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소리와 감촉, 공기의 미세한 떨림으로 세상을 읽어낸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말'이라는 것은 단순한 소통의 도구를 넘어, 세상을 창조하는 조각칼과 같다. 아이들의 세계는 누군가가 들려주는 말에 따라 따뜻한 색으로 채색되기도 하고, 차가운 어둠 속에 잠기기도 한다.
"싫어요.", "안 할래요.", "귀찮아요."
아이들의 입에서 무심코 흘러나오는 이 말들은 유독 나의 마음에 날카롭게 박힐 때가 있다. 그것은 단순한 투정이나 감정 표현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스스로 문을 닫아버리는 습관성 표현인 경우가 많았다. 해보지도 않고 거부의 벽을 세우고, 느껴보기도 전에 귀찮다는 커튼을 치는 것이다. 이런 부정적인 언어 습관은 아이의 내면에 짜증이라는 무거운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 별일 아닌 것에도 쉽게 마음을 다치게 만든다. 마치 세상의 모든 궂은일이 자신에게만 일어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말을 내뱉는 순간, 그 차가운 파동을 가장 먼저 듣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이다. 말에는 자석과도 같은 에너지가 분명히 있다. 어둠을 말하는 순간, 더 큰 어둠이 나에게로 끌려오고, 힘듦을 토로하는 순간, 보이지 않던 어려움까지 나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내뱉은 부정적인 말은 곧 그들의 세상을 더욱 좁고 어둡게 만드는 울타리가 되고 있었다.
'지금의 내 모습은, 과거 내가 했던 말투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어느 날 마주한 이 문장은 나의 교직 생활과 삶 전체를 관통하는 깊은 울림을 주었다. 아이들에게 점자를 가르치고, 보행을 훈련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긍정의 언어'를 가르치는 일임을 깨달았다. 보이지 않는 세상 속에서, 말이란 아이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지팡이이자 등대이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가능성을 먼저 발견하고, 막막한 과제 앞에서도 "한번 해볼게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는 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다.
A 학생이 있었다. 유독 손으로 새로운 것을 만지기를 두려워하던 아이였다. 처음 접하는 교구 앞에서 늘 "싫어요, 못 할 것 같아요."라며 뒤로 물러서기만 했다. 나는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못 할 것 같은 게 아니라, 아직 익숙하지 않은 거란다. '어떤 느낌일까?' 하고 우리 함께 속삭여볼까?"라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어떤 느낌일까?"라고 내 말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 작은 말의 변화는 놀라웠다. 거부의 언어가 호기심의 언어로 바뀌자, 굳게 닫혔던 아이의 손가락이 조금씩 펴지고, 세상을 향한 탐색을 시작한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는 옛 어른들의 지혜는 결코 헛된 말이 아니다. 우리가 하는 말은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생각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그 행동들이 모여 결국 우리의 삶 전체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 이것은 비단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오늘 하루,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건넸는가. 나의 목소리는 아이들이 마음속으로 세상을 그릴 때 희망의 창문이 되었는가, 아니면 절망의 차가운 벽이 되었는가. 아이들의 고요한 내면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쉴 나의 말을 떠올린다. 나의 말이 아이들에게 따스한 햇살이 되고, 든든한 용기가 되고, 깊은 사랑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말로 자신의 세상을 빚어가는 창조자이다. 오늘 우리가 건네는 따뜻하고 호감 가는 말투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용기를 주는 빛이 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말에 담긴 거대한 힘을 깨닫고,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따뜻한 목소리로 이 세상을 가득 채워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