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끝없이 퇴고되는 초고다

응답하라. 2025

by 이만희

아침은 늘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눈을 뜨면 일기를 펼치고, 책을 읽는다.

하루를 새롭게 만들겠다는 거창한 선언 대신, 이미 지나온 나의 문장을 다시 읽는 일로 하루를 연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를 부르기 때문이다. 삶은 언제나 앞으로만 흐르지만, 이해는 늘 뒤늦게 도착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 되돌아본다. 되돌아봄은 후회가 아니라 방향을 점검하는 일이다.

나는 교사이고, 동시에 작가다. 이 두 이름은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지탱한다. 학교에 가면 운동장을 돈다. 숨이 차오르는 동안 생각은 단순해지고, 단순해진 생각은 문장으로 바뀔 준비를 한다. 조회를 준비하고, 공문을 읽고, 학적부를 작성한다. 행정의 언어는 늘 정확해야 한다. 그 언어들 사이에서 나는 다른 언어를 숨겨둔다. 사적인 문장, 아직 세상에 내놓지 않은 이야기들.

수업을 마치고 커피를 내린다. 종이컵에서 김이 오른다. 이 짧은 순간이 나를 붙잡는다. 교사로서의 시간은 분절되어 있고, 작가로서의 시간은 이어져 있다. 나는 그 틈을 메우기 위해 책을 읽는다. 읽는 동안만큼은 직업도 역할도 사라진다. 한 인간으로서 문장 앞에 앉아 있을 뿐이다.

나는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딱 알맞은 때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여러 번 배웠다. 그래서 지금 쓴다. 소설을 쓰고, 시를 쓰고, 동시를 쓰고, 전자책을 고민한다. 완성되지 않은 원고들이 내 책상 위에 쌓여 있지만, 그것들은 실패가 아니라 증거다. 아직 멈추지 않았다는 증거. 여전히 쓰고 있다는 증거.

퇴근 후에는 산책을 하고 헬스를 한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생각은 자꾸 과거에 머문다. 땀이 나고 숨이 가빠질 때, 생각은 현재로 돌아온다. 현재에 머무를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나를 다스릴 수 있다. 저녁에는 햇님공원의 불빛 아래에서 하루를 정리한다. 그리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린다. 안부를 묻는 이 짧은 통화가 나를 다시 사람으로 만든다.

주말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뉴스를 보고 책을 읽고, 밥을 사 먹고, 카페에 앉아 다시 책을 읽는다.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나만의 루틴을 만든다. 나는 말투를 조심한다. 감정을 함부로 흘리지 않으려 애쓴다. 절대로 많이 취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삶을 주체적으로 산다는 것은 자유롭게 사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를 관리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내가 쓰는 시간, 내가 선택한 문장, 내가 지키는 태도. 그것들이 나를 만든다.

내가 원하는 삶은 성공이 아니라 지속이다.

매일 조금씩 읽고, 쓰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삶. 남을 탓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삶. 특별하지 않지만 무너지지 않는 삶.

나는 오늘도 일기를 쓴다. 그리고 다시 책을 펼친다.

이 반복이 언젠가 하나의 이야기가 될 것을 믿으며, 나는 오늘을 산다. 삶은 완성된 문장이 아니라, 끝없이 퇴고되는 초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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