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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이 Aug 26. 2024

저 인간이 세상을 구한다고?

내가 여러분께 줄 것은 피, 땀, 그리고 눈물 뿐입니다.

  '반전(反轉)'은 항상 짜릿하다.


  스릴러 장르의 창작물에서 가장 착하게 묘사됐던 인물, 혹은 주인공의 조력자였던 인물이 알고 보니 사건의 흑막이었다던가, 극 중 어떤 계기로 흑화되는 인물의 이야기들이 주는 충격과 카타르시스가 상당하다.

  아니면, 세상이 다 끝날 것 같이 우울한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상황을 반전(역전)시키는 이야기 역시 감동적이고 짜릿하기 그지없다.


  내가 여러 스포츠 중에서도 야구를 특히 좋아하는 것은, 다른 주요한 스포츠와 달리 시간제한이 없어 그만큼 역전이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야구에서 나온 명언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아닌가.

  얼마 전 기아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2024년 6월 25일 경기에서는, 롯데가 무려 13점 차를 극복하고 기아와 무승부를 기록한 일도 있었다. 13점차 벌어졌을 때 채널을 돌리거나 경기장을 떠난 사람들이 태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LG 트윈스의 팬인 나에게 가히 '인생 경기'라 꼽을 만한 것은 2023년 KT 위즈와의 한국 시리즈 3차전이다.


  당시 LG는 29년 만에 한국 시리즈 우승에 도전하고 있었고, 앞선 두 차례 경기에서 서로 1승씩을 주고 받아 팽팽한 상황이었다. 7전 4선승제의 한국 시리즈에서, 2승째를 먼저 따내는 팀의 우승 확률이 85%에 육박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 시리즈에서 3차전은 무척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LG는 이미 하루 전 경기인 2차전에서 첫 이닝에 4점을 먼저 실점하고도 뒤집어 이긴 바 있기 때문에 3차전 시작에도 기세가 좋았다. 먼저 3점을 선취하고 쉽게 이기는 듯 했지만, 주장인 오지환이 결정적인 실책을 저질러 역전을 허용하고 만다.

  다른 사람도 아닌,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스무 살 때부터 온전히 LG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 수많은 명과 암(한 때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과 관련하여 국정감사에까지 오르내리는 등 억울한 마음에 자살까지 생각했었다고)을 지닌 그가 이제 팀을 29년에 우승으로 이끄는 중요한 경기에서 운명의 장난처럼 실수하고 만 것이다.


  다행히 몇 이닝 지나지 않아 포수 박동원의 장외 홈런으로 LG가 재역전해 오지환도 한 결 마음의 짐을 내려 놓으려니 싶었다. 그러나 다시 8회말, KT 위즈의 4번 타자 박병호가 마찬가지로 홈런을 때려내 스코어 5-7로 역전을 허용한 채 LG는 9회 마지막 공격을 최악의 분위기 속에서 맞는다.

  이따금씩 비춰주는 카메라에서 오지환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돼 있었고, LG도 만약 이 경기를 이런 식으로 내준다면 나머지 시리즈에서도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누구든 중요한 경기에서 실수하여 욕받이가 될 수도 있긴 한데, 그게 하필 험난한 삶을 살아왔던 오지환이어서 LG팬 누구든 안타깝기 그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맞이한 마지막 공격에서, LG는 1점도 내지 못하고 주자들만 간신히 2명이 나가 있었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선 사람이 거짓말처럼 오지환이었다. 여기서 그가 아웃된다면 그대로 경기는 종료되고 마지막 화면 역시 잔인하도록 오지환을 내내 비출터였다.

  운명처럼, 점수도 딱 2점차. 즉, 여기서 그가 홈런을 친다면 3점으로 정확하게 KT를 1점차 앞서게 되는 점수다. 그런데 야구에서 홈런은 그렇게 쉽게 나오지 않는다. 안타, 혹은 몸에 맞는 공만 나와도 오지환이 그나마 100만큼 욕 먹을 거 80만큼만 먹겠구나 하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정말로 일어났다.


  오지환이 KT 위즈의 최강 마무리 투수 김재윤을 상대로 배트를 오른쪽으로 당겨쳐 담장을 넘어가는 역전 3점 홈런을 쳐냈다. 그 한 경기에서 4번째 역전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 덕인지 LG는 나머지 2개 경기까지 기세로 몰아부쳐 우승을 차지한다.


  시나리오를 썼다면 플롯이 대충 이렇다.

