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곤이 Aug 26. 2024

선무당씨, 사람 그만 잡죠?

참새 잡다 4,000만 명이 굶어 죽었던 사연

  퇴직 관련 업무를 하다보면 가끔 난처한 상황이 벌어질 때가 있다.


  아무래도 퇴직 담당과 퇴사 예정자가 마주할 때는, 곧 헤어짐을 앞둔 연인(?)같은 상황이어서 그런지 조그만한 이슈로도 분위기가 금세 예민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말 한 마디도 고르고 골라 하게 된다.


  특히나 퇴직 예정자에게서 공제할 내역이라도 있는 경우에는 훨씬 더 힘들어진다.

  같은 월급쟁이끼리 공제 하네 마네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미안스러운데, 뭔가 자세히 설명하기도 전부터 '뭘 공제한다구요??'라고 되물어 오는 경우가 태반이어서 난감하다.

  손실 회피 성향에 따라, 이익으로 인한 기쁨보다 손실로 인한 실망이 더 큰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실 당연한 반응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런 처음의 격한 반응도 잠시, 설명을 들으면 대부분의 퇴직자들이 납득하고 퇴직원에 서명을 해주다. '같은 직장인으로서 HR 담당자도 맡은 일을 할 뿐이니 이해한다, 수고많다'고 따뜻한 말이라도 전해 들으면 어떻게든 내 권한 내에서 공제 액수를 깎아 드리고픈 심정까지 든다.


  그런데 딱 한 번, 솔직히 나도 화가 날 만한 일이 있었다.


  A란 분이 퇴직을 하게 되어 인사 기록을 살펴보니, 성적 제출이 의무인 교육 지원 내역이 있었다. 퇴직 시점까지 성적을 제출하지 않아 먼저 지원 받았던 만큼의 교육비를 퇴직금에서 '토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비록 규정이긴 했지만 메일로 통보하면 그 분 입장에서 더 속상할 것 같아 전화로 설명을 드렸다.


  당연히 거부감이 있을거라 예상은 했는데, 생각보다 정도가 심했다. 심지어 자꾸 른 직원을 끌어대며 HR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요는, 본인과 같은 부서에 있다가 수 개월 전 퇴사한 B라는 직원의 경우 같은 상황이었지만 공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HR실이 직원들에게 똑같은 잣대를 적용해야지, 왜 누군 공제하고 안하고 차별하냐는 것이었다.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었다.

  우선 퇴직에 관한 내용, 특히 퇴직금이나 공제 내역은 민감한 개인 정보여서 HR에서 다른 직원에게 누설했을 리는 절대 없다. 일단 A가 B에 관한 사항을 필요 이상 알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B의 퇴직은, 지속적인 성과 부진으로 인해 회사와 조건 합의 하에 진행됐었다. 그런 상황에서 야박하게 교육 지원 사항까지 공제하지는 않았던 것 뿐이다.


  나는 당연히 B에 대한 답을 할 수 없었고 해서도 안됐다. 하지만 A가 그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 얘기가 계속 맴도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졌다.


  "HR실이 그렇게 일하시면 돼요? 해명을 해보세요. 왜 저만 공제하나요?"

  "우선, 타인의 퇴직 사항에 대한 개인 정보를 알고 다고 주장하시는데, 남의 정보를 알고 있는 자체가 문제될 수 있습니다. 이 사안에 대해 다른 직원을 거론하실 필요가 전혀 없어요."

  "B한테는 공제 안한 것 맞잖아요. 인정 안하세요?"

  "답변 드릴 사항이 아닙니다. 교육 지원과 공제 기준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면 됩니다. 교육 지원을 받으실 때 분명히 기준을 인지하고 동의하신 거잖아요."

  "모든 직원에게 똑같이, 투명한 기준을 적용하셔야죠."


  한숨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A 본인 입장에서 다소 억울함을 느낄 수는 있다. 그래서 이대로는 대화가 전혀 진전되지 않을거라 생각해 조금 달리 말해봤다.


  "나라에서 정한 법도, 원칙은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한다고 하지만 예외라는 게 가끔은 발생하지 않습니까. 회사의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수한 경우가 있는데, 특수한 경우만 기준으로 삼으면 원칙이 무너지겠죠. 믿어 주세요, 차별하는 게 아닙니다. "


  내가 간곡히 말했음에도 A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뇨, 저는 납득 못하겠는데요. 아무래도 B한테 전화해봐야겠어요. 분명 공제 안했다고 들었는데, 그게 맞는지 제가 확인해보고 다시 연락드리죠."


  지금까지는 A의 답답함도 심정적으로 이해가는 부분이 있고, B에 관한 사항을 속시원히 해명할 수 없어서 나 역시 답답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 말에 나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니, 벌써 퇴직한지 몇 개월 되신 분에게 대체 왜 전화를 하신다는 겁니까? 중요한 건, 본인께서 알고 있음에도 기한 내 성적 제출을 하지 않으셨다는 거죠. 우리는 분명히 그런 분들에 대해 퇴직 시 공제하고 있어요. 비록 기한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제출하시면 공제 않도록 해보겠습니다."

   "제가 B와 통화하고 나서 다시 얘기하시죠?"

   "저는 전화하지 마시라고 권하겠습니다. 모두에게 모든 사연을 다 말할 수 없는 상황도 있는 겁니다."


