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곤이 Aug 26. 2024

역적이 나라를 구한다면?

사람을 덩어리가 아닌, 조각으로 봐야 하는 이유

  "주변에 말 많고 입이 가벼운 선배가 있다면 친하게 지낼 것인가?"


  내가 신입사원들을 교육할 때 자주 던지는 질문이다.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아니오'라고 답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뭐 그런 뻔한 질문을 던지냐는 눈초리다.


  입이 가벼운 사람을 곁에 두면 당연히 불편하고 짜증나는 일이 많다. 개인적으로 감추고 싶거나 시시콜콜한 일들이 어느 사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을 때, 그리고 그 출처를 캐고 보니 어김없이 그 입싼 사람 임을 알게 됐을 때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래서 그를 멀리 하는 게 상책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반대로 바꿔서 생각해보면?

  입 싼 사람은 내 이야기를 남에게 퍼트리는 것 뿐 아니라 남의 이야기도 내게 물어다 준다. 애초에 그런 사람은 소문과 정보에 관심이 많아 아는 게 많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 이야기들을 얼마나 신뢰할지는 내가 판단할 일이지만, 그저 그와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내가 미처 듣지 못했을 여러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내 이야기에 대해서만 조금 말을 아끼면 될 뿐이다.


  특히나 신입사원들 입장에서는, 업무에 대한 전문성을 쌓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게 조직 적응이다. 타고난 감각이 있지 않는 한 회사와 사람들에 대해 많이 듣고 알고 있는 편이 조직 적응에 도움이 된다. 그래서 그런 선배들과도 적당히 관계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 그제야 끄덕거리곤 한다.



  애초에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이따금 튀어나오는 사이코패스·소시오패스를 제외 하고서야 완벽하게 선하고, 철저하게 악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또 선악을 넘어, 모든 분야에 유능하거나 모든 분야에 무능한 사람도 얼마나 있겠는가.

  누구든 못 되게 행동한 적도 있을 것이고 바보 소리 들을 정도로 어리바리 했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설마 나만 그렇다면 괜한 자백을 했다). 그만큼 여러 모습의 조각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것이 사람이다.


  누군가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무척 싫어하는 모습을 발견하곤 크게 실망한 적이 있을 것이다. 가령, 업무 능력도 출중하고 아래 위로 두루두루 잘 챙기던 선배가 있어서 롤모델로 삼았는데 회식 때 취해서 행패를 부리는 모습을 보곤 깼다던가 하는.

  그래서 그 이후로 선배를 멀리했다면?

  회식 때 싫은 모습을 보지 않게 되어 마음이 편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 선배가 갖고 있던 업무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기회도 함께 사라져 버린다. 그 선배 평판이야 알 바 아니고, 그냥 나만 놓고 봐도 손해다. 주사(酒邪)라는 조각 하나만 버린다면, 그는 여전히 썩 훌륭한 롤모델이 될 수 있다.

음... 일단 너무 가까워요 선배


  사람을 여러 조각의 복합체가 아니라 하나의 덩어리로만 바라 본다면, 내가 싫어하는 모습이 하나라도 발견되는 순간 그 사람 자체를 멀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내 주변, 내가 지금과 앞으로 만날 모든 사람들이 내가 싫어하는 조각이 하나도 없으리라 장담할 수 있나? 그렇게 싫은 조각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씩 배제하다보면 과연 내 곁에 남아나는 사람이 있을까.

  나 역시 누군가가 싫어할 조각 몇 개쯤 갖고 있을 것이란 사실을 잊지말자.


  그렇기에, 사람을 덩어리보다 조각내어 보는 것이 현명하고 정신 건강에도 좋다. 기왕이면 그 사람의 좋은 조각에 집중해서 봐야 나와 조직이 모두 이롭게 된다.

  역사 속에서도 좋지 못한 조각을 가졌던, 그러나 결국 나라를 구해내기도 했던 논란의 인물들이 제법 있다.

  소위 '겨울전쟁'이라는 어여쁜(?) 이름을 가진 핀란드-소련 간의 전쟁(1939~1940, 2차 세계대전의 일부로 취급)이 발발했을 때 분전했던 핀란드 군의 총 사령관 '구스타프 만네르하임' 원수가 그랬다.


  1939년 겨울 소련이 핀란드에 침공했을 때, 소련은 전차만 3,200대에 달했고 50만에 이르는 대병력이었다. 반면 핀란드군은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한지 오래지 않은 신생국으로 병력은 30만이 있었지만 전차는 고작 33대 뿐이었다. 상식적으로 승산이라는 단어조차 꺼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일단 인구 자체가 소련 1억 7천만 명, 핀란드 370만 명이다). 그럼에도 핀란드 정부는 소련에 굴복하지 않고 싸우기로 결단했다. 그리고, 그나마 핀란드 군 내에서 가장 경험이 풍부하다고 평가받던 만네르하임 원수에게 군권을 맡겼다.


