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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이 Aug 26. 2024

꼬리를 잘라내야 살 수 있을 때

항상 분노하고 미안해야 한다. 그게 맞다.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 중에 <127시간>이라는 작품이 있다. 2010년에 개봉했으니, 벌써 10년도 훌쩍 넘은 명작이다.


  줄거리 자체는 무척 간결하다.

  아론 랠스턴이라는 산악인이 홀로 유타주의 계곡 사이를 오가다 암벽 사이에 오른팔이 끼어버려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 상태로 127시간, 즉 5일 이상을 버텼는데 물과 식량도 떨어지고 구조 신호도 보낼 수 없는 절망적인 처지가 되어 버렸다.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팔 하나를 버려 목숨을 구할지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고 망설이다 결국 팔을 잘라내 살아 남았다는 이야기다.

  글로 된 줄거리만 들어도 끔찍한데, 무딘 나이프로 마취도 없이 스스로 팔을 절단한다는 게(심지어 나이프로 뼈를 절단할 수 없었기 때문에 팔이 끼인 암벽을 지렛대 삼아 뼈부터 부려 뜨렸다고 한다...) 너무 처참해서 감히 머릿 속에 그려지지도 않는다. 영화 내에서 그 과정까지는 차마 영상으로 자세히 묘사하지 않았음에도, 웬만한 슬래셔 영화보다 훨씬 더 끔찍하게 느껴진다.


  누군가 大를 위해 小를 희생할 때, 관용적으로 '뼈를 깎고 생살을 찢는 고통으로'라 표현하곤 하는데 감히 이 주인공 앞에서도 그리 말할 수 있을까?

  목숨은 팔 한 쪽에 견줄 수 없을만큼 소중하고 무거운 것이 맞긴 하다. 그치만 같은 상황에서 그처럼 결단하고 행동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가 아니라, 절대로 못할 것 같다. 그저 인내심이 탁월하다는 정도 표현으로도 부족하다.

  비록 나를 던져 남을 구하는 것과 같이 숭고하고 대승적인 이야기라 할 순 없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것을 희생해 더 큰 것을 구한다는 이야기의 모델이 될 만 하다.



  포인트가 다소 다르지만, 이와 비슷한 실험으로 유명한 것이 바로 '트롤리의 딜레마(Trolley dilemma)'다.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의 브레이크가 망가졌는데, 앞의 양 갈래 선로에 한 쪽은 1명, 한 쪽에는 5명이 있다. 당신이 스위치를 조작할 수 있다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하는 문제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국가와 성별, 연령을 불문하고 과반 이상의 사람들이 당연히(?) 5명을 살리는 쪽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 실험은 사실 윤리학에서 도덕적 허용에 대한 태도를 알아보기 위해서 진행했다고 하지만, 참여자들의 선택을 좌우한 것은 아마도 '경중(輕重)'에 따른 가치 판단이 아니었을까? 좀 더 원색적으로 얘기하면 경제적 효율성에 대한 인식일지도 모르겠다.

  앞서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팔을 잘라낸 아론이나 선로를 1명이 있는 쪽으로 돌리겠다는 다수의 의견은 '더 큰 것/더 많은 쪽이 더 가치있다'는 판단에 따른, 경제적인 의사결정이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판단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부인하긴 어렵다.



  흔히 <삼국지>의 조조(曹操, 한나라의 승상이자 위나라의 왕)를 간교하고 잔악하다고 주장하는 근거 중의 하나가 바로 보급관 '왕후'에 대한 이야기다.

  (왕후의 이름은 사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가상의 이름이고,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정사 <삼국지>에 나오긴 하지만 실명이 전해지진 않는다)


  조조가 황제를 참칭한 원술을 정벌할 때, 적의 본진인 수춘성이 워낙 높고 견고해서 많은 시일을 허비하고 있었다. 문제는 조조가 거느린 병력이 너무 많아 식량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인근에서 다른 제후가 지원해줬지만, 그마저 며칠 버틸 수준 밖에 되지 않았다.

