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게 결제의 난'을 비롯해 몇몇 시끄러운 얘깃거리가 있었나 보지만, 다른 것보다 '영철'이란 사람의 어떤 행동이 무척 인상깊게 다가왔다.
영철님은 5박 6일 간의 합숙기간 동안 내내 멤버들의 식사를 챙겨줬었던 것 같다. 영철님 스스로 요리하는 것을 즐긴다고 말하기도 했고, 다른 멤버가 함께 거들기도 했겠지만 어찌됐든 그처럼 챙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 영철님은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다른 멤버들의 환심을 사고 싶어서?
화제성있는 프로그램이니만큼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기고 싶어서?
영리하게 계산된 행동인지, 정말 베풀기 좋아하는 성품인지 진짜 속내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영철님의 행동은 조직 차원·HR적 관점에서 보면 무척 훌륭했다는 것이다.
못하는 게 대체 뭐야 이 냥반
다른 사례를 들어보자.
회사 계단 한 구석에 누군가 다 먹고 버린 빈 종이컵이 버려져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은 아니었고, 가끔 옥상에 담배 피우러 가는 사람들이나 잠깐 사적인 전화통화를 하는 사람들에게 눈에 띄는 정도였다.
그런데 꽤 오랫동안 빈 컵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아무도 치우지 않았던 것이다.
대부분 '때가 되면 청소해주시는 분들이 치워주시려니' 생각했을 것이다. 틀린 생각도 아니다.
원칙적으로 그 분들의 업무가 맞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걸 못 보셨거나, 마침 휴가였거나 아무튼 그것을 처리하지 못할 상황이었나 보다.
그렇게 그 컵은 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다. 여전히 치워지지 않은 채로.
별 것도 아닌 그 일로, 그 컵을 치우지 않은 사람들이 나빴다고 할 수는 없다.
나도 그런 식으로 지나친 적이 있으니까(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란 말...?).
그런데 적어도, 앞서 영철님의 사례와 같이 훌륭하다곤 못하겠다.
이것은 단지 개인의 도덕적·사회적 영역이 아닌, 조직 차원에서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다.
먼저 개념부터 정리해보자.
회사에서 공식적인 업무는 모두 'JD(직무기술서, Job Description)'에 적혀있다.
그리고 이직을 많이 경험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부분의 채용 포지션은 특정 '직무' 단위로 오픈돼 있고, 필히 그에 대한 JD가 적혀 있다. JD가 분명하지 않은 회사는 대개 기피하게 된다. 나의 처우 수준은 어디까지나 JD에 적힌 내용에 대한 가치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조직 내 그와 같은 여러 직무(JD)들이 모여야 비로소 회사 전체의 거대한 업무 프로세스가 완성된다.
예를 들자면, 상품기획자-디자이너-기술자-마케터-영업 등의 직무와 그들을 지원할 HR이나 재무 직무가 있어야 회사가 운영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누가 하라기에 애매한 공동의 업무가 반드시 생긴다.
이론적으로는 분명, 갖가지 JD들을 모두 합쳤을 때 회사 전체 업무에 공백이 생기면 안되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가령 어느 부서에서 회식을 한다고 하자(공식적인 회식은 일의 일부라 생각한다).
준비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구성원들의 일정을 모두 체크하여 조율하고, 회식 장소를 섭외하고, 메뉴 정하고, 조금이라도 비용 아끼려고 네고 치고 하는 것들 무척 귀찮다.
그렇게 어렵게 잡은 회식인데, 당일 누가 오네 마네, 장소는 어떻게 찾아가냐, 주차는 어쩌냐 등등이 겹치면 꽤나 까다로운 수준의 과업이 된다.
그런데 우리 부서, 어떤 직무의 JD에 '회식 준비하고 운영하기'가 적혀 있는가?
부서 내 모든 JD에도 회식 준비라는 내용은 없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좋든 싫든 수행한다.
그런다고 딱히 공식적인 보상을 더 주는 것도 아니다.
조금 더 고차원적인(?) 업무를 예로 들자면 부서의 업무보고 자료 작성, 비품 구매 등의 업무도 있다. 누구의 JD에도 그렇게 구체적으로 적혀 있지 않지만, 누군가는 항상 하고 있다.
그 덕분에 조직의 전체 업무에 공백이 생기지 않고, 온전히 굴러가는 것이다.
여기에 '조직시민행동(Organizational Citizenship Behavior)'이라는 개념이 있다.
