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나를 다시 세울 때

by 이만희

살아오며 나는 참 많이도 넘어졌다. 어느 날은 뜻하지 않은 말 한마디에 주저앉았고, 어느 날은 내가 스스로 놓은 함정에 걸려 무너졌다. 툭, 하고 부서지는 마음의 소리가 들릴 때면 늘 이런 걱정이 밀려왔다. '이번에는 정말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이상하게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잔해 속에서 작고 연약한 풀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 풀들은 내가 심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폐허가 된 자리에 조용히 돋아난 것들이었다. 나는 그 풀들을 '나'라고 불렀다. 실수는 그렇게,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다시 세우는 과정이 되어주었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탓 아니에요?"

나는 그 말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조용히 다치게 하는지 안다. 최선은 힘이 넘칠 때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때로는 오래된 결핍에서, 지친 어깨에서, 미처 말하지 못한 눈물에서 겨우 짜내는 것이 최선이다. 사람마다 내면의 무게가 다르고, 서로 다른 어둠을 지나온다. 그러니 누구의 최선도 가볍지 않다.

내가 가장 약했던 시절이 있다.

콤플렉스를 쥐고 살던 청춘의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그 결핍을 웃음으로 흘려보냈다. 그 순간 알았다. 나의 그림자를 미워하는 일보다 받아들이는 일이 훨씬 더 나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자신에게 화살을 겨눴던 날들보다, 나를 가만히 바라본 날들이 나를 더 살게 했다는 것을.

실패는 쓸모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쓸모없다고 여겼던 것들 덕분에 방향을 바꾼 적이 많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오히려 내가 가야 할 길로 이어졌다.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은 책 속 문장이 아니라 내 삶에서 조용히 진실로 증명되었다. 쓰임 없다고 느낀 것들이 나를 다시 걷게 했고,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돌이켜보면, 한 사람의 변화는 늘 '나'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일어나면 내 곁의 누군가도 일어났고, 내가 주저앉으면 세상의 작은 바람 하나조차 나를 밀어주지 않았다. 피해의식을 등에 업은 날엔 모든 것이 나를 밀어내는 듯했고, 자존심만 고집하던 날엔 작은 친절도 아프게 다가왔다.

하지만 자존감은 달랐다.

그것은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발밑에서, 조용한 돌처럼 나를 붙잡아 주는 힘이었다.

그 사실을 안 뒤로 나는 누군가의 시선보다 내 안의 균형을 더 살피기 시작했다. 남들이 보는 자리보다, 내가 다시 걷기 위해 딛는 작은 바닥의 감촉을 믿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고.

삶은 걸음과 넘어짐이 번갈아 오는 리듬이고, 우리는 그 리듬 속에서 서서히 단단해진다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실수를 데리고 걷는다. 그것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나의 가장 살아 있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 상처들이 새로운 문장이 되어 나를 다시 이끌어줄 것을 믿는다. 실수는 단 한 번도 나를 완전히 무너뜨린 적이 없었다. 오히려 마지막 순간에, 나를 더 먼 곳까지 밀어 올려준 건 언제나 실패의 손이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조용히 고백한다.

내 모든 실수들은 결함이 아니라,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순한 반짝임이었다고.

소리 없이 빛나는, 나를 다시 걷게 해 준 작은 빛들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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