  이에 보급 담당이었던 왕후가 조조에게 상황의 심각함을 보고하고 어찌할 바를 물었다. 조조가 잠시 고민하다가 왕후에게 물었다.


  "지금 군사들에게 하루에 배급하는 식량이 어느 정도인가?"

  "군사 한 명 당 큰 됫박으로 주고 있습니다."

  "그건 너무 많군. 앞으로 작은 됫박으로 바꿔 주면 어떠한가?"

  "작은 됫박으로 배급하면 며칠 더 버틸 수는 있겠지만, 군사들이 굶주려 불만이 폭증할 것입니다. 그 원망을 어찌 감당하시렵니까?"

  왕후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지만, 조조는 오히려 웃으며 대답했다.


  "내게 다 생각이 있으니 걱정말고 오늘부터 작은 뒷박으로 바꿔 배급하도록 하게."

  왕후는 다소 걱정스러웠지만, 최고 사령관의 지시인데다 조조가 항상 신묘한 계책으로 위기를 넘겨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뭔가 묘안이 있으리라 믿고 시킨대로 행했다. 그러자 예상대로 군사들이 반발하며 왕후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난처해진 왕후는 별 수 없이 승상이 시킨대로 할 뿐이라며 군사들을 돌려 보냈고, 곧 군사들 사이에서 '승상이 우리를 속였다. 큰 됫박을 쓰던 것을 작은 뒷박으로 바꿔 우리를 굶게 만든다'는 말이 퍼지기 시작했다.


  군중에 가만히 사람을 풀어 군사들의 불만이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확인한 조조는 곧 왕후를 불렀다. 그리고는 나즈막히 말했다.

  "군사들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고 하더군. 이제 그 불만을 가라앉히기 위해 자네에게 물건 하나를 빌려야겠네. 그것을 내게 꼭 주길 바라네."

  "제가 무엇을 가지고 있기에 승상께서 필요하다 하십니까?"

  왕후가 불안한 듯 묻자, 조조가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바로 자네 목일세. 자네를 죽여 그 목을 군사들에게 보이면 불만이 곧 가라앉을 것이야."

  "승상, 저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 승상께서 시키시는대로 했을 뿐인데 이 몸을 죽이시겠다니요?"

  "자네가 죄없음은 내가 잘 알고 있지만, 나로서도 다른 방도가 없네. 자네 남은 가족은 내가 평생 돌봐주겠네."

  왕후가 계속 울며 살려주길 간청했으나, 조조는 그대로 왕후를 처형시켰다. 그리고 군중에 목을 내걸고는 '보급관이 군량을 사사로이 횡령하여 이를 처벌했다'고 알렸다. 식량 배급량도 다시 이전처럼 큰 뒷박으로 바꿔줬다.  

  그제야 군사들이 조조에 대한 원망을 거두고, 죽은 왕후를 욕하기 시작했다. 물론 군사들의 원기와 사기도 다시 올라갔다.


  그러나 이제 식량은 사흘치 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던 조조가 매섭게 명령했다.

  "앞으로 사흘 안에 수춘성을 함락시키지 못하면 모두가 굶어 죽는다. 죽기 살기로 싸우라."


  말 뿐 아니라 조조는 전에 없이 적극적으로 싸웠다. 최고 사령관이 직접 최전선에서 군사들과 싸우는 것은 물론, 말단 병졸들과 함께 짐을 나르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이따금 적 앞에서 싸우기를 주저하는 자들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가차없이 목을 베어가며 몰아 부쳤다. 평소 부하들에게 자상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수춘성을 함락한 뒤에도 이전에 관대한 처분을 하던 것과 달리 포로들에게 잔인하게 굴고 군사들에게도 약탈을 처용했다. 그리고 본거지로 돌아온 뒤에 왕후에게 약속했던대로 그의 가족들을 두텁게 대우했다.


  조조의 그러한 이례적인 태도에 대해 조조 본인이 구체적인 심경을 남겨놓진 않았다.