대충 단어의 조합에서 뉘앙스가 풍기지만, '구성원들이 본인의 공식적인 업무도 아니고 적절한 보상도 없지만 소속된 조직의 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 '역할 외 행동', '업무 외 행동'이라고도 한다. 즉, 위에서 열심히 설명한 조직 공동의 업무들을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잘 하는 상태를 이름이다.
참 아름다운 얘긴데, 모든 구성원들이 나는 SOLO 21기의 영철님과 같다면 어떨까?
회사에서는 당연히 업무 전문성이 우선이겠지만 적어도, 그 조직의 문화가 무척 훌륭한 수준이고 그렇기에 성과도 높을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여기에 수 많은 영철들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제 2차 세계대전은 알다시피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다.
애초 전황은 분명히 독일과 일본을 비롯한 추축국이 압도적이었는데, 왜 역전이 일어났는가?
다름 아닌 미국의 어마어마한 물량 공세 덕분이다.
미국이 예나 지금이나 돈 많은 나라인 것은 알겠는데, 그 돈으로 비행기며 함선, 탱크와 총알에 이르까지 실체화 된 무기는 그럼 누가 생산했을까?
바로 '리벳공 로지(Rosie the Riveter, 리벳공은 못을 박는 노동자라는 의미)'로 불리는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은 유럽과 태평양의 양면 전선에 모두 군사력을 투사한, 지구상 유일한 나라였다. 참전한 군인이 무려 1,600만 명이다. 노약자를 제외한다면, 10~30대의 미국 남성 대부분이 군인으로서 싸웠다는 뜻이다.
그것은 반대로, 그 막대한 군인들을 지원할 막대한 물량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심지어 미국은, 자국 뿐 아니라 '랜드리스'라는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소련과 영국, 프랑스에도 무제한 물량을 공급했다(그 때 유럽에 숱하게 뿌려진 것이 '스팸'이다. 스팸이 발에 채일만큼 많아서, 오늘날 우리가 '스팸 메일'이라고 표현하는 것의 유래가 됐다).
미국 정부로서는, 공장에서 일할 젊은 남성 노동자의 공백을 여성으로부터 채울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1,900만 명의 여성 노동자가 군수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처우가 결코 좋지 않았음에도, 많은 여성들이 애국심과 사명감에 근면히 일했다. 그녀들은 '입대한 나의 남편, 나의 남자 친구'가 들고 싸울 무기를 만든다는 사실에 무척 자부심을 느꼈다고 한다.
소위 '리벳공 로지'는 그런 여성 노동자들을 기리는 노래의 주인공 이름이었다.
이 포스터를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정작 이 포스터가 그려질 당시에는 페미니, 反페미니 하는 논쟁에서 벗어난 숭고한 공동체 의식이 팽배했다. 그래서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아닐까.
리벳공 로지들은 대부분 아이가 있는 엄마들이었다.
공장에서 일을 함과 동시에, 남편이 없는 가정을 돌봐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그렇기에 여성 노동자들 서로서로 아이를 봐주거나, 세탁이나 요리와 같은 집안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노하우를 활발히 주고 받았다.
물론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금전적 보상은 있었지만, '먹고 살기 위해' 굳이 공장 노동을 택할 필요까진 없었다. 그리고 노동자들끼리의 품앗이와 노하우 전수는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 이들의 행동은 국가라는 조직을 위한 자발적인 행동이었다.
이 만큼 숭고한 '조직시민행동'의 사례를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조직시민행동은 어떻게 발휘되는가.
조직을 경영하는 사람 입장에서야, 구성원들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자발적으로 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조직시민답게 행동하라고 강요하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직시민행동은 강요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반드시 자발적인 업무 외 행동이어야 한다.
이미 많은 논문에서 조직시민행동은, '조직 몰입도'와 강한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조직 몰입도는 '조직 만족도'와 강한 양의 상관관계를 가진다.
즉, 조직시민행동이 발휘되려면 구성원이 먼저 조직에 대해 높은 만족도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조직에서 애매한 업무가 주어졌을 때 '그거 제 일이 아닌데요?'라고 반문하는 직원들이 많아진다면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그 직원 입장에서는 앞서 다른 챕터(자기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스스로 역할 인식이 되어 있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단순히 나열된 과업만 빠짐없이 수행했다고 내가 내 사명을 다 했다고 볼 수는 없다.
또, 경영자로서는 구성원들이 조직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것이 과연 맞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리더십이나 조직 문화 진단(EOS)을 실시하여 조직 만족도와 몰입도를 제고할 수 있는 개선 과제를 도출하고 실행해야 한다.
결국 아래 위가 모두 시민이 될 준비를 해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조직과 사회에 더 많은 '영철님'이 나타나기를, 우선 내 자신부터 그를 닮아갈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