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말은 씨앗이고, 우리는 정원사입니다

by 이만희

창문을 열면 계절의 냄새가 교실로 들어옵니다. 봄이면 흙내음이, 여름이면 풀 향기가, 가을이면 낙엽의 노래가, 겨울이면 차가운 침묵이 이곳을 채웁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들은 이 냄새들로 세상의 얼굴을 상상하고, 제 목소리로 그들의 계절에 온기를 더합니다.

이십여 년을 시각장애학교에서 살아오며, 저는 '말'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날마다 배웠습니다. 말은 공기 중에 흩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가슴속에 씨앗으로 떨어져 뿌리를 내리고, 때로는 꽃이 되고 때로는 가시가 됩니다. 저는 그 씨앗을 뿌리는 정원사였습니다.

교실 문 앞에 설 때마다, 저는 제 입술의 온도를 점검합니다. 오늘 제가 건넬 말들이 따뜻한지, 차가운 비수가 되지는 않을지 조심스럽게 가늠합니다.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을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교실에 들어서기 전, 복도를 걸으며 제 마음을 정돈하던 아침들도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말의 온도는 사치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에게, 목소리는 세상을 이해하는 유일한 창입니다. 제 목소리가 떨리면 아이들은 불안해하고, 제 말투가 차가우면 아이들은 움츠러듭니다. 그래서 저는 출근길 차 안에서 클래식을 들으며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고, 따뜻한 커피로 목소리의 긴장을 풀어냅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제 성공담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 실수와 후회, 깨달음의 기록입니다. 서툴게 내뱉었던 날카로운 말들,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어 아이들의 마음에 남았을 그 순간들을 저는 평생 기억할 것입니다. 동시에,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꾼 기적 같은 순간들도 잊을 수 없습니다.

L학생은 지금 안마사로 당당히 일하며 가족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K씨는 공무원이 되어 사회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방문을 굳게 닫았던 그 아이는 이제 국가대표를 꿈꾸며 운동장을 누빕니다. 그 아이들의 삶 한편에 제 말 한마디가 작은 디딤돌이 되었다면, 그것만으로 저는 교사로서 충분히 보람을 느낍니다.

말투는 기교가 아니라 태도입니다. 상대를 얼마나 존중하는지, 그 존재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가 자연스럽게 배어나는 것입니다. 저는 완벽한 교사가 아닙니다. 여전히 실수하고, 후회하고, 다시 배웁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신합니다. 진심을 담아 건네는 따뜻한 말은, 반드시 상대의 마음에 닿는다는 것을.

이 책을 덮는 순간,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보시겠습니까? "고마워요", "잘하고 있어요",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에요"라는 짧은 문장이면 충분합니다. 그 작은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어두운 하루에 등불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말이라는 씨앗을 뿌리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리가 뿌린 씨앗은 반드시 자라서 돌아옵니다. 독초를 심으면 독초가, 꽃씨를 심으면 꽃이 피어납니다. 어떤 정원을 가꾸며 살 것인지는 온전히 우리의 선택입니다.

저는 내일도 교실 문 앞에 설 것입니다. 아이들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며,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할 것입니다. 실수하는 아이에게 "괜찮아, 다시 해보자"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들이 아이들의 마음에 따뜻하게 닿기를,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하루를 시작할 것입니다.

말은 씨앗이고, 우리는 정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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