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에 대하여

by 이만희

진정으로 무언가를 깨닫는 순간, 사람은 말수가 줄어든다. 확신이 사라져서가 아니다.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무엇을 안다고 말하기보다, 모른다는 쪽으로 기운다. 그것이 겸손이라는 단어와 닿아 있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기술이 아니다. 스스로를 작게 만드는 태도도 아니다. 오히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자세에 가깝다. 내가 알고 있는 방식이, 익숙한 해석이, 편한 판단이 늘 옳지는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 그것이 겸손의 시작이다.

우리는 종종 익숙한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본다. 이미 써 본 방법, 이미 성공했던 선택, 이미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길.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옳다고 믿는다. 그러나 삶은 늘 같은 얼굴로 다가오지 않는다. 어제의 해답이 오늘의 정답이 되지 않는 순간도 많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시선을 바꾸는 용기다.

나는 요즘 어제의 나를 자주 내려놓으려 애쓴다. 어제의 판단, 어제의 확신, 어제의 태도는 어제에 두고 온다. 오늘의 나는 다시 처음 보는 사람처럼 세상 앞에 선다. 어제의 나는 어제로서 충분히 살았다. 오늘의 나는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생각하고, 다시 묻는다.

잠시 멈추어 묻는다. 지금 떠오른 이 생각이 정말 최선인가. 이 판단이 나를 편하게 하기 위한 선택은 아닌가. 새로운 생각이 늘 옳은 것은 아니지만, 생각하지 않은 채 반복하는 삶은 나를 점점 굳게 만든다. 사유는 남을 설득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중년이 된다는 것은 책임이 늘어나는 일이다. 가정의 무게, 직업의 무게, 관계의 무게가 동시에 어깨 위에 올라온다. 그래서 더 빨리 결론을 내리고 싶어지고, 더 확실한 답을 원하게 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에 가장 필요한 태도는 서두르지 않는 마음이다.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두는 일이다.

아무리 깊은 철학도 실행되지 않으면 생각으로만 남는다. 삶은 사유에서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옮겨질 때 비로소 윤곽을 갖는다.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 방향을 정하고 한 발을 내딛는 의지 없이는 어떤 깨달음도 삶을 바꾸지 못한다. 겸손은 멈추는 태도이면서 동시에 나아가는 태도다.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 방향을 정하고,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존재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는다. 생각과 실천이 함께 갈 때, 삶은 깊어지고 불필요한 실수는 줄어든다.

겸손은 나를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을 크게 바라보게 한다. 오늘도 나는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배우는 사람으로 하루를 산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삶은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사랑할 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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