한가. 내 마음은 따뜻한가. 이 말이 상대의 마음에 어떤 집을 지을 것인가.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잘 닦인 내면에서 우러나온 진심의 말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우리의 말이 누군가의 세계를 만든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오늘, 조금 더 따뜻한 말투로 세상에 말을 걸어보자.
우리의 목소리가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여는 유일한 창이 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