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뼛가루를 모으는 일

에세이

by 이만희

삶은 때로 우리를 말없이 깊은 분화구 앞에 세운다.

그곳은 마음의 미세한 금까지 또렷하게 들리는, 아주 고요한 장소다.

나는 그 심연에서 여러 번 멈춰 섰고, 때로는 주저앉기도 했다.

어둠은 길었고, 그 길이가 내 삶 전체를 덮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바닥 한가운데에서 나는 작은 꽃 한 송이를 발견했다.

빛도 닿지 않는 땅에서 조용히 피어난 꽃.

손끝으로 만지면 금세 사라질 것처럼 가벼운 꽃.

나는 그 꽃을 ‘부꽃’이라 이름 붙였다.

부꽃은 멀리서는 보이지 않지만

삶에 귀를 가까이 대면

어디선가 아주 미세한 향이 스며든다.

상처가 오래 머물렀던 자리에서만 피어나는 향.

아픔이 지나간 흔적이 향기가 되어 돌아오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슬픔이 가벼워진다고 말한다.

뼛가루처럼 손끝에서 흘러내리는 사소한 감정이 된다고.

그러나 나는 그 뼛가루를 흩어버리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채집해 작은 병에 담아 두었다가

가끔 꺼내어 바라본다.

그 뼛가루는 내가 지나온 계절의 조각이며,

한때 나를 흔들었던 밤의 증거이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아주 작은 힘이다.

상처가 깊어질수록 마음이 넓어지는 이유는

고통이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큰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찾아오기 때문일지 모른다.

우리는 견딜수록 확장되고, 버틸수록 단단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슬픔의 뼛가루를 모은다.

치유를 위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다시 흔들릴 나를 붙잡아 줄

희미한 빛이 되어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슬픔을 모으는 일은

결국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아주 조용한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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