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삼오오 테이블별로 해서 총 40여개 회사에서 오는 모임이었는데, 서로 정보 교류도 하고 HR 담당자로서의 고충도 털어놓는 등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가곤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날따라 자리에 도착하는 분들마다 비슷한 얘길했다.
"요즘 지원자 진짜 없지 않아요? 다들 사람 어떻게 뽑으세요?"
취업 준비생들에겐 무척 미안하지만, 채용하는 쪽 입장에서는 지원자가 예전만 못해 고민인가 보다.
내가 취업하던 15년 전 쯤만 해도 주요 기업들은 수 백 대 일은 쉽게 넘어갔었으니까, 지금 수 십 대 일 내지는 백 대 일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 것이다.
과거의 경쟁률에 사로잡힌 어르신들 입장에서는, 단순히 지금의 숫자만 듣고는 '어? 왜 이렇게 우리회사 인기가 떨어졌지?'라거나, '채용에서 홍보를 덜 한 것 아냐?'라는 반응이 흔히 나온다. 아무리 '인구가 줄어서, 요즘은 취업 뿐 아니라 사업에도 많이 뛰어들어서'라고 한 들 그 분들께는 당장 와닿지 않는 것 같다.
경력직을 채용하는 것은 더 어렵다.
예전보다 다양한 취업 플랫폼이 생겨 많은 지원자들을 살펴볼 수 있지만, 그것이 곧 우수한 인력도 함께 늘었다는 의미는 되지 않는다. 우수한 사람들은 결국 한정돼 있다. A 플랫폼에서 눈에 띄는 사람은, B와 C 플랫폼에서도 눈에 띄기 마련이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오히려 과거보다 복수로 더 많은 제안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기업은 한정된 인력 Pool을 갖고 경쟁해야 한다.
비슷한 측면에서 대학교도 마찬가지다. 이미 많은 지방 대학들이 입학생 정원 미달을 이유로 통폐합되고 있다.특히, 2027년 3월부터 부산대학교에 흡수되는 부산교육대학교(1963년 부산대에서 독립한 후 64년 만에 재흡수)의 사례를 보면 명문 대학조차도 이 거대한 변화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깨닫게 된다. 거의 대부분의 재정을 재학생들의 학비로 충당하는 학교들, 상대적으로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학교들은 폐교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래저래 기업이나 대학이나, 우수한 인력·잠재력을 갖춘 학생을 모시기에 사투를 벌여야 되는 세상이 도래했다.
"우리 회사로 오세요 제발" "응, 생각해보고"
과거 중국 춘추전국시대에도 지금처럼 인재난에 시달렸던 것 같다.
아무래도 각 국이 국경을 맞대고 촘촘하게 붙어 있는데다, 국토와 인구수가 곧 국가 경쟁력을 담보하던 때여서 매일 같이 정복전쟁이 펼쳐졌다.
당연히 타국보다 강한 무기 체계를 개발할 수 있고, 더 많은 병사를 육성하고 전략적으로 지휘할 수 있으며, 그들을 받쳐줄만큼 넉넉한 경제력을 키워낼 인재를 모두가 원했다.
그러한 인재들도 우리가 과거에 대해 흔히 갖고 있는 이미지와 달리, 조그만 이익에도 나라를 쉽사리 옮겨 다니며 한 자리씩 맡곤 했다. 민족 국가에 대한 개념이 서기 전이어서 딱히 모국에 대한 의식도 적었던 것 같다. 오히려 오늘날 우수한 인력들이 자신의 경쟁력을 높여가며 맞는 처우를 제시해주는 기업을 따라 이직하는 것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달까.
그렇게 국가 간의 인재전쟁이 극에 달하던 때, 연나라 소왕(昭王, 소양왕이라고도 함)이 즉위했다.
소왕 본인은 능력있고 야심만만 했지만, 연나라는 내적으로는 인재 부족에 시달리고 외적으로는 제나라에 침략 당해 국력이 많이 약화돼 있었다.
당면 과제를 명확히 알고 있었던 소왕은 우선 제나라에게 빼앗긴 영토를 회복하는 것을 방향으로 삼고, 그것을 위해 널리 훌륭한 인재를 모으고자 고심했다. 그래서 재상이었던 곽외(郭隗)를 먼저 불러 의견을 구했다.
곽외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왕에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옛날 어느 나라에서 임금이 천금(千金)으로 천리마(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우수한 말)를 사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백방으로 알아봐도 3년 동안이나 천리마를 구하지 못했지요.