  그러나 후세에서 추측하기를, 왕후를 억울하게 죽였어야 할 정도로 상황을 절박하게 만든 적이 미웠고, 또 값비싼 희생을 치른만큼 반드시 이기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했다.

조조의 뒷모습이라 우겨본다


  조조의 권모술수에 마음으로부터 박수를 보낼 순 없지만,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가치 판단에 따른 경제적인 선택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이해가는 부분이 있다.

  아니 오히려 조조가 후세에서 추측하는 바와 같이 왕후에게 죄책감을 느꼈고, 그의 가족들을 두터이 대해준 것이 사실이라면, 흔히 '꼬리 자르기'를 하고 나 몰라라 하는 여느 리더들보다는 낫게 느껴진다.


  많다고 까지 표현하고 싶진 않지만, 조직 내에서 보신을 위해 후배를 버리는 리더들이 더러 있다. 흔히 '총대 좀 메라'거나, '조직(즉, 더 큰 것)을 위해 희생하라'거나 하는 이야기 말이다. 물론, 때로는 정말 어쩔 수 없이 더 작은 쪽의 희생이 필요할 때도 있다. 특히나 앞서 조조의 사례처럼 생사가 오가는 전장(戰場)에서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윈스턴 처칠조차도 2차 대전시기 독일군의 암호해독을 통해 '코번트리'시가 폭격 당할 줄 미리 알고 있었으나, 코번트리 주민들을 대피시키거나 방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한 움직임이 포착되면 독일군에게 의심을 사 결국 소중한 암호해독기의 존재가 발각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 결과 코번트리 주민 1,500명이 죽었다. 그 때의 폭격이 너무나 참혹해서 '코번트리처럼 만들다(Coventration)'이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 일로 처칠을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희생을 치른 대신 암호해독기를 지켜내 전쟁을 최소 3년 단축시키고 1,400만 명의 목숨을 구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암호해독기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의 조상격이다. 또 암호해독기를 만든 사람은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이며, 그가 자살할 때 청산가리를 묻혀 베어 먹은 사과가 바로 현재 애플社의 로고로 형상화되어 있으니 여러모로 사연 많은 물건이다)


훗날 독일 퀼른은 이 이상 복수를 당한다


  회사 조직에서는 전쟁처럼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일은 없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완전히 희생시켜야 할 정도의 위중한 상황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부진한 사업을 철수할 때 부득이 정리 작업을 하는 경우, 리스크가 큰 도전적인 과제를 수행해야 할 때, 혹은 조직 성과 개선을 위해 소위 악역(Bad Cop)을 맡아야 하는 경우 정도랄까.

  즉, 조직 내에서 소수의 희생이 허락되는 상황은 순전히 경제적 효율성이 전제되어 명분이 설 때다. 그 외 개인과 소수의 보신을 위해 정치적으로 오용되어서는 안된다. 횟수도 부득이 할 때 한 두 번이다. 매 위기마다 누군가를 희생 시켜야 한다면, 그것은 근본적인 경영 설계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기왕 희생시켰다면 반드시 성과를 내고 그들에게 보상하라. 그래야 모두가 납득하고, 유사시 두려움없이 조직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람은 기억 속에 살아간다.

  아론은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뒤에 다시 계곡을 찾아 본인 스스로 절단한 오른팔을 불태우고 그 자리에 흩뿌렸다.

  조조는 왕후의 목을 얻은 대가로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고, (썩 바람직하진 않지만)적에게 잔인하게 복수한 뒤에 그의 가족을 평생 돌봐줬다.

  처칠은 폭격으로 무너진 코번트리 대성당 앞에서 이를 악물었다. 그리곤 전쟁을 조기에 종식시켰다. 훗날 대성당을 복구할 때도 천장 만은 하늘이 훤히 보이도록 남겨놔 코번트리의 비극을 세상이 알도록 했다.


  그저, '그 땐 어쩔 수 없었으니 너가 이해하렴'으로 끝내지 말자.

  희생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항상 분노하고 항상 미안해 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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