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꽃밭에서 겸손의 말을 피우다.

by 이만희

입학 상담을 위해 교무실 문을 두드리는 중도실명 성인학생들의 눈빛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때로는 감춰지지 않는 불안이, 때로는 애써 포장한 자존심이 느껴진다.

"선생님 제가 예전에는 꽤 잘 나갔어요. 협회 회장도 했었고, 회사에서는 중간 관리자였죠."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을 이야기하는 목소리에는 어딘가 모를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자식 자랑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마치 잃어버린 빛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지금은 시각장애라는 어려움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하는 현실이, 과거의 영광에 비해 초라하게 느껴질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전해져 온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혹시라도 낮아진 자존감에 상처를 낼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상담을 이어간다. 과거의 빛나는 순간들을 꺼내어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현재의 어려움을 감추고 싶은, 나약해진 자존감을 숨기고 싶은 방어기제인지도 모른다. 맥락에 맞지 않는 자식 자랑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간절한 외침처럼 들린다.

나는 그런 모습에서 열등감을 감추려는 안쓰러움을 느낀다. 정말 잘난 사람은 잘난 척하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과 내면을 키워 행동으로 증명해 나갈 뿐이다. 겸손은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알고 존중하는 데서 비롯된다.

내게 필요한 정보는 학생들의 과거 화려한 이력이 아니다. 현재 어느 정도의 시력을 가지고 있는지, 점자를 얼마나 읽을 수 있는지, 기초 재활 교육은 어느 정도 받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학교생활을 잘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정보가 더욱 중요하다.

'저절로 드러나야 능력이 빛이 난다.'

나는 이 말을 가슴에 새기고 아이들을 가르친다. 입학 상담에서 겸손한 태도를 보였던 학생들은 학교에 입학해서도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는다. 다른 학생들을 존중하고 자신을 쉽게 내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겸손한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지지를 받는다.

겸손은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준다. 자만과 허영심은 질투와 시기, 미움, 욕심으로 가득 차 있어 입에서 독이 나오게 한다. 마음속에 감사와 겸손과 사랑을 채워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우리는 모두 다르고, 각자의 속도로 세상을 살아간다. 남과 비교하며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고, 단점을 보완하며,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살아가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어느 날, 한 학생이 내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저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다른 친구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아요."

나는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아. 너는 너만의 속도로 가면 돼.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거야."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점자책을 읽었다. 아이는 처음에는 더듬거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익숙해졌다. 마침내 아이는 점자책 한 권을 완독 했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미소에서 희망을 보았다.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아이의 모습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나는 아이에게서 겸손과 용기를 배웠다.

나는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삶의 지혜를 나누고 싶다. 겸손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따뜻한 말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싶다. 아이들이 마음속에 사랑과 감사를 가득 채워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매일 아침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설렌다.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함께 웃고, 함께 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나는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는다. 아이들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견하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다.

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따뜻한 귀가 되어주고,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다. 아이들이 세상에 나아가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한다.

나는 오늘도 아이들의 마음 밭에 겸손의 씨앗을 심는다.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나는 끊임없이 사랑과 격려를 보낸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갈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겸손과 사랑이 가득한 세상,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세상,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 그런 세상을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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