  '어렵게 성장한 꿈 많은 소년이 어릴 때부터 원하던 팀에 1차 지명되어 데뷔하지만, 팀은 20년에 이르는 암흑기에 허우적거리고 소년도 성장이 더뎌 내내 욕을 먹는다. 그나마 성장한 뒤에 국가대표에도 뽑히고 금메달도 따지만 오해에 휘말려 비난받고 자살까지도 생각한다. 그런 난관을 이래저래 극복하고 29년만에 우승에 도전하는 팀의 주장이 되어 한국 시리즈에 올랐으나, 중요한 경기에서 실책을 저질러 역전을 허용한다. 그런데 마지막 타석, 9회 2아웃에서 역전 홈런을 때려 팀을 우승으로 이끈다'


  모르긴 몰라도, 어떤 작가가 이렇게 글을 써왔다면 너무 만화같고 유치하다고 돌려 보내지 않았을까?

  이런 반전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에 우리는 더 감동받고, 그만큼 삶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낼 수 있는 것 같다.


너는 나의 거짓말


  누구에게든 반전은 일어날 수 있다.

  조직에서 저성과자로 분류됐던 사람들, 혹은 불운했던 사람들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어떤 계기를 만나 멋진 역전 홈런을 때릴 수도 있는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시기 연합국 지도자의 일원으로, 그 중에서도 가장 치열하게 독일군과 싸웠던 사람. 히틀러로부터 필생의 라이벌이라 일컬어졌던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이 바로 그렇다.

  처칠은 영국의 전시총리(戰時總理)가 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했다. 또 2002년 BBC가 영국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100명의 최고 영국인(100 Greatest Britons)에서 뉴튼, 엘리자베스 여왕, 세익스피어 등 쟁쟁한 인물을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선정될 정도로 존경 받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인생 대부분의 성취는 60대 중반 무렵 그가 총리에 임명되면서부터 얻은 것들이니, 야구로 치면 7회쯤부터야 역전을 만들어 낸 셈이다.


  처칠은 그 독선적인 성격으로 유년기부터 따돌림에 시달리던 문제아였고, 공부도 못해 체벌까지 받던 낙제생이었다. 학창 시절 선배, 동료들로부터의 괴롭힘과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휴학까지 할 정도였다. 유서깊은 귀족 집안, 재무장관까지 지냈던 아버지의 후광이 아니었다면 일찌감치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유력 가문의 자제들이 그랬듯, 군인으로 시작해 정계에 입문하게 되는데 비록 크고 작은 공을 세우기도 하지만 독불장군과 같은 성정으로 가는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특히나 1차 대전기 해군장관으로 있을 때는, 모두가 반대하는데도 장관 권한으로 무리한 작전을 밀어 부쳤다가 '역사상 단일 작전 중 가장 큰 피해'라는 씻지 못할 실책을 저지른다(갈리폴리 전투, 영국-프랑스 및 식민지군 피해 25만 명 추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신히 정치 경력을 이어 갔지만, '뮌헨 협정(히틀러의 독일로 하여금 체코 슬로바키아를 점령토록 승인한 조약)'을 체결한 체임벌린 총리 내각에 대해 거의 홀로 강경하게 독일과의 전쟁을 주장하여 퇴출될 위기에 처했다.


  "전쟁과 치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자리에서, 둘 다 선택했다"

  즉, 어차피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치욕적인 선택을 했다는 말이다.


  1차 대전이 너무나 참혹했었기에 어떻게든 히틀러를 달래 전쟁을 하지 않길 원했던 영국 정계와 국민들에게는, 처칠의 발언이 늙고 성질 나쁜 전쟁광의 저주로 들렸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 뒤에, 독일이 영국-프랑스의 동맹국이었던 폴란드를 기습적으로 공격하면서 2차 대전의 막이 오른다. 저주라 치부했던 처칠의 예언이 사실이 된 것이다.

  한 때는 영국을 전쟁에서 구해냈다고 칭송받던 체임벌린 곧 물러나고 처질이 총리에 올랐다(사실 이 과정에서도 처칠의 능수능란한 정치력이 발휘됐었다). 애초 독일과의 전쟁을 주장하기도 했었고, 영국의 장관급 이상 정치인 중 유일하게 1차 대전 전시 내각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1년도 안되는 기간동안 유럽 대륙의 양대 산맥이자 가장 든든한 동맹이었던 프랑스가 항복하고, 덩케르크에서 영국군도 모두 철수하여 유럽 대륙이 모두 히틀러 손아귀에 들어간다. 처칠은 브리튼 섬 하나만 가지고 히틀러와 싸워야 했다.