  다급하게 말했음에도 A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곤 대략 20분 쯤 뒤에 A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죄송합니다... 내용 다 들었어요."

  당장 말이 나오지 않아 나도 숨을 한 번 고르고 대답했다.


  "제가 말씀드렸죠, 전화하지 않으시는 게 좋겠다고요. 그 분께 이게 무슨 실례입니까."

  솔직히 목구멍 위쪽까지 '왜 사연을 다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말이 차올랐지만 그대로 삼켰다.


  A는 그제야 순순히 퇴직원에 서명하여 스캔본을 보내겠노라 했다.



  진부할 정도로 흔한 진리,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내가 아는 게 다가 아니다. 


  A는 본인이 알고 있는 정보에만 심취해서,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겸손함과 신중함이 부족했다. 그 오만 때문에 누군가는 애써 덮힌 상처가 다시 헤집어 진 기분이었을 것이다.

  (나로서는, 'HR 담당자로서 B에 관한 이야기를 끝까지 하지 않았다는 게 되려 이기적인 행동이었나'하는 생각과 더불어 B도 상처받지 않고 A도 납득할 수 있는 묘안을 찾아내지 못한 데 대해 무척 씁쓸했었다)


이 짤은 정말 두고두고 명 짤



  그나마 이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수준에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국가 지도자급의 아주 큰 권한을 가진 사람이 선무당 짓 하다 사람 잡은 사례가 있다.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얼마나 무서운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려주는 웃지못할 이야기다.



  냉전 시기 미국과 경쟁을 벌이던 소련을 보면서,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은 미국은 아니더라도 영국 정도는 중국이 따라 잡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중국의 사회·경제적 체질을 바꾸기 위한 '대약진 운동(1958~1962년 간)' 펼쳐졌다. 그 중에서도 중국의 근간인 농업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유해한 벌레와 동물들을 박멸하는 '제사해 운동(除四害運動, 농업에 해를 끼치는 참새, 쥐, 모기, 마리 등 4가지 해로운 것을 제거한다는 뜻)'이 먼저 진행됐다.


  흔히, 마오쩌둥이 농촌에 현장 지도를 나갔다가 참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저 새는 해로운 새다."

  라고 하면서 시작됐다고도 한다.


  마오쩌둥이 누군가. 그는 중국의 현대판 황제였다.

  중국 14개 성에서 일제히 대대적인 '사냥'이 시작됐다.

  특히 참새는 눈에 잘 띄는데다 덩치가 커서 잡기도 좋고 실적으로 보고하기에도 좋았다. 1958년 상하이 시에서 단 한 차례 사냥에서 잡아죽인 참새만 136만 7천여 마리에 달했다. 그렇게 1958년 한 해동안 중국 전역에서 2억 1천만 마리의 참새가 사라졌다. 완전히 씨가 마른 것이다.

  중국 정부와 인민들은 그토록 해로운 새가 모조리 사라졌으니, 다가오는 1959년 풍년이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결과는 대재앙이었다.

  전래없는 흉년으로 4,0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학자에 따라 최대 6,000만 명이 죽었을 것이라고도 한다.

  포식자인 참새가 없어지니 메뚜기가 들끓었고, 메뚜기떼는 곡식이 여물기도 전에 논밭을 초토화시켰다. 여기에 더불어 모기와 파리도 폭발적으로 번식해, 장티푸스나 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을 대규모로 퍼뜨렸다.


  지금 우리 상식으로는 충분히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생태계를 단기간에 그렇게 무너 뜨렸으니 철퇴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인민이 그렇게 떼죽음을 당한 뒤에야 오판을 깨달은 당 지도부는 부랴부랴 소련에 요청해 참새 20만 마리를 조달해온다. 선무당 마오쩌둥의 칼춤은 그렇게 슬그머니 끝나고 말았다.


<창천항로>에서 묘사한 마오쩌둥



  인지 편향 중 하나로,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는 이론이 있다.

  무언가를 조금 아는 사람은 자신을 과대 평가하고, 오히려 적당히 아는 사람은 자신을 과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자신이 어설프게 알고 있던 것들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감이 하락하지만, 다시 배우면서 겸손하게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알게 된다. 그러니 지속적으로 학습해야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논어>에서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는 말씀과 맞닿아 있다.


  또, 이를 학위 단계별로 구분하여 활용한 유머도 있단다(나무위키 참고).

  · 학사 : 난 무엇이든 다 안다

  · 석사 : 내가 모르는 것도 많다

  · 박사 : 난 아무 것도 모른다

  · 교수 : 난 아무 것도 모르는데, 내가 말하면 다들 믿는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의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소개했지만 그 외에도 어설피 아는 사람들이 좁은 소견으로 잘못된 제도를 기획한다거나, 중요한 투자 의사결정을 하여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등의 사례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개, 앞서 마오쩌둥과 같이 본인이 '모르는 것을 모르고' 오만한 판단을 성급히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전문가나 다른 사람의 조언·의견 따위도 구하지 않는 독단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선무당들에게 고한다.

  제발 당신이 얼마나 모르는지부터 깨달아 주시라. 그리고 조언을 하면 좀 들어라. 

이전 08화 그건 제 일이 아닌데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