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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스트 레지나 Aug 09. 2024

김훈, 김훈 산문 허송세월

그리고 나의 허송세월


김훈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그린 칼의 노래, 가야의 우륵 을 통해 신라의 야욕과 가야금의 이야기를 그린 현의 노래, 최근에 인간 안중근을 그대로 담은 역사 소설 하얼빈,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개가 바라본 인간 세상을 그린 개, 그리고 영화로 본 남한산성, 이것은 내가 읽은 그의 작품이고, 이 외에도 그의 작품은 수도 없이 많다.  그의 화려한 작품활동에 와인 한 잔을 건넨다. 이 시점에서 그에게 와인 한 잔을 건네는 이유는 그 좋아하는 술을 건강 문제 때문에 못마시고 매번 병원갈 때마다" 1~2잔은 괜찮지 않냐", "아니다 절대 마시면 안된다" 하면서 의사와 실랑이를 벌이는 그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라고 해두자. 



삶에 가치있는 일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모습, 이것이  허송세월의 사전적 의미다. 허송세월은 취업이나 결혼을 앞둔 청년들이 집에서 부모님께 흔히 듣는 잔소리에 포함되는 단골 메뉴다. "취직은 도대체 언제 하려고 그렇게 방구석에만 쳐박혀서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는거야!." 혹은 "결혼은 언제 하려고 그렇게 딴 짓만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내는거야!" 등등.


일산 호수공원 근처에 살고 있는 작가는 특별한 볼일이 없을 때면  오후에 호수공원에 나가 두어 시간 쯤 햇볕을 쪼이면서 늘그막의 세월을 보낸다는 이야기로 허송세월을 이야기한다.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출처: 김훈 산문 <허송세월> 중에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제일 큰 변화중의 하나는 주변에서 누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거나 누구네 자식 결혼식 올린다는 청첩장일 것이다. 예전처럼 우편으로 소식이 전해져 오는게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부고장 혹은 모바일 청첩장의 형식으로 받게 된다. 현금 쓸 일이 많지않은 요즘의 일상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현금을 지출해야하는 일일 게다. 아, 물론 이것도 계좌이체가 가능하니 현금을 안써도 될 일이다. 결혼식이야 좋은 일이니 얼마든지 즐거운 마음으로 가겠다만, 이제 갓 60을 넘은 나로서는 문상가는 일이 여전히 불편하고 어색하다. 80세를 앞두고 있는 작가도 자신의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남의 죽음을 문상다니고 있는 것의 씁쓸함을 표현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또 하나의 큰 변화는 병원에 갈 일이 잦아졌다는 것이다. 한때 어찌어찌해서 병원 근무를 해봤던 내가 병원 근무를 마치면서 했던 다짐은 "병원 갈 일이 없게 만들자. 이게 가장 행복한 삶이야"라고 했던 것이다.  엄마 아버지가 50대부터 약봉지가 쌓여가는 것을 보면서 무슨 약을 그렇게 많이 먹냐고 핀잔을 주곤 했었다. 이제는 주방 정수기 옆에 남편 것과 나의  영양제 치료약 등이 쌓여가는 것을 볼 때 마다 두 분께 죄스러운 마음을 느낀다. 아마 하늘 나라에서 보고 계실거다. "거 봐라. 너도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알겠지?"


작가는 부여박물관에서 백제 장인들의 흙 물건을 들여다 보면서 어머니가 해주던 수제비와 비빔밥을 떠올린다. 먹을 것이 모자라서 어렵던 시절에 어머니는 수제비를 종종 해주셨단다.  밀가루로 시간과 공을 들여 차지게  손 반죽을 하여야만 쫀득한 식감의 맛있는 수제비를 먹을 수 있었던 추억을 떠올린다. 흰 밥알의 존재가 한 개씩 살아있어야하고, 여러가지 나물들의 개별성이 뒤범벅이 되면서 파과되지 않도록 젓가락으로 비벼야한는 어머니의  비빔밥 원칙을 되새긴다. 

'청춘예찬'에서는 <종의 기원>을 저술하며 생명의 기원 문을 열었던  찰스 다윈을 이야기한다. 또한  우리에게 실학자로 알려진 정약용과 그의 동생 정약전 그리고 이승훈 과 이벽 이 네명의 청년들이 새로운 세계관에 눈을 뜨게 되고 조선 천주교 신앙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배경에는 책 읽기가 중요했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이 사건이 둘다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초의 일이다. 동양과 서양, 사는 곳은 달랐지만 20~30 대 청년들의 청춘은 같은 맥락이었다.     

김훈 작가는 매일 오후 일산 호수 공원에 나와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그가 그 시간을 통해서 받는 햇빛과 공기는 80세를 앞두고 있으면서, 그리고  매번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술을 먹지 말라는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끊임없이 세상에 이야기를 던지고 싶은 작가란 직업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그는 여전히 허송세월하느라 바쁘다. 허송세월이 허송세월이 아닌게다. 


지난 30 여 년 동안 N잡러로 살아왔다. 그렇게 바쁘게 그야말로 혀가 빠지게 쎄빠지게 살다보니, 요즘의 여유로움이 값지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결이 통하는 사람들과 소통을 하며 지낸다.  여전히 문득문득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나? 할 일이 있는데 내가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되뇌인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허송세월 할 때

내 몸과 마음은 여전히 설렘과 희망으로 가득찬다. 나도 허송세월하느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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