  처칠은 군사 작전 상 실책도 여전히 많았다. 아마도 애초에 전략적 식견이 그리 뛰어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럽의 전쟁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던 미국의 지원과 참전을 외교적으로 이끌어 내고, 프랑스의 임시정부를 영국에 두도록 지원하고, 소련이 완전히 히틀러의 편이 되지 않도록 견제해낼만한 수완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시의 최고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인 불굴의 의지와 용기가 있었다. 본인의 그러한 의지를 영국 국민은 물론이고 연합국, 심지어 적국에게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천부적 재능도 있었다.


  특히 그가 영국 총리직을 수락하며 했던 연설이 무너져 내리던 영국 국민을 다잡고, 훗날 히틀러가 말했듯 '영국인은 전사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할 정도로 강군으로 변모시켰다.


  "제가 총리로서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땀, 그리고 눈물 뿐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나아갈 길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육지와 하늘, 그리고 바다를 가리지 않고, 주님께서 주신 모든 힘을 동원하여 이제껏 인류 역사상 보지 못했던 거대한 악을 향해 싸우겠습니다'라고."


  이 발언으로, 처칠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의 성격을 규정 지었다. 그 전까지 유럽은 수 백 년, 천 년에 이르는 동안 국가나 종교 간의 정치적 이슈와 목적으로 인해 전쟁을 치러왔다. 한 때 십자군 전쟁처럼 숭고한 종교적 열망과 순수 회복을 내세웠던 전쟁도 있었으나 실상은 자국이나 자신들의 연합의 이익을 위한 목적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2차 대전은, 단지 국가 간의 이익을 취하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악에 대한 저항'임을 천명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전쟁은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굴복하지 않기 위한 전쟁이었다. 명분에서 히틀러를 압도했기에 사실상 보편적인 세계인의 정서에서는 영국의 편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독일이 영국 본토에 대해 무차별 공중 폭격을 퍼부을 때도 처칠은 피신을 권하는 각료에게 '내가 죽으면 히틀러가 내 시체를 집무실 의자에서 끌어 내려야 할 것'이라며 거부했다. 오히려 우산을 쓰고 산책을 나갔다고도 한다.


  모든 사건의 결과를 알고 있는 지금 우리의 시선에서 볼 게 아니라, 당시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 처칠의 의지는 무모하지만 감동적이고 '일관성'이 있게 보였을 것이다.

  처칠 이전까지는 압도적인 히틀러의 힘 앞에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 노르웨이, 프랑스가 모두 항복했다. 처칠이 설사 독일에 항복했다고 해도, 당시에는 그렇게 치욕적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오히려 저항하지 않는 편이 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전 유럽 대륙을 상대로 섬 하나로 버텨 내면서 그 이후로 2년 뒤에 미국이 참전하게 되는 것이다(물론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 트리거였지만, 참전에 대한 분위기는 이미 형성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전쟁은 미국과 소련이 주축이 되어 싸워 가지만, 실상 전쟁을 거기까지 이끌어간 것이 처칠이었다. 처칠마저 독일에 굴복했다면 미국도 유럽을 포기하고 아메리카 대륙을 공고히 하는데 주력했을 것이고, 소련도 단일 전선에서 독일의 공세를 버티지 못해 아시아까지 히틀러가 먹었을지 모른다.

  문제아이자 낙제생, 역사상 최악으로 실패한 군사 작전의 책임자였던, 성질 더럽고 고집 센 늙은이가 세계를 구해낼 줄이야.


이 사진 찍을 때에도 사진사에게 짜증내던 중이라는 설이 있다


  회사에서도 이따금 낙제생(저성과자)들이 있다.


  물론 회사도 저성과자들을 반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우선 그의 저성과 사유가 기술이나 지식의 격차에 기인한 것인지, 동기 부여나 팀워크의 문제인지, 직무 적합성의 문제인지 면밀하게 파악한다. 그리고 필요할 경우 교육이나 코칭을 지원하거나, 직무 혹은 부서를 바꿔 주기도 한다. 그렇게 비로소 미운 오리였던 직원이 아름다운 백조가 되는 경우도 있다.


  저성과자 스스로도, 남탓을 하기보다 우선 자신의 부족한 점을 냉정히 되돌아 보고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냥 단순히 교육이나 부서 이동을 한다고 뭔가 반전이 일어나긴 어렵다. 회사에 당장 어떤 지원을 바라기보다 나의 강점과 단점을 파악해보고, '어떤 지원을 받았을 때 나의 성과가 개선될 수 있을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남의 탓이든, 본인 탓이든 지금의 암울한 상황만 바라보고 주저앉아 버리면 절대 반전은 없다.


  혹시 아는가, 낙제생이라 생각했던 누군가가 세상...까진 아니더라도 회사나 그 조직을 구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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