  당시 그는 이미 한 번 전역한 바 있는 72세의 노인이었다. 게다가 놀라운 것은 그가 본래 핀란드인이 아닌, 스웨덴 명문 귀족 혈통이며 구(舊) 러시아 제국의 친위대 장교 출신이었다는 것이다. 애초에 스웨덴어와 러시아어에는 능통했으나 핀란드어를 구사하는데 애를 먹을 정도였다. 뚜렷하게 러시아 황실에 충성했던 그를 어쩌면 민족에 반역하는 인물로도 볼 수 있었을텐데, 그러한 배경을 모두 제껴놓고 원수로 임명했다는 사실이 무척 놀랍다.

  그러나 만네르하임은 매우 유능했고, 실제로도 절대적 열세 속에서 눈물겹게 버텨냈다. 맨주먹의 핀란드 장병들도 만네르하임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랐다. 결국 소련은 개전 후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무려 90만 명을 더 투입하고서야 핀란드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다.


  모든 국민을 가망도 없는 전쟁에 계속 몰아 넣을 수 없어 눈물을 머금고 전략적인 항복을 택했지만, 그 이후에도 만네르하임은 소련과 독일이라는 초강대국 사이에서 현란하게 양면 외교를 펼친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막바지, 독일과 소련, 연합군이 뒤엉킨 혼란기에 핀란드 정부는 거의 가져다 바치듯 만네르하임을 대통령에 임명한다(본래는 선거하는 것이 맞지만,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핀란드 의회가 특별법을 만들어 통과시켰다). 그 덕에 가난하고 힘없던 신생국 핀란드가 간신히 살아 남았다.

일단 키가 크고 잘생겨서 러시아 황실 친위대 장교가 될 수 있었다고.



  만네르하임 원수와 비슷한 사례로, 우리나라의 박정희 전 대통령도 있다.

  알다시피 박정희 전 대통령도 舊 일본제국 관동군 출신이며, 광복 후에는 남로당(공산당) 가입 전력으로 체포되었던 적도 있다. 숙군 사업으로 사형 당할 위기까지 몰렸었지만, 간신히 살아 남았다가 6.25 전쟁기에 공을 세워 부활했다. 그리고 이후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다. 박정희 대통령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보면 만네르하임 원수보다도 더한 반역자인 셈이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으로 집권하며 성취한 경제개발 업적에 대해서는 진보와 보수, 정치 진영 논리를 떠나 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편이다(박정희 생전 정치적으로 가장 대척점에 있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조차 박정희에 대해 '우리 국민에게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지도자'로 평한 바 있고, 본인이 스스로 박정희기념관 설립을 추진했었다). 이런 시선 역시 박정희를 여러 조각의 복합체로 바라본 것이라 할 수 있으려나.


  다만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핀란드의 만네르하임 원수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참 어렵다. 일단 우리는, 우리 역사의 일부인 박정희를 남의 나라 사람 만네르하임 만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보편적인 가치에 의해 판단하기도 어렵지만, 개인의 호불호 역시 강한 영역(종교와 정치)이기에 어떤 평을 내놓는 자체가 아직도 불편하다. 지금보다도 더 오랜 시간이 지나야 지금보다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역사 속의 인물, 여러 정치적인 논란이 있는 인물을 예로 들어 그렇지, 우리의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 정도로 복잡하진 않은 것 같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상황은 어차피 거기서 거기다. 한 개인 속에도 수 많은 종류의 옳고 그름, 유능과 무능의 편린들이 뒤섞여 있지만 내 노력 여하에 따라 이로운 조각만 찾아낼 수 있다. 쉽게 말해 충분히 취사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혹시나 이러한 태도를 기회주의적이라 치부한다면 꽤나 서운할 것 같다. 오히려 역지사지를 위한 노력에서 비롯한 것이라 믿고 싶다.

  어쩌다 사소한 실수를 했다고 더는 안 볼 사람 취급을 한다거나, 조금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고 그 사람 자체를 무능하게 바라보는 것은 성급하고 편협하다. 내가 부족할 때가 있듯, 타인도 그럴 수 있음을 이해한다면 다른 기회와 상황에 처했을 때 그의 좋은 조각을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하니, 내 곁에 김일성이나 히틀러처럼 과(過)가 공(功)을 뒤엎고도 남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면 서로서로 관대하게 바라봐주자.


  조직 차원에서는 리더 개인의 호불호에 따라 후배들을 덩어리로 판단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리더의 호불호는, 동료 간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갖기 때문이다. 내 입맛에 맞는 조직원들만 채용하고 운용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다 자칫 혼자서만 일해야 되는 수도 있다.

  비록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이라도 그가 갖고 있는 여러 조각 중 상황에 맞는 조각을 발견하고 꺼내 쓸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용인술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