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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경 Jun 15. 2021

새벽하늘

-  우리에게 하루는 기적이다

새벽 남해 고속도로      

산과 나무들은 아직 잠들어 있습니다.      

달리는 차바퀴 소리가 정적을 가릅니다.      

살갗에 닿는 공기가 차갑습니다.      

빠르게 스쳐 가는 이정표와 산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어젯밤 옆으로 누워 잠드신      

엄마 뒷모습이 순간 무덤 같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오늘 아침 눈앞에 드러나는 거대한 산이      

잠드신 엄마 뒷모습 같아 울컥합니다.      

‘작은 체구 엄마는 나에게 거대한 산이구나..’                


구름 이불 사이로 분홍빛 번져 나옵니다.       

점점 붉어지는 하늘이 산을 감싸 안아 줍니다.      

빛은 내 가슴까지 닿아 벅차오릅니다.      

벗의 건강을 기원하며      

비 갠 인왕산을 그린 정선의 기도가 됩니다.                


직장일 집안일 개인일 겹겹이 퍼붓는 날들에       

찬란한 가을날 몸은 파김치 되었습니다.      

지친 세포들이 몸속에서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진주와 창원을 오간 적이 참 많지만      

새벽을 달리는 것은 처음입니다.      

오가는 차 없으니 길과 하늘 모두 제 것입니다.      

가끔 만나는 표지판과 뻗은 삼나무는 이국적입니다.     

FM을 틀었습니다.      

클라리넷, 바이올린.. 현과 관의 선율이 마음을 적십니다.                


산 너머 마알간 해 뿅! 떠올라 천지가 환해집니다.     

운보 김기창의 <태양을 먹은 새>가 생각납니다.      

태양을 삼키고 비상하는 그림을 무척 좋아했었습니다.      

오늘 아침엔 저도 다시 태양 먹은 새되어봅니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 새벽하늘은 강력한 치료제였습니다.       

두 해 전 업무에 쏟은 시간과 열정은 몸을 고장 내고      

내 영혼은 사랑을 잃고 나 자신과 자꾸 멀어져 갈 즈음      

친구들과 함께 한 스페인 여행은 탈출구였습니다.      


패키지여행의 아쉬움을 달래야 했지만       

잊을 수 없는 ‘여명’을 만났습니다.      

가격이 싼 시골 숙소에서 시내로 이동하기 위해      

새벽길을 나섰습니다.      


달리는 차 창 밖 어둠에 끌려 멍하니 보고 있었습니다.     

지평선 너머 하늘이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붉은 바다      

두 볼 위로 슬픔 반 감격 반 붉은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 하늘만으로 300만 원이 아깝지 않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새벽빛은 쓰러져 가는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삶은 반복되고 마음은 습관입니다.     

남편에게 바라는 마음이 자꾸만 서걱거림으로 되돌아오고    

그림, 종교, 사람... 그 무엇으로도 달래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습니다.      


나의 갈망은 아프리카로 향했습니다.           

내 마음을 닮은 거칠고 마른땅   

털털거리는 트럭에 몸을 맡겨 달렸습니다.      

원망과 미움은 남김없이 털려 나가고        

나를 사랑하지 못했던 내가 보였습니다. 


동물의 왕과 극적 만남을 위해     

스카프 칭칭 감고 깜깜한 새벽길을 나섰습니다.      

기대는 실망이 되었지만 돌아오는 길      

어둠을 걷어 내는 붉은 태양에 그만 심장이 멈췄습니다.                


사자가 아닌 찬란한 태양과 만남은         

마음 깊은 곳 나의 빛을 낚아 올렸습니다.      

빛은 이미 내 안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나는 매일 이 빛 안에 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로 달려가게 해 준 남편이 고마웠습니다.           

     

헬렌 켈러는     

‘새벽’을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매일 기적을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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