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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니랑 May 13. 2024

충실한 삶

  4월 26일 유난히도 더웠던 주말 아침, 다른 날과 달리 일찍 일어나 순천을 가기 위해 외출할 준비를 했다. 동료 선생님과 제자이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 3명 그리고 기사님과 나를 포함해서 모두 6명이 순천으로 출발했다. 순천을 가게 된 까닭은 4년 전에 학교를 졸업한 한 학생이 안마원을 개업했기 때문이었다. 출발한 지 2시간 30분이 지나 순천에 도착했고 안마원 근처까지 갔지만 찾지 못해 원장님의 아들이 큰 도로까지 나와 주었다. 같이 차를 타고 안마원에 도착하니 상가 건물 1층에 원장님과 사모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장님의 동기였던 졸업생 2명도 진주와 고흥에서 미리 도착해서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원장님은 순천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고등학교 미술교사였다. 갑작스러운 실명으로 교직을 그만두고 맹학교에 입학했었다. 맹학교에 입학해서 시각장애인의 직업교육인 안마를 열심히 배우셨다. 졸업 후, 몇 년간 고생을 하다가 나라에서 지원받던 수급자도 포기하고 안마원을 개업했다. 학교를 다닐 때는 몸이 약해서 결석이나 조퇴를 하였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다. 지금은 한 가정의 가장이며 안마원의 원장이 되었다. 부인은 남편 옆에서 일을 도와주고 아들은 사무를 보고 있었다. 온 가족이 안마원의 운영에 매달리고 있었다. 안마원은 깨끗했고 침대와 가구들은 잘 정리되어 있었다. 가게를 둘러보고 근처 식당으로 이동했다. 다들 시각장애가 있어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 식당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순천의 별미인 꼬막정식을 주문했다. 자기 앞에 있는 밑반찬을 서로 알려주며 맛있게 먹었다. 나는 원장님 테이블로 가서 원장님의 빈 소주잔을 받아 소주를 채워 드렸다. 아들에게도 맥주를 한잔 따라 주었다. 원장님도 내 잔에 소주를 채워 주셨고 건배하며 진심으로 축하드린다고 말했다.

  식당에서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스타벅스로 이동했다. 스타벅스 1층에 여러 테이블이 모여 있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원장님 가족은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 앉으셨다. 나는 원장님께 궁금한 게 있어 물어보았다. 

  “처음 개업하고 어려운 점은 없으셨어요?”

 원장님은 처음 개업하고 손님이 없어 홍보를 위해 한 달간 1시간 안마비로 만원씩 받았다고 하였다. 아들은 안마원 전단지를 직접 만들어 인근 아파트에 붙이고 다녔다고 하였다. 하루 만에 예약이 다 찼고 한 달 동안 300명을 안마했다고 하였다. 혼자서 300명을 안마했다는 말에 놀라서 다시 물어보았다.

  “학교 다니실 때 몸이 약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 데 어떻게 300명을 안마하셨어요?”

  원장님은 처음에는 걱정을 했는데 손님이 없어 힘든 것보다 오히려 즐겁게 안마를 했다고 말했다. 이제는 3만 원씩 받고 있으며 손님이 제법 있어 7월부터는 5만 원씩 받을 계획이라고 하였다. 

 “안마를 시술하면서 성공한 경험 좀 알려주세요.”

 원장님은 안마원에 단순히 몸이 피곤해서 오시는 분은 별로 없고 몸이 아픈 분들이 많이 방문한다고 하였다. 허리나 어깨가 아프신 분들은 엉덩이에 있는 중둔근을 잘 풀어주면 통증이 경감된다고 하였다. 엉덩이가 많이 굳어 있으면 허리도 아파서 엉덩이를 잘 풀어주면 허리 통증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하였다.     

  원장님은 자신의 시술 경험을 말할 때 목소리가 밝아지고 즐거워 보였다. 원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대전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원장님은 나라에서 지원받는 수급자도 반납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다. 자신이 배운 기술로 아픈 사람을 치료하며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고 있었다. 가족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안마원을 개업했고, 원장님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안마를 하면서 스스로 삶을 증명하고 몸이 아픈 사람들에게 안마를 통해 기쁨을 주고 있었다.

 세명의 가족은 안마원에서 평범한 일상을 반복적으로 살아갈 것이다. 가족의 꿈을 위해 오늘도 노력할 것이다. 원장님은 가족에 충실하고 자신의 삶에 충실했다.

  나는 내일도 학교에 출근한다. 원장님과 같은 처지였던 중도실명한 학생들에게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한다. 나도 원장님처럼 가족에 충실하고 내 삶에 충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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