그 때 잡일을 보던 하급관리 하나가 나서서 천금을 맡겨 주시면, 왕께서 원하시는 천리마를 구해오겠노라 소리 쳤지요. 이에 왕은 그에게 천금을 넘겨주고 기다렸습니다.
하급관리는 이후 반 년만에 돌아왔는데, 살아있는 말이 아니라 죽은 말의 뼈를 가지고 왔습니다. 왕이 의아해서 어찌된 연유인지 묻자, 그는 왕에게 답했습니다.
'3개월 만에 천리마가 있다는 곳을 찾아갔지만, 그 말이 이미 죽고 뼈만 남았기에 그 뼈를 오백금을 주고 사오는 길입니다'
왕은 당연히 진노했습니다. 살아있는 말도 아니고, 죽은 말의 뼈를 오백금이나 주고 사오다니 이 자를 당장 처형하라 명했지요. 그 때 그 관리가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왕이시여, 이제 곧 천리마를 가진 자들이 스스로 찾아올 것입니다. 죽은 말의 뼈도 오백금이나 쳐주는데, 살아있는 천리마는 그 값어치를 얼마나 쳐줄지 기대에 부풀어 있겠지요. 소문이 퍼지기를 기다려보시옵소서'
왕은 반신반의했지만, 과연 그로부터 1년 뒤에 천리마가 세 필이나 모였다고 합니다.
전하(소왕을 이름), 이제 전하께서 천하의 능력있는 인재를 모으고자 하신다면 먼저 이 곽외부터 두터이 대접하고 전권을 주시옵소서. 저 같은 늙은이에게도 그리 대하셨다는 말이 퍼진다면, 분명히 사방에서 인재들이 다투어 모여들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 감명받은 소왕은 말 그대로 곽외를 위해 궁전을 지어줄만큼 후하게 대접했다. 그리고 과연 극신, 추연과 같은 유능한 행정가들이 찾아왔고, 무엇보다 '악의(삼국지의 제갈량이 모델로 삼았던 명장)'가 위나라로부터 도망쳐 와 연나라의 장수가 되었다.
그리고 악의는 제나라의 70여개 성을 공략하여 제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 부친다. 소왕의 바람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선시어외(先始於隗, 먼저 곽외부터 기용하라는 의미)'의 이야기다.
악의 : 제나라를 치는데 악의는 없었어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은가?
많은 기업들이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왠지, 내부보다는 밖에서 유치하려고 하는 경향이 짙다. 변화를 위해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것은 좋다. 게다가 기업 내에서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는 기존 직원들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수행이 불가능해 외부 인력을 불가피하게 채용해야 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아주 탁월한 인력이 아니고서는 사실, 내부 인력보다 외부 인력을 영입할 때 더 많은 비용과 위험부담이 발생한다.
알다시피 외부 인재를 채용하는데에는 채용 플랫폼 비용이나 헤드헌터, 홍보 비용, 처우협의를 위한 비용(아무래도 이직 시에 연봉을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하다 못해 면접비 등등 같은 능력을 가진 내부 인재에 대한 것보다 더 큰 지출을 하게 된다.
게다가 우수 인력이라 믿고 채용한 사람이 알고보니 그만한 능력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가?
혹은 우수하긴 한데, 우리 회사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해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는가?
그런 위험부담 역시 비용으로 감안해서 봐야 한다.
기존 직원들에 대한 사기 저하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아무리 개인에 대한 처우 조건이 기밀이라 해도, 알음알음 새어 나가기 마련이다. 경력이나 성과 면에서 뚜렷하게 차이질 것도 없는 사람이 단지 외부에서 영입됐다는 이유로 더 좋은 처우를 받음을 알게 됐을 때, 기존 직원 입장에서는 무척 허탈할 것이다. 어쩌면 좀 더 격하게 형평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 조직이 시끄러워질 수도 있고, 아예 더 좋은 조건을 찾아 이직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집토끼가 최고!'란 의미는 아니다. 적어도 집토끼의 그간의 공로와 성과를 적절히 인정해주면서 필요한 외부 인력과의 조건을 균형있게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인력들도 외부 인재를 영입할 때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야 하는 회사의 입장을 아예 모르지 않는다. 다만, 나에 대한 불인정과 소외감 같은 '기분'의 문제다. 이것을 비단 금전적인 면에서만 고려한다면, 회사는 과다한 비용을 지출하거나 아예 외부 인재를 영입하지 못하는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새로 영입한 직원들도 결국 오래 지나지 않아 기존 직원화 된다. 회사가 기존 직원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날카롭게 살피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제발 어르신들, 바깥에서 잘난 친구 데려오는 것은 좋지만 지금 곁에 있는 직원들 기분부터 먼저 챙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